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연구원 ‘사모펀드 요양사업 운영 사례·시사점’
영국, 미국 등 해외 대형 요양시설 파산 사례 잇따라
감독 부재한 채 사모펀드 투자 남용, 서비스 질 ‘뚝’
인프라 부족한 한국, 민간 참여 열고 공공성 지켜야
영국, 미국 등 해외 대형 요양시설 파산 사례 잇따라
감독 부재한 채 사모펀드 투자 남용, 서비스 질 ‘뚝’
인프라 부족한 한국, 민간 참여 열고 공공성 지켜야
사모펀드가 인수한 영미권 해외 요양시설들은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부재 속에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고, 서비스 질 저하가 이어지다가 결국 파산하는 결말을 맞고 있다. 한국이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금융자본 투입와 투명한 관리 감독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요양시설이 사모펀드의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돌봄의 본질이 훼손된 해외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영미권 내 대형 요양시설들은 서비스 질이 저하되다가, 결국 파산에 이르고 있다. 이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금융권 요양시장 진출을 독려하는 동시에, 돌봄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감독과 관리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돌봄 외면한 사모펀드식 요양시설 경영
20일 보험연구원이 발간한 ‘KIRI 리포트’에 따르면 영국·미국에서는 사모펀드가 요양시설을 인수한 뒤, 재무적 압박과 서비스 질 저하로 인해 대형 요양시설들이 파산했다.
영국 최대의 요양시설 운영기업인 ‘서던 크로스 헬스케어(SCH)’는 지난 2011년 파산했다. SCH는 사모펀드 인수 이후 부동산을 매각한 뒤 다시 임차하는 구조를 선택했으나, 급증한 임대료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2011년 파산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요양시설 체인인 HCR 매너케어 역시 사모펀드 인수 이후 부동산 매각과 과도한 부채 조달로 재정 압박이 심화했고, 결국 2018년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이들의 사례는 요양시설이 본래의 돌봄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사모펀드의 단기적 투자 수익 실현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발생한 문제로 지적된다. 사모펀드들은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차입매수(LBO) ▷재자본화 ▷매각 후 재임대 등 무리한 금융기법을 남용했다.
이들은 요양시설 인수 시 외부 차입금을 과도하게 끌어들여, 인수 직후부터 막대한 부채와 이자 부담을 시설에 지웠다. 인수 후 운영기업에 추가 차입을 강요하고, 이 차입금을 사모펀드 투자자에게 배당금·이자 형태로 조기 회수했다. 더욱이 요양시설 부동산을 매각한 뒤 다시 임차해 사용하는 구조로, 사모펀드는 매각 대금을 챙기고 운영기업은 높은 임대료를 부담하게 했다.
이런 구조로 인해 시설 운영비의 상당 부분이 이자·임대료·자문료 등 ‘요양 외 비용’으로 빠져나갔고, 요양시설은 ▷인력 감축 ▷서비스 질 저하 ▷입소자 사망률 증가 등의 후폭풍을 피할 수 없었다.
문제는 ‘임차 허용’ 아닌 관리·감독의 부재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 이같은 해외 사례들은 주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지금까지 국내에선 임대를 통한 요양시설 운영이 제한됐는데, 만약 임차 허용을 통해 금융자본의 시장 참여를 촉진할 경우 서비스 질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해외 실패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임차 허용이 아니라, 사모펀드의 단기 수익 극대화를 위한 잘못된 투자 행태와 이를 견제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감독 부재에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에서는 요양시설 임차 환경 자체를 차단하는 대신, 사모펀드 등 금융자본의 남용을 억제하고 서비스 질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요양시설 소유구조와 지출구조의 투명성 강화를 의무화하고, 요양 외 비용 관리 및 최소 인력 기준을 신설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영국도 대형 요양시설 사업자에 대한 재무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해 재정 위험 발생 시 지방정부가 선제 대응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임차=문제’ 공포마케팅식 대응 경계해야
초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은 요양 인프라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요양시설 운영 주체는 개인 사업자나 비영리 법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시설 규모도 소규모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운영 효율성이 낮고, 기술 도입이나 서비스 혁신을 추진할 여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한국의 요양 산업은 영미권과 구조적으로도 다르다. 보고서를 작성한 송윤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요양시설 설립 시 토지와 건물 소유를 필수 요건으로 두고 있어, 임차 운영을 허용하더라도 해외처럼 금융자본 남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고 설명했다.
결국 핵심은 민간 금융자본이 요양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되, 돌봄 서비스의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촘촘한 관리·감독 체계를 마련하는 데 있다. 송 연구위원은 “민간 자본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참여는 열어주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해외 실패 사례를 단순히 ‘공포마케팅’처럼 인용해 민간 자본의 진입을 막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 사례를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한국의 제도적 환경과 시장 구조를 고려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