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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우린 평화가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 발언으로 본 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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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크리스마스 축복을 전하기 위해 발코니에 등장해 군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88) 교황이 부활절 다음 날인 21일 선종했다. 즉위 이후 가난한 자와 소외 계층을 두루 살핀 교황으로 기억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출 직후 첫 공식 연설에서부터 격식을 벗은 말투와 유머, 따뜻함을 담은 화법을 사용하며 이후에도 다양한 어록을 남겼다.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2013년 3월 13일 교황 선출 직후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신자들에게 건넨 첫마디다. 이후엔 “추기경들이 로마에서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했다”며 “여러분께 축복을 드리기 전, 먼저 여러분이 저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새 교황은 신자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먼저 자신을 위한 기도를 요청한 것이다. 이런 발언으로 ‘격식보단 인간 중심의 교황이 나왔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 가난한 사람. 이들을 생각하니 곧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떠올랐다.”

2013년 3월 16일 기자들에게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한 이유를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교황 선출 투표 당시 당선이 확실시되자,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세요”라고 말하던 추기경의 조언을 가슴에 담아두곤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다고 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가난, 평화, 생명 존중의 상징으로 가톨릭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성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자비는 세상이 차갑지 않고 더 정의로워지게 만든다.”


2013년 3월 17일 카스퍼 추기경이 쓴 ‘자비’에 관한 책을 읽다가 이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카스퍼 추기경이 말하길, ‘자비가 모든 것을 바꾼다’더라”며 “이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감정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2013년 3월 23일 교황 즉위 이후 이탈리아 카스텔간돌포의 교황 여름 별장에서 처음으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권위의 상징인 교황직도 결국은 형제애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메시지와 맞닿은 상징적인 발언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2월 13일 쿠바 아바나 공항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러시아 정교회 지도자와 회동한 자리에서도 같은 말로 인사를 건넸다.


◇ “평화, 우리는 평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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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주간 일반 알현 도중, 쿠바 서커스 단원으로부터 선물받은 축구공을 손에 들고 돌리고 있다 . /AP 연합뉴스


2023년 3월 13일 교황청 관영 매체 ‘바티칸 뉴스’와 한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즉위 10주년을 맞아 바라는 선물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 답이다. 이 발언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에 여러 차례, 다양한 맥락에서 반복했던 평화 메시지의 핵심 구절로 여겨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에 대해 언급할 때도 비슷한 말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또 ▲“현재 우리는 세계 대전을 겪고 있다. 우리 모두 제발 전쟁을 멈추자“(2022년 9월 7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개최한 수요 일반 알현에서 우크라이나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있다고 호소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만이 아닌 다른 여러 제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의해 촉발됐다“(2023년 3월 10일 이탈리아 매체에 공개된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여러 제국의 이해관계로 인해 발발했다고 밝히며) 등 전쟁 종식을 위해 세계 각국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평화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

2014년 8월 14일 취임 후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교황 방한을 계기로 우리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가 전해지고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하자 돌아온 반응이었다.

이외에도 ▲“한국인에게 평화와 형제간 화해라는 선물이 주어지길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다“(2017년 9월2일 바티칸 사도궁에서 한국 종교지도자협의회의 예방을 받고) ▲“전통적인 올림픽의 휴전이 올해는 특히 중요하다. 두 개의 한국 대표단이 개회식에서 한반도기 아래에서 함께 행진하고, 단일팀을 결성해 경쟁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2018년 2월7일 바티칸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언급하며) ▲“북한으로부터 공식 방북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2018년 10월18일 교황청을 방문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요청 의사를 전하자) 등 여러 차례 한반도 평화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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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4년 8월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뉴스1


“핵무기 폐기에 모든 사람과 국가가 참여해야 한다”(2019년 11월 24일 원자폭탄이 투하된 일본 나가사키 피폭지를 찾아)며 핵무기에 반대하기도 했다.

2025년 1월 20일 취임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하면서는 “증오와 차별, 배제가 없는 더 정의로운 사회를 이끌어달라”며 “우리 인류가 전쟁의 재앙을 비롯해 수많은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평화와 화해를 증진하기 위한 당신의 노력이 하느님께 인도받길 기원한다”고 했다.

◇ 동성애 의혹 사제에 “내가 누굴 판단하겠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 동성애 등 가톨릭 금기들에 관대함을 보이는 발언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내가 누굴 판단하겠는가.”

2013년 7월 28일 해외 순방 귀국길 기자회견 중 동성애 의혹이 있는 사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내놓은 대답으로, 당시 이 짧은 한마디는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가톨릭계에서 소외받고 인정받지 못하던 성소수자들에게는 성적 지향이 어떻든 모든 사람은 가톨릭 신자로 인정될 수 있다는 상징적인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외에도 ▲“하느님은 너를 이렇게 만드셨고, 너는 그분의 자녀이며, 그분은 너를 사랑하신다.“(2018년 5월 21일 스페인 출신 동성애자 남성과 면담에서)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다“(2013년 1월 24일 AP통신 단독 인터뷰에서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는 국가들을 비판하며) ▲“성전환자들도 하느님의 자녀“(2023년 8월 4일 스페인어 가톨릭 잡지 ‘비다 누에바’ 인터뷰에서 성전환자들과의 일화를 떠올리며) 등 성소수자에 대해 포용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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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7일 일요일 이슬람국가(IS)의 사실상 수도였던 이라크 모술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교회 잔해에 둘러싸인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쟁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토끼처럼 아이를 낳는 것보다 책임감 있는 육아가 더 중요하다”

2015년 1월 19일 피임을 금지하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옹호하면서는 이같이 말했다. 이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임신 중절에 대해선 비판적인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단순 출산보다도 이후의 양육이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2015년 9월 1일 발표한 교서에선 그해 희년 동안 모든 사제에게 낙태 여성 용서 권한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낙태를 한 여성이 진심 어린 속죄와 함께 용서를 구한다면 모든 사제에게 이 낙태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는 말을 남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6월 2일 미사에선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이라는 풍조가 생기면서 개 한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르는 가정도 많아졌다.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냐”라며 부부들에게 아이를 낳아 기르라고 권고했다.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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