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탈레반 버티는 고국행 거부해도…파키스탄, 아프간인 수만명 추방

한겨레
원문보기

탈레반 버티는 고국행 거부해도…파키스탄, 아프간인 수만명 추방

서울흐림 / 3.9 °
파키스탄에서 추방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19일 아프가니스탄 두번째 도시 칸다하르의 스핀볼다크에서 난민 캠프를 지나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는 파키스탄의 추방 조처가 이슬람 원칙과 국제 규범에 위배된다며 비판했다. EPA 연합뉴스

파키스탄에서 추방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19일 아프가니스탄 두번째 도시 칸다하르의 스핀볼다크에서 난민 캠프를 지나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는 파키스탄의 추방 조처가 이슬람 원칙과 국제 규범에 위배된다며 비판했다. EPA 연합뉴스


“우리가 받은 대우를 생각하면 다시 돌아갈 수 없어요. (아프가니스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죠.”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 북서부 토르캄 국경에서 30도 넘는 무더위 속에 길가에 나앉은 한 아프간 남성이 이렇게 말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19일 전했다. 이 남성은 자신의 아이들이 태어난 나라 파키스탄을 떠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스하크 다르 파키스탄 외교장관은 이날 아프간 수도 카불을 방문해 탈레반 정권의 외교장관 아미르 한 무타키와 회담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무타키 장관은 난민 송환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말했다.



하루 전인 18일 파키스탄 정부는 이달 30일까지 8만명 이상의 아프간 국적자들을 본국으로 송환했다고 밝혔다. 유엔은 1만9500명 이상의 아프간인들이 이달 이미 추방됐다고 집계했다. 탈레반 정권은 매일 파키스탄에서 아프간인 700~800가구가 추방되고 있으며 앞으로 몇달 안에 최대 200만명이 추방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아프간에서는 1979년 소련군 아프간 침공 이후 계속되어온 여러 전쟁 탓에 난민이 대량으로 발생했고, 현재 각각 수백만명이 이웃 파키스탄과 이란에서 거주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파키스탄에 350만명의 아프가니스탄 국적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엔 2021년 탈레반 아프간 재점령 이후 파키스탄으로 들어온 난민 약 70만명이 포함돼 있다고 추정한다. 유엔은 이 중 절반이 서류 미비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자국에 거주하는 수백만명의 아프간 난민을 부담스럽게 생각해왔으며 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파키스탄 서북부에는 ‘파키스탄 탈레반’이 활동하고 있으며 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파키스탄 정부는 탈레반이 2021년 8월 20년 만에 아프간을 재장악하고 내전이 일단락되자, 자국 내 아프간 난민을 돌려보내는 작업을 벌여왔다.



파키스탄에서 아프간으로 넘어가는 토르캄 국경에서는 무장한 파키스탄 경비병과 아프간 경비병의 감시가 이뤄지는 가운데, 남성과 여성이 별도로 분리된 문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아프간으로 송환되는 사람 중엔 노인도 있으며, 일부는 들것에 실려 국경을 넘고 있다. 군용 트럭이 아프간 송환 가족들을 국경 인근에 위치한 임시 대피소로 수송하고 있다. 국경에서 파키스탄 경비병들이 송환되는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이 가져갈 가재도구까지 제한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과 아프간의 국경 충돌도 최근 급증하고 있다.



평생 파키스탄에서 나고 자란 난민 2세들도 추방 대상이 됐다. 아프간에서 산 적 없는 난민 2세 사예드 라만은 비비시에 “저는 평생 파키스탄에서 살았다. 이곳에서 결혼을 했다”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세 딸의 아빠라는 살레는 탈레반 정권의 극단적 여성 억압 정책 속에서 살게 될 딸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살레의 딸들은 파키스탄 펀자브 지방에서 학교에 다녔지만, 아프간에서는 중등학교부터는 다닐 수 없다. 탈레반 정권이 12살 이상 여성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살레는 “내 아이들이 공부를 하게 하고 싶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녔던 시간이 버려지길 원하지 않는다”며 “모든 사람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호소했다.



아프간 재정위원회 위원인 헤다야툴라 야드 신와리는 아프간 정부가 귀환자들에게 약 4천~1만아프가니(8만~20만원)를 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런 소액 지원금으로 추방된 난민들이 아프간에서 생존하긴 쉽지 않다. 인구 4500만명의 아프간은 3명 중 1명꼴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