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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배민도 “자진시정 하겠다”···동의의결제, 법 위반 기업 ‘면죄부’ 꼬리표 뗄 수 있을까 [경제밥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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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 오토바이 모습. 연합뉴스


최근 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는 구글·배달의민족 등 플랫폼기업이 잇따라 공정거래위원회에 자진시정 의사를 밝히면서 관련 제도인 ‘동의의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동의의결제는 법 위반 혐의를 받는 기업을 제재하는 대신 기업이 먼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손을 들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다만 기업들이 혐의를 벗는 ‘면죄부’를 얻거나 피해 지원하는 데 ‘시간끌기용’을 악용되지 않도록 관련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구글과 배달앱 배민·쿠팡이츠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공정위는 동의의결안의 구체적 내용을 두고 관련 기업과 협의를 하고 있다.

구글은 유튜브 뮤직(음원서비스)을 유튜브프리미엄(영상서비스) 요금제에 끼워 판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동의의결안에는 구글이 유튜브 뮤직을 뺀 ‘유튜브 라이트’ 요금제를 출시하고, 국내 음원서비스 업체를 위한 상생기금을 내는 방식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최혜대우 요구’ ‘무료배달 용어사용’ 혐의로 조사받는 배민·쿠팡이츠 배달앱들도 최혜대우 요구 중단과 자영업자 부담 완화방안 등이 담긴 상생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처벌보다 피해 회복에 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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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의결제도 진행절차.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동의의결제도는 법 위반 혐의를 받는 사업자가 거래 질서개선과 경쟁제한 해소 등 자진시정방안을 제시하면 일정 요건 충족시 공정위가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2011년 공정거래법에 처음 도입됐다. 이후 표시광고법·대리점법·대규모유통업법·가맹사업법·방문판매법·하도급법에 순차적으로 도입됐다.

법 위반 혐의가 있는 기업이 동의의결을 신청하면 공정위는 전원회의를 통해 절차 개시여부를 결정한다. 이후 잠정 동의의결안을 작성한 뒤 피해기업과 업계전문가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최종안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동의의결안의 내용이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면 보완을 요구하거나 동의의결안을 기각할 수도 있다.

동의의결제의 취지는 ‘신속한 피해회복’이다. 통상 법 위반 행위 발생부터 공정위 제재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행정소송으로 사건이 중단되면 제재까지 최장 7년이 걸리기도 했다. 법 위반 기업은 제재수위가 결정되기 전 시장지배력을 크게 높여놔 막상 제재를 해도 실효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동의의결은 개시되면 확정까지 통상 1년 정도가 걸린다. 행정소송 등 기업의 불복 우려도 없다. 제재시 부과되는 과징금은 국고로 귀속돼 피해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동의의결시에는 자진시정안에 피해업계의 요구사항이 담길 수 있어 피해 회복 관점에서도 도움이 된다. 특히 법 위반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사건은 소송으로 다투는 것보다 동의의결로 신속히 결론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단순 제재는 피해구제가 안 돼 한계가 있다”며 “동의의결은 피해구제를 통해 거래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활용도 낮았으나 최근 신청 증가세···해외서도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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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프리미엄 홍보 문구. 구글코리아는 유튜브프리미엄에 광고 제거 기능과 유튜브 뮤직 기능을 끼워 판매하고 있다.


다만 그간 동의의결제도 활용된 선례가 많지는 않다. 2011년 도입 이후 지난해까지 공정위에 접수된 동의의결은 총 35건이다. 연평균 3건 수준이다. 공정위는 그간 기업들 사이에서 동의의결을 신청하면 법 위반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신청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류가 변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13건 동의의결 신청이 접수돼 역대로 가장 많았다. 유진종합건설, 한솥 등 중견기업도 동의의결제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공정위는 동의의결의 인지도가 높아짐에 따라 점차 신청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입점업체에 배송비 추가 수수료를 걷는 등의 혐의를 받는 카카오는 지난 1월 위법행위를 시정하고 90억원대 상생방안이 담긴 동의의결안을 내놔 협의 절차가 개시됐다. 납품업체에 갑질을 한 혐의를 받는 GS25 등 편의점 4사도 지난해 30억원 규모의 상생기금 조성과 무상광고서비스 등을 골자로 한 동의의결안을 내놨다.

공정위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도 법적 분쟁으로 가면 소송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면이 있어서 동의의결을 통한 즉각적인 시정이 기업 평판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도 동의의결과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EU는 2004년 동의의결과 비슷한 확약결정(Commitment Decisions) 제도를 도입했다. EU 경쟁당국인 EC는 이를 활용해 지난해 7월 애플이 아이폰 비접촉 결제시 애플페이만 구동가능하도록 한 행위에 대해 삼성페이와 구글 페이 등도 구동될 수 있도록 했다. 2022년 아마존이 자사 상품을 유리하게 노출되도록 알고리즘을 설계하자 판매자 데이터 내부 활용을 중단하고, 관련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조정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일본도 2019년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다.

제재회피 수단 악용 방지···의견수렴 절차 강화해야


그러나 동의의결제가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데 이용되지 않도록 관련 기준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현재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동의의결을 허용하지 않는다. 중대한 법 위반 행위가 어디까지인지 확실히 선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의의결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면 법을 위반해도 당국과의 협상을 통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의의결을 ‘시간끌기’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최근 배달앱이 공정위에 동의의결을 신청하자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두 업체는 사회적 대화를 시작했음에도 실질적 상생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입점업체와 만나 상생방안을 낼 수 있음에도 이를 회피한 채 내놓는 시정안을 믿을 수 없다”면서 “자정 노력이 아닌 공정위 제재를 회피하려는 꼼수”라고 반발했다.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 절차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가맹거래 분야 전문가는 “피해자들은 행정처분을 면제해주고 보상을 받는 게 나은 것은 사실”이라며 “중요한 건 피해의 완전한 원상회복과 위법성이 해소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피해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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