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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년이었던 교황 프란치스코…고향 마을서 추모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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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견진성사·영성체 유치원 교사 "말썽꾸러기였다고 전해들어"

대주교 된 이후에도 영성 시작된 유치원 찾아



교황청(바티칸)이 공개한 21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관 모습. 2025.04.21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지예 객원기자

교황청(바티칸)이 공개한 21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관 모습. 2025.04.21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지예 객원기자


(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 "성인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예요."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릴 적 모습에 대해 익히 전해들은 테레사 로비라 수녀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미세리코디아(자비의 성모) 유치원에서 AFP통신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

자비의 성모 유치원은 21일(현지시간) 88세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5세의 나이에 입학해 첫 견진성사와 영성체를 한 곳이다. 그러나 장차 교황이 될 아이도 당시에는 평범한 장난꾸러기 소년이었을 뿐이라고, 로비라 수녀는 웃으며 말했다.

로비라 수녀도 호르헤 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 교황의 본명)가 유치원을 다녔던 1940년대에는 어린 아이였다. 다만 현재 해당 유치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베르고글리오를 가르쳤던 수녀들로부터 수없이 그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은 물론, 훗날 사제·대주교로서 그가 고향 유치원에 찾아올 때 그를 종종 만났다고 했다.

로비라 수녀는 "어릴 때는 꽤나 말썽꾸러기였다고 들었다"며 "다른 남자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축구공을 차고 계단 위를 뛰어다녔다고 한다"고 전했다.

자비의 성모 유치원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태어난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플로레스 지역에 위치해 있다. 그는 이곳에서 신앙과 빈자들, 탱고, 그리고 축구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그의 선종 이후 플로레스 대성당에는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교황을 기리기 위한 조문객 행렬이 이어졌다.

이 교회는 17세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가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장소로, 나무 무릎 꿇개 위 황금 명판에는 그 사실이 새겨져 있다.

좀 더 남쪽으로 가면, 1908년 한 사제가 창립한 산 로렌소 축구 클럽의 경기장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클럽의 가장 유명한 팬이었다.


올해 해당 클럽의 새 경기장 건설이 시작될 예정이며, 그 경기장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름이 붙을 예정이다.

자비의 성모 유치원의 작은 스테인드글라스 예배당은 베르고글리오가 사제로서 첫 미사를 집전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로비라 수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가 되기 전, 플로레스에서 보좌 신부로 있을 당시 그는 매년 10월 8일 자신의 첫 영성체 기념일을 맞아 학교에 와서 미사를 집전했다"며 "대주교가 된 뒤에도 일요일이면 종종 학교를 방문해 수녀들과 함께 주방에서 파스타 점심을 나눴다"고 회상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 몰래 주방에 들어가 요리사와 함께 비밀스럽게 차를 마시기도 했다.

"무릎 한쪽이 불편해 절뚝거렸지만, 그는 올 때 절대 택시를 타지 않았어요. 완고한 성격의 증거죠." 로비라 수녀는 회상했다.

베르고글리오가 하늘로 떠난 21일, 그가 신의 부름을 느꼈다는 플로레스 고해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 숙여 기도했다.

로비라는 "12년 전, 그는 작은 여행 가방 하나만 들고 아르헨티나를 떠났다"며 "그는 그런 소박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 후로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alicemunr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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