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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병가 말곤 불법촬영 학생 피할 길 없었던 피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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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건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해당 사건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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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의 한 고등학교 학생이 학교 교사를 포함한 여성들을 불법촬영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지만, 피해자인 교사는 병가를 신청해 가해자인 학생을 피해야 했다. 성범죄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즉시분리가 필수이지만, 이를 교권침해 사안으로 분류하고 있는 학교 현장에서는 ‘가·피해자분리 제도’가 마련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22일 경찰과 피해 교사, 서울시교육청 등의 설명을 들어보면 서울 용산경찰서는 최근 용산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ㄱ(16)군을 불법촬영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ㄱ군은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교사 ㄴ씨 등 교사 3명을 포함해 여성 다수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학교 바깥의 피해자 신고로 덜미가 잡힌 ㄱ군의 휴대전화를 포렌식 하면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물도 발견됐다고 한다. ㄴ교사 쪽은 “지난해와 올해 수업을 들어간 한 학급의 학생이었다”며 “지난달 말 경찰에서 불법촬영 피해 참고인 조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고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즉시분리 조처가 필수적인 성범죄 사건에서도, 학교 안에서 피해교사가 가해 학생을 피할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ㄴ교사는 불법촬영 피해 사실을 교권보호위원회에 신고하며 학교 쪽엔 학생과의 분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교권침해 사건으로 분류돼 교사가 가해학생과 분리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7일이다. 가해 학생과 학부모는 ‘학습권 침해’를 주장하며 수업을 듣겠다는 의견서를 제출해 학급에 머물렀다.



ㄴ교사 쪽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던 학생이 뒤에선 불법촬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이 크다”며 “영상까지 직접 확인한 성범죄 사안인데, 제도적으로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학교도 곤란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학생이 학습권 침해를 주장하면 교권보호위의 결정이 나기 전까지는 학교가 7일 간의 분리 조치 외에 할 수 있는 조처는 교육활동보호 매뉴얼상 없다”고 설명했다. ㄴ교사는 결국 병가를 추가로 내면서 가해학생을 피하기로 했다.



실제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의 교육활동보호 매뉴얼을 보면,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상황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일반적인 교권 침해 사건에서 학생이 별도의 교실에서 자습이나 원격 수업을 받는 등의 분리 조처를 최대 7일 범위 내에서 실시하도록 권장하거나 피해 교원에게 특별휴가 5일을 쓸 수 있도록 할 뿐이다. 교사에 대한 접근금지나 수업 참여 제한, 정학, 전학 등 학생에 대한 처분은 교권보호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교권보호위가 신고 뒤 통상 한 달 뒤에나 열리는 탓에 이 기간 즉시 분리 방식은 ㄴ교사처럼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폭력 사안은 조사과정 동안 피·가해자 분리가 법적으로 가능하지만, 교권 침해 사안은 법적 미비로 인해 학교가 강제할 수 없다”며 “일반적으로는 교권보호위의 결정이 나기까지 학생 쪽에서 반성하는 의미로 체험 학습이나 병결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교육청 차원에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심각한 교권 침해 사안에 대해선 출석정지 등 긴급조치를 할 수 있도록 개정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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