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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한 농약 살포기로 방화…봉천동 아파트 화재 원인은 층간소음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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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 아파트 화재로 큰 피해
고령 거주자 많아 인명피해 커
사망자가 유력한 방화 용의자
인근 모친 거주 빌라에도 방화
과거 윗집과 물리적으로 충돌
평소 동네 주민과도 자주 다퉈


21일 오전 8시 17분쯤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21층 규모 아파트에서 불이 나고 있다. 독자 제공

21일 오전 8시 17분쯤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21층 규모 아파트에서 불이 나고 있다. 독자 제공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숨지고 주민 10여 명이 다쳤다. 사망자는 방화를 저지른 유력한 용의자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과거 이 아파트에서 거주하며 윗집 주민과 층간소음 갈등을 겪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은 이번 화재가 이웃 간 원한에 의한 계획범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17분께 봉천동에 소재한 지상 21층 규모 아파트 4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이번 화재 원인을 방화로 보고 남성 A씨(61)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해 추적에 나섰다. CCTV 등 경찰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A씨는 분무형 농약살포기로 추정되는 도구를 개조해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경찰은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불에 탄 변사체의 지문과 A씨의 지문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현장 인근에 있는 용의자 주거지에서 A씨의 유서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유서에는 “어머니 병원비로 쓰라”며 현금 5만원도 동봉돼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말까지 불이 난 아파트 3층에 살며 윗집 주민과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을 겪었다. 지난해 9월에는 A씨와 윗집 주민 간 물리적 충돌이 벌어져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다만 양측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형사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A씨가 화재 발생 장소 바로 아래층에서 살았던 만큼 원한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확한 범행 동기를 수사 중이다.

또한 A씨는 범행 15분 전 이 아파트에서 약 1.4㎞ 떨어진 빌라 인근에서도 불을 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빌라는 A씨의 어머니가 거주한 곳으로 확인됐다. A씨는 이 빌라에 살면서도 동네 주민들과 자주 다툰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 주민 김 모씨(23)는 “주변에 소리를 지르거나 욕하는 것을 자주 봤다”며 “공사장 근로자나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들에게 시비를 걸기도 했다”고 말했다.

불이 난 아파트에는 고령자가 다수 거주해 인명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상자 중 2명은 해당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70대 이상 여성들로, 대피 과정에서 전신 화상을 입고 4층 높이에서 추락해 중상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부상자들은 연기로 인한 호흡곤란과 낙상 등을 호소해 일부가 병원으로 이송됐다.


21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60대 남성이 농약살포기를 이용해 건물을 향해 불꽃을 발사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21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60대 남성이 농약살포기를 이용해 건물을 향해 불꽃을 발사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이 아파트 주민 이 모씨(61)는 “큰불이 났는데도 대피가 빠르게 이뤄지지 못했다”며 “노인들이 많이 살고 대피 방송도 잘 안 들린 탓에 늦게 밖으로 나온 주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 앞 도로에는 대피 과정에서 발생한 유리창 파편이 가득 했다. 한 주민은 “처음엔 건물 벽이 떨어진 줄 알았다”며 “나와 보니 비명 소리, 창문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타는 냄새와 함께 검은 연기가 보였다. 아직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고, 피해를 어떻게 복구할지 감도 안 잡힌다”고 말했다.

화재는 소방 투입 1시간40여 분 만에 완전히 진화됐다. 관악소방서는 현장 브리핑을 통해 “오전 8시 17분 화재 출동했으며 8시 30분께 대응 단계를 발령했다. 9시 15분에 초진하고, 9시 54분에 완전히 진압했다”고 밝혔다. 이날 진화 작업에는 소방 인원 153명과 장비 45대가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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