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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핵심기술’ 유출 공백 막아야… “정부 차원 실질 지배력 기준 도입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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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사회시민회의, 핵심기술 유출 대응 방안 전문가 토론

국내법 상 해외 자본 사모펀드 핵심기술 인수에 무방비

‘외국인 실질 지배에도 국내 법인 간주’ 지적

“정부 차원 국가 핵심기술 보호 위한 제도 정비 필요”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국가 핵심기술 유출 대응 방안을 주제로 전문가 초청 토론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김광기 ESG경제연구소 소장과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최장욱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국가 핵심기술 유출 대응 방안을 주제로 전문가 초청 토론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김광기 ESG경제연구소 소장과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최장욱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1일 국가 핵심기술 유출 대응 방안을 주제로 전문가 초청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는 외국인 실질 지배력 기준의 법제화와 범정부 대응체계 구축의 필요성과 시급성이 강조됐다.

토론회 주제는 ‘글로벌 기술전쟁 격화… 핵심기술 유출 어떻게 막을 것인가’로 설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최근 입법 예고된 산업기술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에 외국계 자본에 의한 기업 우회 인수를 통제할 장치가 빠졌다는 문제의식이 핵심이다.

발제를 맡은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산업기술보호는 단순한 산업 정책 수준을 넘어 국가 생존과 지속가능한 성장 전략의 핵심 축”이라며 “외국계 자본이 국내 사모펀드를 통해 전략기술 기업을 인수해도 현행 제도나 개정안은 이를 외국인으로 간주하지 않아 실질적인 통제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해외 자본이 실질적으로 국가 핵심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을 지배하는 경우 형식은 국내 법인으로 맞췄기 때문에 산업기술보호법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해외 자본 영향력이 큰 국내 사모펀드가 국가 핵심기술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 사모펀드 특성상 미래에 국가 핵심기술이 유출될 수 있는 제도적 공백이 존재한다는 취지다.

조동근 대표는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도 실질 지배력을 기준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있는 만큼 국내도 기업을 이끄는 외국인 정의를 실체 기반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가 핵심기술에 대한 인수·합병(M&A) 심사를 담당할 정부 컨트롤타워의 부재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조 대표는 “기술 M&A 심사를 담당할 범정부 조직이 없다”며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산하에 M&A 전담기구를 실질 심사조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장욱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국가 핵심기술은 단순한 설계도나 문서로 남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결합된 결과물”이라며 “기술이 유출되면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설명이 어렵고 수치화하기 어려운 숙련된 노하우성 기술일수록 외부에 노출됐을 때 빠르게 복제되고 추격이 가능해진다는 취지다.

대표적인 사례로 고려아연의 제련기술과 전략광물 관련 기술을 제시했다. 최장욱 교수는 “이미 많은 국가들이 기술 역전 현상을 겪고 있고 물량 공세를 퍼붓는 중국과 격차도 급격히 좁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핵심기술 보호와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며 “노하우가 기술로 진화한 제련 등의 기술은 유출되면 단기간에 경쟁우위를 상실할 수 있어 기술주권을 위협할 수 있는 법적 사각지대가 존재하지 않도록 제도를 유연하고 꼼꼼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기 ESG경제연구소 소장은 기술 보호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은 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자산이라고 정의하면서 최근 한국의 기술 보호 실태를 지적했다. 김광기 소장은 “정치적 불안정이나 이념적 대립이 반복되는 가운데 산업경쟁력과 기술 보호에 대한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고려아연처럼 직원 스스로가 기술 보호에 책임의식을 갖고 대응하는 기업에는 정부의 체계적인 안전 및 보호 관련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을 중심으로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 전환도 주장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모펀드의 구조적 속성이 기술 유출 리스크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정희 교수는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 사례처럼 사모펀드는 수익 실현을 위한 단기 전략에 집중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기업의 지속가능성이나 산업기술 보호에는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스템임플란트와 맘스터치 등 사례처럼 상장폐지 이후 소위 ‘히트앤런’이 벌어질 수 있는 구조라면 기업 내부 기술과 노하우가 외부로 흘러나가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이어 “현재 산업기술 관련 M&A는 공정위가 기업결합 심사를 맡고 있지만 이는 경쟁 제한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기술보호 측면에서 판단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는 산업기술 보호는 단순한 경제 이슈를 넘어 안보와 주권의 문제라는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국은 기술력 자체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해당 기술을 지켜낼 수 있는 제도적 보호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토론회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경쟁 측면에서만 기업결합을 심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산업부가 기술보호 관점에서 주도적으로 개입할 필요성이 있다”며 “특히 사모펀드 구조를 활용한 외국계 자본의 기술 인수 시도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국가 차원 기술주권 전략을 재정비하고 산업기술 자체를 중심에 두고 정책 우선순위를 재편하는 방향으로 범정부 차원 대응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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