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자녀 둔 가족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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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자녀를 둔 황선희·이정욱·이형숙·임숙정씨(왼쪽부터)가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 사무실에서 경향신문 취재에 응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
“뼈저리게 외롭다” 우울증 겪어…보호자 60%가 “자살 고민”
택시 탔더니 “가정 분위기 깨는 아이”…식당서 쫓겨난 적도
“고민 나눌 모임 필요…나 없이도 아이가 행복할 환경 원해”
“아이가 미워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병원에 갔어요.”
뇌병변장애와 인지장애가 있는 15세 딸을 둔 황선희씨(51)는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 사무실에서 기자에게 말했다. 황씨의 딸은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홀로 이동은 물론 식사도 할 수 없다. 최근엔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는 일이 많아져 특수학교에서도 일찍 귀가한다. 계속 울부짖는 딸을 달래는 것이 일과의 대부분이다. 그는 어느 날 “‘뼈저리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20일 장애인 차별 철폐의날을 맞아 장애가 있는 자녀를 돌보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장애인 자녀와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상태로 돌봄 노동에 갇혀 있었다. 사회는 차별의 시선을 숨기지 않았고 이들은 더 고립됐다. 가족 전체가 삶의 끝자락에 설 만큼 위기에 처했다. 이형숙씨(59), 임숙정씨(49)도 함께 만났다. 8세 자폐증 아이를 키우는 윤모씨(42)는 지난 18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뇌병변장애를 앓는 6세 아들을 둔 임씨는 몇년 전 18층 집 베란다에 서서 ‘여기서 뛰어내리면 완벽하게 죽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인터뷰에 응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임씨처럼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 경기복지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2023년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실태 조사’를 보면, 최중증 발달장애인 보호자 1414명 중 59.8%가 자살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 중증 장애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도 종종 있다. 지난해 2월 서울 서대문구에서 40대 아버지가 뇌병변장애가 있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2023년 10월 대구에선 60대 아버지가 중증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미수에 그쳐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위기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돌봄에서 시작해 고립에서 극에 달한다. 활동지원 시간 바우처가 있지만 턱없이 모자란다. 교대자가 없으면 온전히 돌봄에 묶여 있어야 한다. 임씨와 황씨, 윤씨는 모두 자녀의 주돌봄자가 되며 직장을 그만뒀다.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어렵다. 이씨는 “(비장애인) 엄마들은 제가 아이 얘기를 하면 화성에 있는 돌 모양을 얘기하는 것처럼 느낄 것”이라며 “얘기해도 잘 모르니 고민을 털어놓기 쉽지 않다”고 했다. 황씨는 “친구들과 대화의 공통 주제도 사라지고, 가족 모임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때가 많아 이제 아이는 아예 데려가지 않는다”고 했다.
사회의 차별과 배제의 시선은 이들을 더 고립시킨다. 윤씨는 자녀를 데리고 택시를 탔다가 운전기사에게 “이런 아이는 시설로 보내라, 가정 분위기가 얘 때문에 다 깨지지 않냐”는 말을 들었다. 임씨도 자녀를 데리고 식당에 갔다가 ‘쫓겨난’ 적이 있다고 했다.
황씨는 딸의 학교 입학을 위해 유목민처럼 살았다. 지난 6년여 인천, 경기 고양, 서울 마포로 이사를 반복했다. 초등학교 입학 3년 전부터는 ‘특수학교 투어’를 했다. 특수학교가 모든 장애인을 받아주진 않기 때문이다. 학교 사정에 따라 지난해엔 휠체어를 탄 중증 장애학생을 받아줬지만, 올해는 휠체어 탄 학생은 추가 입학할 수 없다고 거부하기도 한다. 황씨는 “학교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받아주는 곳을 찾아 쫓겨난 것”이라고 했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임씨의 자녀도 부천의 특수학교까지 1시간 걸려 통학한다.
교육부의 ‘2024년 특수교육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전국 특수교육 대상자는 11만5610명으로 2023년보다 5% 늘었다. 하지만 특수학교가 수용할 수 있는 학생은 22.6%인 2만6084명에 불과했다. 윤씨는 “입학 경쟁이 심해 면접에서 누가 더 (장애 정도가) 나쁜지 겨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중증 장애인은 활동지원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중증도가 높으면 노동 강도가 더 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씨는 “아이가 크면서 지원사들이 ‘돌보기 어렵다’며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며 “운이 좋아야 지원사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윤씨는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해 24시간 아이를 혼자 돌본다. 그는 “지원서비스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원사 처우가 더 나아져야 한다”고 했다.
부모들은 ‘고민을 나눌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했다. 황씨에게 활동지원사, 치료 교사와 만나는 시간은 삶의 ‘버팀목’이다. 자녀의 상태를 공유하는 시간에 황씨는 ‘힐링’된다. 그는 “그런 시간이 있어서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임씨는 “같은 위로를 해도 비장애 자녀를 키우는 사람이 하는 것과 같은 처지인 사람이 하는 것은 다르다”며 “자조 모임이나 동료 상담이 힘이 될 때가 많았다”고 했다. 임씨는 “비영리단체 등 민간영역에서 이런 모임을 꾸리는 경우가 많은데, 공공영역에서 주도적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들은 정부의 지원대상 범위도 넓어져야 한다고 했다. 임씨는 “차상위 계층이 아닌 이상 모든 지원제도에 있어서 자부담금이 따라온다”며 “중증 장애인의 경우 집에서 식사할 때, 앉아 있을 때 모두 보조기기가 필요한데 지원이 부족하니 부담이 크다”고 했다.
생애주기에 맞는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특수학교 졸업 후 갈 수 있는 주간보호센터 등도 한정된 자원으로 입소하기 쉽지 않다. 이씨는 “한국은 성인이 되면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되는 세상 같다”며 “장애아들이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갈 곳이 없고 지원도 급격하게 줄어든다”고 했다.
부모들은 자신이 없을 때도 자녀가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공공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보호자가 사망한 후에도 아이가 살 수 있도록 독립시키고 싶은 것이 소망”이라며 “하지만 열악한 자립시설 등을 보면 독립이 어렵다”고 말했다. 임씨는 “가장 바라는 것은 아이가 내가 없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아이가 나보다 하루만 더 일찍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백민정·배시은 기자 mj10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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