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일기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
최초 라틴계·예수회 출신…개혁적 성향
사회적 약자 위해 봉사·한국 각별한 애정
“묘비에 장식없이 이름만”…끝까지 소탈
최초 라틴계·예수회 출신…개혁적 성향
사회적 약자 위해 봉사·한국 각별한 애정
“묘비에 장식없이 이름만”…끝까지 소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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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EPA]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가난한 이들의 교황’.
21일(현지시간) 88세를 일기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다.
1958년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에 입문하고, 산미겔 산호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어 1980년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 원장을 거쳐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2001년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그는 2013년 3월 13일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었다. 콘클라베를 위해 소집된 비공개 추기경 회의에서 그는 ‘밖으로 나가는 교회’에 대한 소신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선택한 교황명은 ‘프란치스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평화의 사도이자,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과 평생을 함께했다. 성인의 삶을 닮고자 했던 프란치스코는 즉위 직후부터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실제로 그는 즉위한 지 9일 만에 로마의 한 교도소에서 첫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를 봉헌하며 재소자들의 발을 씻겼다. 2013년 7월 첫 로마 바깥 사목활동으로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을 방문해 난민들의 죽음을 환기하며 ‘무관심의 세계화’를 질타했다.
교황은 한국에도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2014년 8월 14∼18일 아시아 첫 방문지로 한국을 찾아 세월호 참사 유족을 위로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꽃동네 장애인 등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을 마주했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때는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주일 기도 중에 “어젯밤 서울에서 갑작스러운 압사 사고로 인해 비극적으로 숨진 많은 희생자, 특히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당시엔 “비극적인 비행기 추락 사고로 슬퍼하는 한국의 많은 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며 “생존한 사람, 그리고 세상을 떠난 사람을 위한 기도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올해 봄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산불이 확산되자 위로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교황은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기울였다. “교회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며 가톨릭에서 배제해 온 이혼한 사람, 동성애자, 성전환자도 모두 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3년 12월엔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공식 승인했다.
또한 여성의 권리에도 주목하며 가톨릭 내부의 문제에 대해 자성했다. 2019년 2월 수녀들을 대상으로 한 사제들의 성폭력을 공식 인정했으며, 2021년 2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 고위직에 처음으로 여성을 임명했다. 2021년 6월 ‘미성년자 성범죄 성직자 무관용’ 개정 교회법을 반포했고, 같은 해 11월엔 바티칸 행정 총괄 사무총장에 최초로 여성을 임명했다.
교황은 파격적인 인사로 유럽인 성직자 중심이었던 교황청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미얀마,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동티모르, 라오스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주교들을 추기경으로 발탁했고,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복음화부 장관 직무 대행, 필리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성직자성 장관, 대한민국) 등 아시아 성직자, 시모나 브람빌라 수녀(수도회부 장관), 파올로 루피니 박사(홍보부 장관), 막시마노 카바예로 레도 박사(재무원장) 등을 교황청 관료로 등용했다.
교황은 ‘자비로이 부르시니’라는 사목 표어 아래 자비와 기쁨, 생태적 회개, 형제애를 강조했다. 아울러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에게 현대의 위험인 고립과 자아도취를 물리치고 기쁨을 모두와 나누며 철저히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에 가득 찬 영으로 다른 이들을 비추자고 요청했다.
아울러 지구에 대한 인류의 관점을 쓰고 버리는 자원 창고가 아닌 ‘공동의 집’으로 전환시켰고, 국제적 연대의 사명을 일깨웠다.
그는 재임 기간 내내 세계 평화를 위한 실천에 힘썼다. 2013년 7월 브라질부터 2024년 12월 프랑스까지 70여 개국을 사목 방문했고, 전쟁 지역인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교황 특사를 파견했으며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와 단식의 날’을 여러 번 선포했다.
교황은 교회에 ‘시노달리타스’, 즉 모든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에 대한 꿈이란 유산을 남겼다. 시노달리타스의 어근인 ‘시노드’는 ‘함께+길’의 합성어로 교회 회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세계주교시노드가 지역 교회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도록 힘을 실었다.
즉위 직후인 2013년 3월 28일 미사 때 사제들에게 권고한 대로, 교황은 끝까지 주님의 양(신자)들 가운데 있었던 ‘양 냄새 나는 목자’였다.
교황은 2025년 가톨릭교회의 정기 희년(25년 주기)을 선포하며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전하고, 희년의 부활 대축일을 지낸 후 선종했다. 그는 유언으로 성 베드로 성당이 아닌, 그가 생전에 애착을 보였던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 마리아 대성당)에 장식 없이 이름만 적힌 묘비 아래 안식하기를 요청하며 끝까지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평생에 걸쳐 전파하고자 했던 자비와 평화, 희망의 메시지는 세계인의 가슴에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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