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온 몸이 묶인 채 홀로 고통 속에 죽어갔다’ 격리·강박 충격적 실태 [세상&]

속보
푸틴·시진핑, 양국관계 심화 성명 채택…"역대 최고수준"
인권위, 정신병원 격리·강박 실태 조사
사망사건 발생 병원 등 20개 정신병원 방문조사
인권위, 정신의료기관 격리·강박 제도 개선 권고
격리·강박 지침 법령화, 보호사 법적근거 마련 등
최근 부천의 한 정신병원에서 입원 중인 30대 여성 환자가 장시간 묶여있다 사망하면서 격리·강박 제도에 대한 논란이 촉발됐다. 문제가 된 병원 등에 대한 조사를 마친 인권위는 격리·강박 제도에 대한 제도 개선을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연합]

최근 부천의 한 정신병원에서 입원 중인 30대 여성 환자가 장시간 묶여있다 사망하면서 격리·강박 제도에 대한 논란이 촉발됐다. 문제가 된 병원 등에 대한 조사를 마친 인권위는 격리·강박 제도에 대한 제도 개선을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최근 부천의 한 정신병원에서 입원 중인 30대 여성 환자가 장시간 묶여있다 사망하면서 격리·강박 제도에 대한 논란이 촉발됐다. 문제가 된 병원 등에 대한 조사를 마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격리·강박 제도에 대한 제도 개선을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22일 인권위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는 최근 사망사건이 발생한 병원과 반복해서 진정이 제기된 병원 등 전국 20곳의 정신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방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병원 6곳에서 격리·강박 절차 위반 등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번 방문조사에서 면담에 응한 89명의 입원환자 중 본인의 진료기록 제공에 동의한 환자 88명의 최근 1년간 격리·강박 일지를 분석하고, 격리・강박실 CCTV 동영상 기록을 확인하는 등 격리・강박실 운영 실태 등을 조사했다.

지침 어기고 최대 526시간 연속 환자 격리
인권위에 따르면 정신건강복지법 제75조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시 없이 격리·강박할 수 없는데도 ‘격리·강박한 뒤 사후 지시’도 허용하는 병원이 8곳, ‘문자 메시지 지시’도 허용하는 병원이 7곳으로 나타났다. 반면 입원환자 89명에 대한 면담 조사에서 ‘격리·강박 사유를 고지받았다’고 응답한 환자는 39.3%(35명)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 격리·강박 지침상 격리 시행 이후 다음 단계로 강박을 시도하는 병원은 4곳에 그쳤다. 해당 지침상 격리・강박의 1회 최대 허용 시간은 격리 12시간이지만, 이번 조사에서 분석된 격리 167건 중 최대 연속 격리 사례는 526시간(21일 22시간)으로 나타났다. 강박은 1회 최대 허용 시간이 4시간이지만, 이번 조사에서 24시간 연속 강박 사례도 드러났다.


아울러 127건의 강박 사례 중 양 손목과 양 발목을 묶는 4포인트 강박은 80.3%(102건)으로 나타났다. 격리 시 1시간마다, 강박 시 30분마다 환자를 관찰·평가하고 억제대를 사용한 강박 시 1시간마다 활력 징후를 체크한다는 병원 측 응답과 달리 인권위의 CCTV 조사 결과 병원 2곳에서 활력징후를 체크하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강박 도구는 가죽 억제대(병원 4곳), 태권도 도복끈(병원 10곳), 병원 자체 제작 끈(병원 12곳) 등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1곳을 제외한 병원 19곳에서 강박 시 환자 동의 여부에 따라 기저귀를 착용토록 했다.

사망사고 난 병원서 재차 환자 강박 사례 적발
격리・강박 인력에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보건부 지침에서는 의료인(의사·간호사) 포함 2명 이상의 훈련된 직원이 격리・강박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지만, 병원 17곳은 ‘보호사’ 채용 시 자격 요건을 요구하지 않았다. 또한 격리・강박실이 간호사실 외부에 설치한 병원이 12곳으로 나타났다. 간호사실과 거리가 15~20미터 떨어진 병원도 일부 있었다.


일반 병실에 환자를 강박했다 사망 사고가 난 병원에서 재차 환자를 병실에 강박하는 사례도 적발됐다. 격리・강박실 면적이 가장 좁은 곳은 약 2.3㎡(0.69평)이었으며, 해당 병원에서는 격리 중 환자가 침대와 벽 사이에 끼어 사망하기도 했다. 특히 이 병원에서는 간호사실에서 격리・강박실까지 3개의 감금문이 있었다. 이 밖에도 격리・강박실 벽면에 충격 완화 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병원(일반 콘크리트 벽)이 8곳, 격리실에 환자를 관찰할 수 있는 창을 설치하지 않은 병원이 2곳으로 나타났다.

격리・강박실에 이동식 화장실을 구비한 병원은 10곳, 외부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병원이 5곳이었으며, 내부에 화장실을 설치한 병원 8곳에서도 변기와 침대 사이 칸막이를 두거나 칸막이조차 없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상당수의 격리・강박실에서는 청소 인력과 환기 부족으로 악취 등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위, 중대 위법행위 정신병원 2곳 직권조사

국가인권위원회 [연합]

국가인권위원회 [연합]



인권위는 위법행위가 중대한 병원 2곳에 대해 별도의 직권조사를 개시하고, 나머지 4곳에 대해서는 자체 개선 계획을 제출받았다. 그러면서 정신질환자 인권 보호·향상을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격리・강박 지침의 법령화 ▷보호사 등 격리·강박 수행자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 및 보호사 교육 강화 ▷격리・강박실 규격 및 설비 기준 마련 ▷위법부당한 격리·강박 방지를 위한 상시 모니터링 체계 구축 ▷비강압적 치료의 제도화 및 관련 인력 충원 등을 권고했다.

한편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대한민국 심의에 따라 2022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격리・강박과 관련해 “자·타해 위험을 근거로 비자의적으로 자유를 박탈하는 것을 허용하는 정신건강복지법을 포함해 모든 조항을 폐지하고, 정신질환자의 강제적인 치료, 특히 격리로 귀결되는 치료를 받지 않도록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정부에 유엔 권고를 이행할 책무가 있다”며 “이번 정신의료기관 격리·강박 제도의 개선 방안 정책권고를 통해 병원 인권의 사각지대에 대한 근본적 개선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