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머니투데이 언론사 이미지

군대 가기 싫다고 "한국에 난민 신청"…31년째 '3%', 난민 인정률 낮은 이유

머니투데이 조준영기자
원문보기
서울흐림 / 18.5 °
[MT리포트]미완의 난민제도①

[편집자주]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한국. 누적 난민 인정률은 여전히 3% 수준이다. 일부 유럽 국가들의 10분의 1 정도다.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사례가 많아서다. 그 사이 진짜 '난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 난민 제도의 현주소와 나아가야할 방향을 짚어본다.

역대 난민신청 추이/그래픽=이지혜

역대 난민신청 추이/그래픽=이지혜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 이들 100명 중 3명만 난민으로 인정받는다. 1994년 난민 제도가 시행된 지 31년째 인정률이 3%다. 일부 유럽 국가의 난민 인정률 30∼40%보다 턱없이 낮다. 인권단체는 꼬투리 잡기식 심사를 문제 삼지만 자격도 안되는 이들이 여러 차례 난민 신청을 하는 것도 문제다. 난민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진짜' 난민만 피해를 보고 있다.

21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1994~2024년 누적 난민 신청건수는 12만2095건이다. 하지만 누적 난민인정 건수는 1차 심사, 이의신청, 소송인정을 모두 합쳐 1544건에 불과하다. 심사완료 건수 5만7090건 대비 난민인정 건수인 난민 인정률은 2.7%다.

난민법상 난민은 △인종·종교·국적·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근거있는 공포로 인해 △국적국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 원하지 않는 외국인 △또는 한국 입국 전 거주한 국가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길 원하지 않는 무국적자 외국인을 말한다.

난민으로 인정할지 여부를 심사하는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난민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신청자가 지나치게 많아 인정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지난 31년간 국내 난민 신청 상위 국가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중국 등으로 주요 난민 발생국인 아프가니스탄, 시리아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신청이 가장 많은 러시아 국적자의 경우 징집거부나 병역기피 등 난민협약상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로 난민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병역의 의무가 있는 한국 남성이 군대에 가기 싫다며 다른 나라에 난민 신청을 하는 셈이다.

한국에 더 체류하기 위해 난민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따르면 2002년 난민과 상관없는 예술흥행(E-6) 체류자격으로 입국한 A씨는 2006년 첫 난민신청을 시작으로 총 6차례 난민사유를 바꿔가며 재신청을 반복해 15년 넘게 국내체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인권단체들은 법무부가 난민을 인정하는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주장한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난민들의 특수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엄격하게 증명자료가 있는지, 진술이 일체 흔들림이 없는지 등을 확인한다. 출입국 경로를 갖고 꼬투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며 "난민불인정 사유서를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법무부는 미얀마, 부룬디, 에티오피아, 콩고민주공화국 등 보호 필요성이 높은 국가 국민의 난민 신청은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31년 누적 난민 인정률은 △미얀마 56.4% △부룬디 50% △에티오피아 28.9% △콩고민주공화국 28.6%다.

난민 신청이 급증하는데 담당 인력은 정체돼 있다. 2013년 1574건이던 신청건수가 2024년 1만8336건으로 12배 가까이 급증했다. 반면 난민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은 2021년 이후 5년째 67명으로 고정돼있다. 이 중 심사업무를 맡은 인력은 41명뿐이다. 1년에 인당 400건 이상의 심사를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특히 난민법에 따라 난민 신청자에 대한 면접과 사실조사를 전담하는 난민 심사관은 단 4명(서울청 2명, 부산청·인천청 각 1명)이다. 사실상 심사관을 보조하는 공무원들이 대부분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구조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23년 해당 인력구성을 두고 "난민 신청자의 정상적으로 심사받을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고국을 떠나 낯선 땅을 밟은 이들이 자신이 난민임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를 제출하기도 쉽지 않다. 언어장벽도 높다. 스와힐리어, 암하라어 등 일부 소수언어는 통역인 섭외가 어려워 심사가 지연되기도 한다. 인력은 부족하고 신청이 쏟아지지만 당국 결정에 한 사람의 인생이 뒤바뀌는 만큼 속도만 낼 수도 없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3년 대비 지난해 심사적체 건수는 14배쯤 증가했다. 심사가 길어지는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난민 신청자들이 겪는 고통도 커진다. 난민 신청자는 심사신청 후 6개월 동안 취업이 금지돼 1인가구의 경우 정부가 지급하는 적은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

누적 난민신청 관련 현황/그래픽=김지영

누적 난민신청 관련 현황/그래픽=김지영



조준영 기자 cho@mt.co.kr 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이혜수 기자 esc@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