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티이미지뱅크 |
매년 4월 무렵엔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의 흐름을 진단할 수 있는 보고서가 발표된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인공지능 연구소(Stanford HAI)가 발간하는 'AI 인덱스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 AI 기술 개발 현황과 정책, 윤리 문제, 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다뤄 AI 산업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꼽힌다.
올해도 어김없이 발표된 2025년 AI 인덱스 보고서는 AI 기술이 특정 기업이나 전문가의 전유물을 넘어 사회 전반의 인프라스트럭처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AI 기술력에서 미국이 여전히 선두를 달리지만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이를 추격하면서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한국 역시 고군분투 중이다.
스탠퍼드 AI 인덱스는 2017년 처음 발간됐다. 당시에는 스탠퍼드대의 'AI 100년 프로젝트' 일환으로, 공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비영리 보고서였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으며 AI의 잠재력이 세계적 주목을 받았고, 이는 각국의 정책 전환으로 이어졌다. 캐나다는 2017년 3월 세계 최초로 AI 국가 전략을 발표했고, 중국도 같은 해 '차세대 AI 발전계획'을 내놨다. 한국 역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출범시키며 대응에 나섰다.
이 시기의 AI 기술은 초기 단계였다. 2017년 보고서는 챗봇 성능이 낮고 상식적 추론에서 5세 아동보다 뒤처진다고 진단했다. 논문 데이터는 미국 외 국가들이 83%를 차지했고, 유럽이 28%로 미국과 중국을 제치고 AI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2020년부터는 GPT3의 등장과 함께 AI가 본격적으로 텍스트를 생성하고,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보고서는 이 시기에 AI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지만 동시에 편향성과 유해성 문제도 함께 커졌다고 지적한다.
2021년 보고서에는 처음으로 AI 윤리 챕터가 추가됐다. 산업계와 정부가 AI의 공정성·책임성 확보를 위한 연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민간 투자도 급증했는데, 2021년에는 무려 935억달러(약 125조원)의 민간 자금이 AI에 쏟아졌다. 특히 구글의 PaLM 모델은 훈련에만 800만달러가 투입됐을 정도로 모델 규모와 비용이 급증하는 추세였다.
![]() |
2023년은 생성형 AI가 일상으로 들어온 해다. GPT4, 라마, 미드저니 등 다양한 생성형 모델이 텍스트, 이미지, 음성, 영상까지 생성하며 사람과 AI의 경계를 허물었다. 보고서는 일부 분야에선 AI가 인간을 능가하지만, 복잡한 추론이나 계획 수립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시기엔 산업계의 기술 주도권이 뚜렷해졌다. 2023년 한 해 동안 산업계가 발표한 주요 모델은 51개, 학계는 15개였다. AI 기술이 자본 중심의 경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GPT4의 훈련 비용은 약 7800만달러, 구글의 제미나이는 1억~2억달러에 이른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최첨단 AI 기술이 소수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같은 해 AI 관련 규제도 급물살을 탔다. 미국에서는 25건의 AI 관련 법률이 제정됐고, 유럽은 'AI 법안' 최종 확정을 앞두고 있었다. 유엔도 글로벌 AI 감독 기구 논의를 시작했다. AI에 대한 대중 불안도 커져 설문조사 대상자의 52%가 AI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2025년 AI 인덱스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미·중 격차 축소'다. 미국의 AI 모델 수는 40개, 중국은 15개로 아직 수치상 격차는 크지만, 성능 면에선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 2023년 기준 미국과 중국 AI 성능 지수 차이는 17~30%포인트였지만, 2024년에는 0.3~8.1%포인트까지 좁혀졌다.
AI 관련 논문의 인용 비중에서도 중국(22.6%)이 미국(13.0%)을 앞섰다. 비록 최상위권 논문에선 미국이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양적 성장과 기술적 추격은 확실하다. 특히 '딥시크 쇼크'로 상징되는 중국 오픈소스 모델의 약진은 미국 중심 AI 질서에 균열을 내고 있다.
보고서는 또 AI 훈련 단가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2022년 기준 100만토큰당 20달러에 달하던 비용이 2024년엔 0.07달러로 감소했다. 이는 AI 활용 대중화의 핵심 요인으로 '1인 1 AI 비서' 시대를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된다.
보고서에서는 한국도 꾸준히 등장한다. 인구 대비 AI 특허는 세계 2위, 산업용 로봇 설치 대수도 상위권이다. 2016년부터 지속해서 AI 전략을 발표했고, 2018년엔 AI 관련 법률 정비에도 나섰다. AI 관련 특허와 논문은 많지만 인용 비중이 낮다는 한계도 살펴볼 수 있다. 현재까지 한국은 빠른 대응에 나서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앞으로 AI가 개인화·맞춤화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의료, 교육, 법률,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에서 AI의 역할이 확대되고, 이에 따라 윤리·책임성 문제도 함께 떠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AI 인덱스 보고서를 통해 확인한 사실은 분명하다. AI는 더 이상 일부 기업의 도구가 아닌 모두의 인프라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기술을 '만드는' 시대를 넘어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원호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