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의 ‘작은 중국’이라고 불리는 광진구 자양동 건국대 인근 ‘양꼬치 거리’에서 과잠을 입은 청년들이 혐중 시위를 하고 있다. 자유대학 유튜브 갈무리 |
홍성수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과잠을 입은 대학생들이 서울 광진구 건국대 인근 양꼬치 거리에서 “짱×, 북괴, 빨갱이들 대한민국에서 빨리 꺼져라”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중국인 상인들과의 충돌도 있었다고 한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중국의 ‘샤프 파워’가 서울대까지 침투했다”며 서울대 ‘시진핑 자료실’ 폐쇄를 촉구했고, 자유통일당 서울 구로구청장 후보는 구로의 주인은 대한민국이라며 중국인 밀집 지역인 개봉역을 ‘을지문덕역’으로 바꾸겠다고 공약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중국 유학생은 100% 잠재적 간첩” “중국인이 몰려온다! 집회 참여! 범죄 증가! 혜택은 싹쓸이!”라는 펼침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12·3 계엄 사태와 탄핵심판 국면에서 활개를 친 중국 혐오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계엄 선포 대통령 담화문이나 비상계엄 포고령에서는 중국이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정선거 음모론이 제시되고 중국인들이 부정선거에 개입되었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탄핵을 막기 위해 ‘혐중’이 동원된 것이다.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근무하는 중국인 색출 소동이 벌어지는가 하면, 코로나19 중국 책임론, 실업급여, 건강보험, 참정권, 입시 등에서의 중국인 특혜론이 재등장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쪽 국회 대리인단은 중국의 하이브리드전 위협까지 거론해가며 계엄을 옹호했고, 급기야 헌법재판소 앞에는 ‘차이나 아웃’ 팻말을 든 시위대가 등장했다. 탄핵 반대 국면을 주도했던 극우 개신교 세력들은 공산주의, 동성애에 이어 중국을 ‘새로운 적’으로 정했다.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문제는 아니다. 2010년대 초부터 중국동포 범죄가 부각되며 중국인을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기 시작했고, 방송과 인터넷에 중국인·중국동포를 조롱하는 콘텐츠가 줄을 이었다. 급기야 영화 ‘청년경찰’과 ‘범죄도시’가 개봉된 2017년엔 서울 대림동 중국동포들이 영화 상영 반대 시위를 벌였을 정도로 심각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며 반중 정서가 더욱 심각해졌고, 일부 극우 매체들은 중국이 한국 침략을 은밀히 계획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꾸준히 계속되는 중국인 혐오가 비상계엄 옹호와 부정선거론과 만나면서 폭발한 것이다.
외국의 혐오 확산 사례들을 보면, 온라인에서의 표현이 오프라인에서의 정치적 행동으로 바뀔 때, 폭력으로 나아갈 때, 특히 표적집단을 향해 물리적 공격을 가할 때, 정치인들이 혐오를 이용하여 선동·조장할 때, 특별히 위험한 상태가 된다. 중국인을 직접 겨냥한 양꼬치 거리 시위가 벌어졌고, 혐중은 이미 다수 정치인의 단골 메뉴가 되었으며 대선 후보도 가세했다. 탄핵 반대 운동을 주도했던 극우 개신교 집단이 혐중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다문화나 이주자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아직 온라인에 머물러 있고, 반동성애는 극우 개신교 밖으로 영향력을 확대하지는 못하고 있다. 반면 중국 혐오는 정치인들의 엄호 속에 중국인을 직접 타격하는 단계까지 나아갔고, 대중들의 지지도 훨씬 광범위하다. 위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지난 10년 동안 ‘더 늦기 전에 혐오와 차별을 막아야 한다’는 호소는 주류 정치 무대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주요 국가 중 혐오·차별에 대한 공적 대응 수준이 가장 낙후한 나라가 되었다. 정부와 국회가 주저하는 사이에 혐오 세력들은 스멀스멀 힘을 키워왔다. 현실 정치에서 혐오, 차별, 성평등, 젠더 등은 어느 순간부터 금기어가 되었고, 2013년 차별금지법안 발의가 철회된 이후 혐오와 차별에 관한 국회 입법과 정부 정책은 사실상 중단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넉달여의 탄핵 국면은 위기와 기회가 공존했다. 한편으로 혐오가 극단화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광장에서는 혐오와 차별이 새로운 의제로 떠올랐다. 인권운동가들은 윤석열이 가면 중국 혐오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 예견이라도 했던 것처럼, ‘내란 종식’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함께 외쳤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기민하게 극우에 맞선 행동을 조직하고 극우에 대한 분석과 대응 과제를 망라한 ‘극우 리포트’를 발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전부터 극우와 싸워왔던 경험 덕분이었다. 이 싸움을 더 이상 외롭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다행히 광장의 시민들은 ‘윤석열 이후’의 세상에 대해 고민했고, 혐오와 차별에 맞선 싸움에 대해서도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혐오 정치에 단호하게 맞서고, 포용과 연대의 민주적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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