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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경비원에서 빈자의 성자로…'선종' 프란치스코 교황은 누구?

머니투데이 변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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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경비원에서 빈자의 성자로…'선종' 프란치스코 교황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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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프란치스코 교황이 20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부활절 미사 중 발코니에 휠체어를 타고 등장해 “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2025.04.21 /AFPBBNews=뉴스1

프란치스코 교황이 20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부활절 미사 중 발코니에 휠체어를 타고 등장해 “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2025.04.21 /AFPBBNews=뉴스1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이탈리아를 떠나 아르헨티나에 온 노동자 부부의 아들이었다. 몸이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공장에서 청소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학비를 충당하려 건물 청소와 잡일은 물론 나이트클럽에 경비원으로도 일했다고.

젊은 시절 경위가 불분명한 폐렴 합병증으로 폐 일부를 절제했고, 이에 오랜 기간 호흡기 질환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올 2월부터 폐렴 합병증으로 위독한 상태였다. 이달 20일(현지시간) 부활절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의 미사에 마지막 모습을 드러낸 교황은 "종교와 사상,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견해에 대한 존중 없이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교황청은 21일 그의 선종 소식을 알렸다. 1936년 12월17일생, 88세.


청빈과 겸손의 교황…'가난한 이의 성자'를 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왼쪽)이 8일 카톨릭 '자비의 희년' 개막을 앞두고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포옹하고 있다. 교황은 뒤편에 보이는 청동 '성문'을 열어 1년 계속될 자비행의 시작을 알린다. 2015. 12. 8./AP=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왼쪽)이 8일 카톨릭 '자비의 희년' 개막을 앞두고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포옹하고 있다. 교황은 뒤편에 보이는 청동 '성문'을 열어 1년 계속될 자비행의 시작을 알린다. 2015. 12. 8./AP=뉴시스


평탄치 않은 젊은 날을 보낸 그는 33세 생일을 나흘 앞두고 신부가 됐다. 이웃의 구원을 위한 봉사에 몸 바치는 예수회에 발을 들이며 반세기가 넘도록 수도자로서 낮은 곳에 임하려 했다. 역대 교황 265명 중 누구도 쓰지 않은 이름 '프란치스코(Francesco)'를 택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모든 재산을 버리고 이웃 사랑에 헌신한 '가난한 이들의 성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좇겠다는 뜻이었다.

가톨릭계 보수파의 구심이었던 전임 베네딕토 16세와 대비되는 진보 성향으로 평가받았다. 베네딕토 16세가 건강상 이유를 들어 2013년 이례적으로 자진 퇴위를 선택하면서, 이어진 콘클라베에서 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당시 교황청이 각종 부패와 성 비위로 홍역을 치르고 있던 만큼, 청렴한 데다 교리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개혁적인 프란치스코가 지목됐다는 평가다. 이러한 시각이 2019년 영화 '두 교황'에도 반영됐다. 가디언은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된 콘클라베에서도 프란치스코가 두 번째로 많은 표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재위 기간 내내 교회 개혁과 사회 정의를 강조했다. "뿌리로 돌아가자"며 부의 편중을 성토하고, 교회 안팎 권력자와 신자들의 위선을 서슴없이 비판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편을 자처하며, 자신도 관저를 교황의 사도궁전이 아닌 성녀 마르타호텔로 바꾸는 등 청빈의 삶을 실천했다. 바티칸 은행장에 민간 금융인을 앉혀 교황청 재정을 개혁하고, 가톨릭의 식민 지배 가담과 사제 성추행에 적극 사과했다. 즉위 직후 남성 신도 12명의 발을 씻겨주는 관행을 깨고 여성 2명, 무슬림 2명 등을 포함한 12명에게 세족례를 행하고 발에 입을 맞췄다.

2021년 교회법을 개정, 가톨릭의 공적 예배인 전례 참여에 성별 구분을 없앴다. 이듬해에는 여성을 포함한 평신도들이 바티칸시국의 부서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바티칸 헌법을 승인했다. 세계 교회의 현안 논의체인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 사무국장에 처음으로 여성을 임명하며 여성 투표권을 허락했다. 이혼한 신자에게도 영성체를 허용했고, 사생아 세례를 금지하지 않기로 했다.


세월호 유가족 위로, 한반도 평화 기원…한국과의 인연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이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도중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족 김영오씨를 위로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DB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이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도중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족 김영오씨를 위로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DB


최초의 신대륙-남반구 출신 교황이지만,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가 극에 달했던 '더러운 전쟁(1976~1981년)' 시기 인권 유린을 방조했다고 비판받았다. 다만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권의 탄압을 피해 은신처를 찾는 이를 숨겨주거나 도피시켰다. '베르고글리오 리스트'라는 책의 저자 넬로 스카보는 당시 교황이 구한 이가 100여명이라고 주장했다. 또 교황 취임 후 엘살바도르 독재정권으로부터 피살당한 중남미 반독재 가톨릭의 상징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교회가 공경할 복자로 선포함)을 결정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2014년 8월 방한했는데, 1984년·198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두 번째다. 조선 말기 박해받은 윤지충 바오로 등 순교자들의 시복식,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도 그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겪은 유가족들에게 손수 세례하고 편지를 건넸다. 당시 기아 쏘울 차량을 이용하고, 대전으로 이동하면서 KTX 일반열차를 제값을 내고 타거나, 예수회 재단인 서강대를 깜짝 방문하는 등 특유의 소탈한 행보도 화제였다.


2018년 10월에는 가톨릭 신자인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바티칸을 방문, 교황을 예방한 자리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평화와 번영"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기원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됐는데, 이틀 후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주일 기도 말미에 "서울에서 갑작스러운 압사 사고로 인해 비극적으로 숨진 많은 희생자, 특히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변휘 기자 hynew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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