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머니투데이 언론사 이미지

"평생 산 집" 못 떠난다는 어르신 설득…주민 살리고 산불 잡은 영웅들

머니투데이 원주(강원)=이현수기자
원문보기

"평생 산 집" 못 떠난다는 어르신 설득…주민 살리고 산불 잡은 영웅들

속보
경찰 "김병기 의혹 사건, 현재까지 11건 접수...10건은 서울청 수사"
[우리동네히어로]공중진화대원도 "생명 위협 처음 느낀 최악의 산불"

[편집자주] 평범한 일상 속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 있습니다. 각자 분야에서 선행을 실천하며 더 나은 우리동네를 위해 뜁니다. 이곳저곳에서 활약하는 우리동네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왼쪽부터)17일 오후 강원 원주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에서 만난 공중진화대원 조성연 주무관, 조당연 주무관, 라상훈 팀장, 최재한 팀장, 홍의래 주무관./사진=박진호 기자.

(왼쪽부터)17일 오후 강원 원주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에서 만난 공중진화대원 조성연 주무관, 조당연 주무관, 라상훈 팀장, 최재한 팀장, 홍의래 주무관./사진=박진호 기자.



"위로 4~5m 치솟는 불기둥을 보며 '내가 불 때문에 위험할 수 있겠구나'를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지난달 25일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소속 공중진화대원 최재한 팀장(45)과 홍의래 주무관(32)은 고운사로 향했다. 1000년 고찰 고운사를 사수하기 위해서다. 불길을 헤치며 임도를 달렸다. 하지만 고운사에 도착한 뒤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최 팀장은 "고운사를 100m 두고 보니 지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며 "굉장히 어두운데 바람이 세고 불씨가 막 날아다녔다"고 말했다. 홍 주무관은 "이미 제 앞에서 불씨가 휘날리고 있었다"며 "당시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해 차량을 후진했다"고 밝혔다.

고운사를 뒤로 하고 이들은 안동 하회마을로 이동했다. 고운사에 붙은 산불이 옮겨와 마을이 불타기 일보직전이었기 때문이다. 하회마을 상황은 좋지 않았다. 주민 대피 과정도 쉽지 않았다. 나이 많은 어르신 등 주민들을 1명씩 설득해 겨우 대피시켰다. 홍 주무관은 "어르신들이 '평생 살아온 집이라 못 떠난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치매를 앓던 한 90대 할머님은 상황을 전혀 모르셔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는 식으로 겨우 설득해 업고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공중진화대원 최재한 팀장이 지난달 경북 지역에서 갈퀴를 이용해 산불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제공=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공중진화대원 최재한 팀장이 지난달 경북 지역에서 갈퀴를 이용해 산불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제공=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소속 공중진화대는 산불 진화, 항공 구조 등 산에서 일어나는 각종 재난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다.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지난달 영남 산불 당시엔 하루에 3~4시간씩 쪽잠을 자며 산불을 진압했다.

공중진화대는 주로 헬기가 뜨지 못하는 야간 시간인 저녁 5시부터 오전 8시까지 현장에 투입됐다. 산속 깊은 곳에서 장시간 작업하는 만큼 가벼운 장비와 간단한 식량을 몸에 지녔다. 물이 있을 때는 호스를 이용해 산불을 진화했고, 물이 없을 땐 산불 진화용 '갈퀴'를 이용해 산불의 연료가 되는 낙엽을 걷어냈다.

대원들은 산소통도 없이 산속에 뛰어 들어가 불과 맞섰다. 불씨와 파편이 몸에 닿더라도 견뎌냈다.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엔 직접 뛰어가 문을 두드려 주민들을 구했다.

산불 진화의 베테랑인 이들에게도 이번 산불은 큰 충격이었다. 허리까지 수북이 쌓인 낙엽과 초속 27m에 달하는 강풍에 불이 소용돌이처럼 퍼졌다. 최 팀장은 "21년 경력 동안 생명이 위험하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쌍둥이 형제' 대원도…뜨거운 돌산에서 산불 진화

이란성 쌍둥이인 공중진화대원 조성연 주무관(32), 조당연 주무관(32)은 지난달 21일 경남 산청에 투입됐다. 이들이 투입된 지역은 경사가 가파른 산청 돌산 일대였다. 달궈진 뜨거운 돌이 계속해서 정상에서 굴러떨어졌다. 갑자기 큰 돌이 떨어져 얼굴을 스쳐 지나갔을 땐 조당연 주무관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현장에 갑작스레 불씨가 날아와 고립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어려운 현장에서 힘이 된 것은 팀원이자 형제인 서로의 존재였다. 조성연 주무관은 "위험한 상황에서 즉시 (동생인) 당연이와 함께 호스를 연결해 불씨를 진화했다"며 "서로 말하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다치지 마라'고 당부하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도 큰 힘이 됐다. 공중진화대원은 잠을 잘 공간이 마땅치 않아 차량에서 쪽잠을 자거나 간단히 식사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를 알게 된 한 펜션 주인이 방을 무료로 제공해 대원들이 씻고 잠을 청할 수 있도록 했다.

한 식당에서는 밥값을 받지 않겠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조당연 주무관은 "지친 순간에 주민들의 응원을 받고 일어날 수 있었다"며 "많은 분의 따뜻한 마음을 느낀 것이 이번 임무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중진화대의 앞으로의 목표는 서로를 의지하는 팀워크를 통해 시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공중진화대를 이끄는 라상훈 팀장(53)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최악의 산불이었다"면서 "공중진화대원들이 모두 무사히 돌아와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어떤 산불 현장이든 수십번, 수백번 서로를 믿으며 손잡고 뛰어드는 공중진화대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17일 오후 강원 원주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에서 만난 공중진화대원 조당연 주무관, 조성연 주무관, 최재한 팀장, 홍의래 주무관, 라상훈 팀장./사진=박진호 기자.

(왼쪽부터)17일 오후 강원 원주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에서 만난 공중진화대원 조당연 주무관, 조성연 주무관, 최재한 팀장, 홍의래 주무관, 라상훈 팀장./사진=박진호 기자.



원주(강원)=이현수 기자 lhs17@mt.co.kr 원주(강원)=박진호 기자 zzino@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