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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청부민원’ 뒷북 조사에 류희림은 '선거심의'로 대선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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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혼란에 빠졌었던 미디어 업계가 '윤석열 파면' 이후 정상화의 길로 들어선 모양새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오늘(21일) 희대의 '청부민원' 사건의 주인공인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하 방심위)사건을 감사원으로 이첩했다. 앞서 2023년 권익위는 똑같은 사안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방심위로 떠넘기는 결정을 했었다. 방심위는 셀프 조사를 했고, 사건은 유야무야됐다.

권익위는 오늘 언론 브리핑을 열고 "최근 제출된 류희림 위원장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신고에 대해 위법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서 감사원 이첩 결정했다"고 밝혔다

'청부민원' 사건은 뉴스타파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2023년 12월 25일, 뉴스타파는 류희림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 등이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 기사를 심의해달라고 방심위에 수백 건의 민원을 넣은 '청부민원' 의혹을 최초 보도했다. 보도 후, 류 위원장은 사퇴는커녕 공익신고자를 색출하려고 했다. 또 익명의 신고자를 검찰에 수사 의뢰하는 등 적반하장식 대응에 나섰고, 이듬해에는 윤석열의 재가를 받고 연임에 성공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직원 4인은 지난 15일, 류희림 위원장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로 권익위에 다시신고했다. 윤석열 파면 이후 권익위는 이전과 달리 신속하게 움직였다. 신고 접수 단 6일 만에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고 감사원으로 사건을 넘긴 것이다.



15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부패신고 접수된 재신고서.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청부민원 의혹에 대하여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방심위 직원 4인이 신고서를 작성했다. (출처: 언론노조 방심위지부)
"류희림 회유로 거짓 진술" 양심 고백 후 권익위 재조사 요구
이 사건을 권익위가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건 지난 3월, 국회에서 방심위 장 모 강원사무소장이 기존의 증언을 뒤엎는 ‘양심선언’을 하면서다.

장 소장(당시 종편보도 팀장)은 2023년 9월 14일, 팀원으로부터 류희림 위원장의 쌍둥이 동생 류 씨의 민원이 들어온 사실을 보고받았고 다음 날 바로 류희림에게 알렸다. 그러나 장 팀장은 권익위 조사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류희림에게 보고한 적 없다”고 거듭 증언했었다.

지난 3월 5일, 다시 국회 증언석에 선 장 소장은 “류희림이 회유하여 거짓증언을 한 것”이라고 자백했다. 재신고서에 따르면 장 소장에 대한 류희림의 회유는 지난해 4월 처음 시작됐다. 당시 권익위가 방심위 사무실을 방문해 장 소장을 직접 조사했고 장 소장은 "보고를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권익위 현장 조사 직후, 류희림은 장 소장을 위원장실로 따로 불러 “고맙다, 잘 챙겨주겠다. 승진시켜 주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지난해 6~10월 수차례 국회 증인석에 섰던 장 소장이 일관된 거짓 진술을 한 배후가 바로 '류희림'이었던 것이다.

장 소장이 양심의 가책으로 힘들어하자 류희림은 “지금은 서울을 벗어나 쉬는 것이 좋겠다”며 설득해 장 소장을 강원사무소장으로 발령냈다. 류희림의 면밀주도한 증인 매수 행위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권익위는 2023년 12월에 '청부민원' 1차 공익신고를 받았다. 이후 6개월간 조사하는 시늉만 내다가, 사건을 방심위로 보냈다. 류희림이 수장인 방심위에서 직접 류희림을 조사하라고 한 것이다.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실제로 방심위 박종현 감사실장과 이현주 사무총장은 류희림을 한 번도 조사하지 않은 채 "판단하기 어렵다"는 모호한 결론을 내고 감사를 마무리했다.


권익위 재신고서에 주요 증거는 '뉴스타파 보도'
이번 권익위 재신고서에는 권익위 1차 공익신고 이후 뉴스타파가 새롭게 밝힌 사실들이 주요한 증거로 언급됐다. 2023년 12월 25일, 뉴스타파는 류희림의 동생과 동생의 직장 관계자가 민원을 넣은 사실을 시인하는 인터뷰를 보도했다. 류희림 쌍둥이 동생 류 씨가 “형 후배가 내용 주면서 민원 넣으라고 부탁했다”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한 내용, 그리고 동생 류 씨가 운영하는 영남선비문화수련원 소속 직원 4명 중 일부가 취재진의 질의에 “총장님이 민원을 부탁하면서 자료를 보여줬고, 거기에 적힌 그대로 민원을 신청했다”고 답한 인터뷰 전문이 재신고서에 증거로 첨부됐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친동생 류 씨가 취재진에게 "형 후배가 이런 게 돌고 있다, 니가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떠냐 부탁했다"고 말했다. (2023년 12월 25일 뉴스타파 보도 갈무리)
'선거심의'로 대선에 개입하려는 류희림
류희림 위원장은 거짓 진술 회유, 위증교사 혐의로도 수사기관에 고발된 상태다. 또 지난 3월 13일, 국회는 류희림에 대한 감사원 감사 요구안을 의결했다. 그럼에도 류 위원장은 지난 16일 제21대 대통령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를 직접 위촉했고, 여기에는 류희림 ‘청부민원’ 리스트에 포함된 오정환 전 MBC 제3노조위원장도 포함됐다.

유력한 범죄 혐의자가 자신의 사건에 공범으로 의심받는 인물을 선거방송을 심의하는 위원으로 위촉한 것이다.

선방위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방송의 공정성 유지를 위해 설치되는 합의제 기구로, 방심위가 관련법 규정에 따라 정당·학계·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아 9명의 위원을 구성한다. 무엇보다 공정한 인선이 생명이지만 류희림 방심위는 지난 총선 때도 ‘윤석열 정부 언론장악 돌격대’로 불리는 보수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 관련 인사를 위촉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희대의 '청부민원' 주인공인 류희림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이번 대선에 '선거심의'로 개입하려는 의도는 너무도 뻔하지만, 국회도 정부도 류희림의 막가파식 폭주를 막을 방도가 현재로선 없다. 앞서 국민권익위가 1차 신고를 받고 신속하고 공정하게 조사를 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뉴스타파 박종화 bell@newstap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