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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히 공격성을 키워야 할 때 부모가 자주 욱한다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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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건강한 ‘공격성’의 필요성
동아일보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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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서너 명의 아이들이 무리로 몰려다니면서 내 아이를 괴롭히고 있다고 가정하자. 내 아이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기를 바라는가? 한 번 정도라도 치받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야 ‘어, 요놈 봐라? 계속 당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 하면서 상대가 만만하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폭력을 써서는 안 되지만 부당하게 당하지도 말아야 한다. 세 대를 맞으면 한 대는 나도 때려야 상대가 ‘어, 생각보다 센데?’ 하면서 괴롭히는 것을 그만할 것이다. 이것이 힘의 균형이다.

힘의 균형을 이룰 정도로 자기를 지켜내는 당당함, 꿋꿋하게 버티는 힘, 이것을 ‘공격성’이라고 한다. 공격성은 옛것을 허물고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운영하는 힘이다. 공격성이 건강하게 적절히 발달해야 다른 사람의 공격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개척해 나갈 수 있고, 힘들어도 견딜 수 있다. 공격성을 적절하게 갖춰야 다른 사람과의 힘의 균형이 맞아 관계에서도 안전하고 대등하게 살 수 있다.

생후 6개월만 돼도 아기는 무는 행동을 한다. 아기는 눈앞에 보이는 폭신폭신한 장난감을 보면서 ‘이거 한번 깨물어 볼까?’라고 생각한다. 앉아서 놀게 되면 물건을 던진다. 쨍그랑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 이것이 공격성 발달의 시작이다. 이렇게 시작된 건강한 공격성 발달의 밑바탕에는 나만의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기 위한 창조적인 에너지의 동력원이 있다. 그래서 나의 어떤 의견이나 인생,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누군가 간섭하거나 방해하면 ‘왜 그러세요?’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다.

공격성은 세상을 헤쳐나가는 힘, 원동력이다. 좀 더 나를 진취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어떠한 좌절이나 나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어도 나의 생각대로 인생을 밀고 나가는 힘이 된다. 동시에 나와 내 가족과 나의 중요한 것을 지키는 힘이기도 하다. 건강한 공격성이 있어야 나를 지킬 수 있고,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공격성은 인간이 꼭 갖춰야 하고 발달시켜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공격성을 잘 발달시키지 못하면 지나치게 공격적이게 되거나 지나치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공격과 위축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다. 앞면만 계속 보여 주고 있던 사람이 언제 뒷면을 보여 줄지 모른다. 항상 위축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공격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앞면, 뒷면을 반복적으로 보여 줄 수도 있다.

아이의 공격성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부모의 공격성이다. 부모는 공격성을 갖되 공격적이어서는 안 된다. 나와 가족의 보호를 위한다는 타당한 이유를 갖고 이에 대적하는 상대에게 항의할 수는 있지만, 그저 자기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나오는 공격적인 모습은 비사회적인 모습이다. 부모가 지나치게 공격적이면 아이의 공격성은 적절히 발달하지 못한다.


아이가 공격적일지라도 부모는 공격적이면 안 된다. 아이를 가장 사랑하고 보호해줘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강도나 도둑이 나를 위협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부모가 공격적이면 아이는 세상이 두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아이를 향한 부모의 지나친 화는 아이의 분노를 부른다. 부모가 아이에게 보여 준 작은 가시는 아이에게 화살이 된다. 꽂힌 화살을 빼려고 하면 봉합되지 않은 상처가 건드려져 아프다. 화살을 빼지도 못하고 두지도 못하는 아이는 평생 자신만 아는 비명을 속으로 지르며 살아갈 수도 있다.

아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 내가 평정심을 잃고 흥분해 소리를 지르고 매를 찾게 된다면 내 아이의 공격성은 건강하게 발달할 수 없고 그저 공격적인 아이로만 키우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공격적이라고 똑같이 공격적으로 대처하는 부모들에게 꼭 해줄 말이 있다. 아이가 공격적인 것은 한창 감정이 발달해 가고 공격성이 발달해 가는 중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과정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모로서,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끈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폭력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허구의 센 척, 허구의 강함일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공격적인 사람들은 알고 보면 약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나약함을 보여주기 싫어서, 내지는 자신의 나약함을 이해조차 못 해서 센 척하는 것이다.


육아를 편안하게 하는 사람일수록 화를 덜 낸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지나치게 화가 나고 욱한다면, 아이를 잡을 것이 아니라 나의 육아 방식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아이 탓이 아니라 내가 내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내 안에 뭔가 풀지 못한 숙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내 마음의 안정이 너무 깨져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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