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성직자들, 내가 만난 교황은
"양 냄새나는 목자 돼라" 말 기억
"권위 내려놓은 아버지이자 스승"
'가난한 이들의 성직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에 전 세계가 '정신적 아버지(Papa)'를 잃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한국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들도 상주를 자처하며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교황에 대해 "한없이 다정다감한 아버지", "소탈하고 겸손한 그리스도의 대리인", "양들의 곁에 선 목자"로 표현하며, 그의 행보를 되새겼다.
충북 음성의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운영하는 윤시몬 수녀는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그는 당시 교황의 초대로 숙소인 바티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40분간 담소를 나눴다. 아르헨티나 대주교 시절부터 꽃동네 사역을 눈여겨본 교황은 교황직에 오르자마자 꽃동네 설립자인 오웅진 신부와 윤 수녀를 바티칸으로 초대했다. 윤 수녀는 22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가난한 이들에 중심을 둔 교황은 꽃동네 성직자와 봉사자들에게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셨다"며 "'땅처럼 낮아지는 겸손'과 '어떤 어려움에도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거듭 당부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이 만남을 계기로 교황은 2014년 8월 방한 당시 꽃동네를 찾았고, 꽃동네 성직자 전원을 성베드로 광장 알현 시간에 초대해 강복을 빌어주는 등 인연을 이어갔다. 교황의 배려로 12년간 7차례나 성사된 만남에는 늘 환대와 축복의 말이 가득했다고 한다. "교황은 꽃동네에서 진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하셨어요. 교황인 나 역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시던 낮은 성직자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을 번역해 국내에 전한 진슬기 신부는 생전 교황의 모습을 자애로운 아버지로 기억했다. 교육을 중시하는 예수회 출신에 잠시 교수로도 활동했던 교황은 신학대에서 공부하는 사제들을 각별히 아꼈다. "사제들을 부를 때마다 '우리 아들들'이라고 하셨는데 가톨릭 전통의 권위와 위계를 떠나 부모가 자녀를 대하듯 애틋하게 대해주셨죠."
2014년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진 신부는 교황의 메시지를 많은 이와 나누고 싶어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진 신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영상은 교회를 넘어 빠르게 전파됐고, 얼마 뒤 교황의 방한을 맞아 책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로 묶여 출간됐다. 진 신부는 사제이자 신도로서 교황의 말을 거듭 새기면서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한 가정을 사랑하는 자애로운 아버지의 말이에요. 쉽고 간명해요. 먼저 본을 보이고 실천하시기에 깊이 와닿고요. 이런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신앙이고 교황의 힘이구나 싶습니다."
2014년 교황청립 대학에서 유학하며 교황 즉위 과정을 현지에서 지켜봤던 방종우 신부도 아버지이자 큰 스승 같았던 교황의 한 마디를 기억해냈다. 방 신부는 "교황님을 알현했을 때 '양 냄새가 나는 목자가 돼라'는 말씀이 깊이 남아있다"며 "신자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직접 접촉하시고 이교도들을 서슴지 않고 안아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성직자의 모습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시인으로 활동하는 이해인 수녀에게도 교황의 '말'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수녀는 2014년 교황 방한 당시 책 '교황님의 트위터'를 펴냈다. 1,839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교황의 트위터 메시지를 발췌해 이 수녀가 자신의 묵상과 함께 엮은 책이다. 그는 교황과 함께한 긴 묵상의 시간을 떠올리며 "길 위의 길, 집 밖에서 집이 돼 이 세상 모든 이를 차별 없이 끌어안는 성인"이라고 회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언행과 글을 통해서 한결같은 헌신과 사랑, 정의를 실천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확인했고, 수도 생활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수도자가 그분의 존재만으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황망한 마음을 가누는 것이 능사는 아니겠지요. 가톨릭 신자의 한 사람으로, 한 사람의 신도로서 그분의 뜻을 잘 새기고 이어나가는 것이 남은 생의 바람입니다."
"양 냄새나는 목자 돼라" 말 기억
"권위 내려놓은 아버지이자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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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21일 서울 중구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신도들이 평일 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
'가난한 이들의 성직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에 전 세계가 '정신적 아버지(Papa)'를 잃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한국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들도 상주를 자처하며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교황에 대해 "한없이 다정다감한 아버지", "소탈하고 겸손한 그리스도의 대리인", "양들의 곁에 선 목자"로 표현하며, 그의 행보를 되새겼다.
수녀 "교황, 꽃동네에서 진짜 그리스도 만났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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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충북 음성군 꽃동네를 방문해 태아동산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음성=연합뉴스 |
충북 음성의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운영하는 윤시몬 수녀는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그는 당시 교황의 초대로 숙소인 바티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40분간 담소를 나눴다. 아르헨티나 대주교 시절부터 꽃동네 사역을 눈여겨본 교황은 교황직에 오르자마자 꽃동네 설립자인 오웅진 신부와 윤 수녀를 바티칸으로 초대했다. 윤 수녀는 22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가난한 이들에 중심을 둔 교황은 꽃동네 성직자와 봉사자들에게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셨다"며 "'땅처럼 낮아지는 겸손'과 '어떤 어려움에도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거듭 당부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이 만남을 계기로 교황은 2014년 8월 방한 당시 꽃동네를 찾았고, 꽃동네 성직자 전원을 성베드로 광장 알현 시간에 초대해 강복을 빌어주는 등 인연을 이어갔다. 교황의 배려로 12년간 7차례나 성사된 만남에는 늘 환대와 축복의 말이 가득했다고 한다. "교황은 꽃동네에서 진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하셨어요. 교황인 나 역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시던 낮은 성직자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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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방한 당시 교황이 음성군 맹동면 꽃동네 희망의 집에서 수녀들이 준비한 선물을 전달받고 있다. 공동취재단 |
젊은 신부들 "다정다감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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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박 5일의 방한 일정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배웅 나온 사제들과 인사하고 있다. 성남=연합뉴스 |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을 번역해 국내에 전한 진슬기 신부는 생전 교황의 모습을 자애로운 아버지로 기억했다. 교육을 중시하는 예수회 출신에 잠시 교수로도 활동했던 교황은 신학대에서 공부하는 사제들을 각별히 아꼈다. "사제들을 부를 때마다 '우리 아들들'이라고 하셨는데 가톨릭 전통의 권위와 위계를 떠나 부모가 자녀를 대하듯 애틋하게 대해주셨죠."
2014년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진 신부는 교황의 메시지를 많은 이와 나누고 싶어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진 신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영상은 교회를 넘어 빠르게 전파됐고, 얼마 뒤 교황의 방한을 맞아 책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로 묶여 출간됐다. 진 신부는 사제이자 신도로서 교황의 말을 거듭 새기면서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한 가정을 사랑하는 자애로운 아버지의 말이에요. 쉽고 간명해요. 먼저 본을 보이고 실천하시기에 깊이 와닿고요. 이런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신앙이고 교황의 힘이구나 싶습니다."
2014년 교황청립 대학에서 유학하며 교황 즉위 과정을 현지에서 지켜봤던 방종우 신부도 아버지이자 큰 스승 같았던 교황의 한 마디를 기억해냈다. 방 신부는 "교황님을 알현했을 때 '양 냄새가 나는 목자가 돼라'는 말씀이 깊이 남아있다"며 "신자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직접 접촉하시고 이교도들을 서슴지 않고 안아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성직자의 모습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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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방종우 신부가 교황을 알현하고 있다. 방종우 신부 제공 |
이해인 수녀 "길 위의 길, 집 밖에서 집이 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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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책 '교황님의 트위터'를 출간한 이해인 수녀. 연합뉴스 |
시인으로 활동하는 이해인 수녀에게도 교황의 '말'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수녀는 2014년 교황 방한 당시 책 '교황님의 트위터'를 펴냈다. 1,839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교황의 트위터 메시지를 발췌해 이 수녀가 자신의 묵상과 함께 엮은 책이다. 그는 교황과 함께한 긴 묵상의 시간을 떠올리며 "길 위의 길, 집 밖에서 집이 돼 이 세상 모든 이를 차별 없이 끌어안는 성인"이라고 회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언행과 글을 통해서 한결같은 헌신과 사랑, 정의를 실천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확인했고, 수도 생활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수도자가 그분의 존재만으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황망한 마음을 가누는 것이 능사는 아니겠지요. 가톨릭 신자의 한 사람으로, 한 사람의 신도로서 그분의 뜻을 잘 새기고 이어나가는 것이 남은 생의 바람입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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