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수칙’ 있었지만 ‘기특한 아이들’ 시선 여전
정치적 의사 표현 가로막는 학칙 문제도 불거져
“청소년, 단일 집단 아냐…다양한 삶 바꿀 정책을”
정치적 의사 표현 가로막는 학칙 문제도 불거져
“청소년, 단일 집단 아냐…다양한 삶 바꿀 정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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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상근활동가 수영(활동명·18)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집회 현장의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트랙터와 경찰차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수영 제공 |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한 광장엔 청소년이 있었다. ‘어린 사람들의 힘으로 윤석열을 끝장내자’란 깃발 아래에 수십 명의 다양한 청소년이 모였다. 성 소수자, 탈가정·탈학교, 이주 가정, 노동자 등 배경도 다양했다. 이들은 모두 학생이지 않았고 학생이어도 다 같은 학생이 아니었다. 다만 불법계엄으로 인한 불안감과 위협감을 느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기특한 아이’가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서 “윤석열 파면”을 함께 외쳤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상근활동가인 수영(활동명·18)도 그중 한 명이었다. 수영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2017년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선고를 교실에서 지켜봤다. 당시 집회에 친권자(부모)와 함께 한 번만 참여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올해로 18세가 된 그는 이번 탄핵 국면에선 44차례 광장으로 향했다. 수영은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경험에서 제외되고 있다”며 “정치 참여가 어려운 제도를 개선해 청소년들도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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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앞 집회에 ‘어린 사람들과 광장의 힘으로 윤석열 끝장내자’ 현수막이 걸려있다. 수영 제공 |
수영은 초등학생 때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를 보면서 대통령이 파면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효능감도 느꼈다. 당시 담임 교사는 학생들에게 탄핵의 의미를 설명했고 수영은 친구들과 이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수영은 “덕분에 사회 교과서를 한 번 더 넘겨보기도 하는 등 사소한 경험들이 누적돼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8년 후 수영이 경험한 탄핵 광장에선 청소년들을 ‘아랫사람’으로 보는 듯한 말과 행동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청소년 등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대상화하지 말라’는 평등 수칙이 마련됐지만, 나이에 따른 위계를 익숙히 여기는 사람들은 쉽게 행동을 바꾸지 않았다. 수영은 “‘잘했다’며 토닥여주거나 ‘우리 아이도 이만큼만 했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자녀에 대입해서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 상처받기도 했다”며 “의도가 좋더라도 청소년 정체성을 아직도 ‘기특한 아이들’ ‘우리 아이들’로 이해하고 있지 않나 싶었다”고 했다.
일부 어른들은 밤샘 집회 등에서 수영을 비롯한 청소년들에게 ‘(집에)들어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영은 “늦게까지 밤새우는 것도 청소년 본인의 선택인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의도와는 무관하게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광장에 참여하긴커녕 윤 전 대통령 파면 선고 순간조차 지켜보지 못한 청소년도 많았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선고에 앞서 전국 시·도 교육청 중 10개 교육청만이 선고 중계를 교육에 활용해도 된다는 취지의 공문을 일선 학교에 보냈다. 일부 교사들은 관련 언급을 꺼렸다. 수영은 “사회적·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는 순간을 지켜보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많았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불법계엄 이후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했던 서울 은평구 예일여고에서는 교장이 이를 삭제하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는 “정치 행위를 억압하는 학칙들이 예전부터 문제가 됐었는데 이번 사태로 불거진 것”이라며 “학생들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조차 가로막히는 2등 시민인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남성 청소년 사이에서 ‘극우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 역시 이런 학교 현실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고 수영은 말했다. 그는 “반페미니즘적 주장이 극우 세력과 연결돼있는 상황에서 페미니즘을 다루지 못하는 학교 교육이 청소년 극우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쉽게 추론해볼 수 있다”면서 “페미니즘과 성평등을 말하는 포괄적 성교육이 학교에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다”고 했다.
수영은 “청소년들을 한 집단으로 묶어 말하지만 삶의 맥락도, 겪는 차별과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며 “청소년 집단의 이질성에 주목하고 다양한 삶을 바꿀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영은 청소년들의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후보에게 전달할 공약을 마련하고 있다. 청소년의 정치 활동을 보장하고 이들이 시민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수영은 “윤석열 정권에서 폐지됐던 학생인권조례를 다시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사람을 죽이는 입시 경쟁 제도를 폐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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