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측 "음역 일치하는 이상 표기법과 달라도 쓸 수 있다" 소송
재판부 "대외신뢰도 지장 초래 아냐…행복추구권 일환으로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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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을 든 해외여행객이 1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에서 이동하고 있다. . 2024.7.1/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여권 신청 당시 표기한 로마자 성명이 표기법과 맞지 않는다며 지방자치단체가 고쳐 발급하고 이를 바꾸지 못하도록 한 정부의 처분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강재원)는 만 4세 아동 A가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여권 로마자 성명 변경 불가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의 부모 B·C 씨는 지난 2023년 8월 A의 여권을 신청하면서 로마자 성명도 함께 표기했다.
여권 발급 업무를 맡은 수원시는 표기 중 일부가 로마자표기법에 어긋난다며 로마자 성명을 표기에 맞게 바꿔 여권을 발급했다.
이에 원고는 이를 원래대로 변경할 것을 신청했으나 외교부는 여권법 시행령에 따른 여권 로마자 성명 변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변경 불가 처분을 통지했다.
원고는 "원고 이름이 로마자로 표기되는 외국식 이름과 음역이 일치하는 이상 그 외국식 이름을 로마자 성명으로 표기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피고는 이와 다른 전제에서 신청을 거부했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우선 원고가 구 여권법 시행령에서 규정하는 '최초 발급한 여권 사용 전 로마자 성명을 변경하려는 경우'에 해당해 로마자 성명을 정정·변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여권 발급 신청 무렵 가까운 시일 내에 출입국 일정이 예정돼 있어 신청한 것과 다른 로마자 성명이 기재돼 있었음에도 발급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려웠고 수원시도 이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는 로마자 성명 변경 불가 처분 이후에서야 최초 발급 여권을 사용해 출·입국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법원은 로마자 성명이 음역 표기에 맞지 않는다며 변경 신청을 거부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글 이름이 로마자로 표기되는 외국식 이름과 음역이 일치할 경우 그 이름을 여권 로마자 성명으로 표기할 수 있다"며 "로마자표기법 규정 내용과 다소 다르더라도 대한민국 여권에 대한 대외신뢰도 확보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범죄 등에 이용할 것이 명백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이유만으로 로마자 성명 변경을 거부할 수 있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성명을 여권에 로마자로 어떻게 표기해 기재할지 결정하는 것도 개인의 자기 발현, 개인의 자율에 근거한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한 영역"이라며 "기본권 보장 의무를 지는 행정청 등은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공익을 중대하게 훼손하지 않는 한 가급적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ae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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