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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민간인 국방장관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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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방부 장관인 서욱 전 장관은 “남북이 대치한 현실에서 국방장관은 장군 출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이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9월1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서욱 국방장관에게 임명장을 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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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 | 통일외교팀장



“국방부 장관도 장군인가요?”



온라인 문답 게시판에 자주 올라오는 질문이다. 현역 군인은 국무위원인 국방부 장관이 될 수 없다. 헌법 87조에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역 군인이 예비역으로 전역하면 국방장관을 맡을 수 있어, 장군과 다를 바 없는 장군 출신들이 국방장관을 독식하고 있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60년 넘게 역대 국방장관 39명은 모두 장군 출신이다. 39명 가운데 33명이 육군 출신이다. 육군 출신 33명 가운데 32명이 중장, 대장 출신이다.



별 네개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고 합동참모의장, 참모총장으로 근무하다 오전에 전역해 양복으로 갈아입고 오후에 국방부 장관에 취임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국방장관들을 두고 ‘양복 입은 군인’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현실이 이러니 국민들이 국방장관을 장군으로 충분히 오해할 만하다.



국방장관은 군의 대표자가 아니라 민간을 대표해 군을 지휘·감독하는 문민통제의 상징이자 실무 책임자다. 국군조직법에는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사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고 합동참모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을 지휘·감독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장군 출신 장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장군으로 여기고 군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



2000년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민간인 국방장관을 임명해 문민통제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역 군인이나 장군 출신들은 분단 현실을 들어 민간인 국방장관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방장관인 서욱 전 장관도 “제가 현역 시절에는 국방장관은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한 현실에서 야전 현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군령·군정권을 행사하는 장군 출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고,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말했다. 육군사관학교 41기인 그는 2020년 9월18일 오전 육군참모총장에서 전역한 뒤 그날 오후 장관에 취임한 ‘양복 입은 군인’이었다.



서 전 장관은 12·3 내란사태를 겪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국방장관은 군사대비태세에 대해서는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합참의장이나 각 군 참모총장의 보좌를 받거나 과감하게 위임하고 국무위원으로서 군의 정치적 중립, 군사적 전문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문민통제의 가교 구실, 타 정부 부처와의 업무 조율 및 협조,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의 군의 대변 또는 국민의 목소리 청취 등 다양한 정무적 활동에 비중을 두어 업무를 추진해야 하고 이에 걸맞은 전문가가 국방부 장관으로서 적합하다.”



강건작 예비역 육군 중장(육사 45기)은 최근 펴낸 저서 ‘강군의 조건’에서 “장성 출신 국방부 장관이 능력 있는 민간인보다 더 나을 이유가 없다. 국방부 장관을 정권을 창출한 민간인 중에서 잘 찾아 임명하고 차기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이면 더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성장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고 대통령이 국방 업무에 정통하면 국민이 안심할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부족한 군 경험은 우수한 장군들이 보좌하면 되고, “군 수뇌부를 사령관이 아니라 합동참모의장, 참모총장 등 ‘참모’ 명칭으로 부르는 것은 민간인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군사참모 역할을 하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12·3 내란사태 때 편견을 가진 장군 출신 국방부 장관이 얼마나 위험한지 똑똑히 봤기 때문에, 군 내부에서 민간인 국방장관에 대한 거부감, 우려가 전보다 엷어졌다. 이참에 각 당 대선 후보들이 대통령과 군사 전문 직업군인 집단을 연결하는 다리 구실을 맡은 국방부 장관에게 필요한 능력이 무엇이고, 어떻게 인선할지 공약으로 내놓아야 한다.



이승만 정부와 4·19 혁명 이후 제2공화국 때까지 13년간 국방장관 10명 중에는 군 출신이 5명, 군 경력이 없는 민간인이 5명이다. 민간인 국방장관은 대한민국이 ‘가보지 않은 길’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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