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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 tvN 유퀴즈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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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이 외국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아들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가운데, 그의 용기가 성소수자 부모의 ‘커밍아웃’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커밍아웃은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 게이(남성 동성애자), 바이섹슈얼(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알리는 행위를 뜻한다. 성소수자 당사자와 충분한 대화를 나눈 부모, 형제자매 등 가족이 커밍아웃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할리우드 영화 ‘결혼 피로연’ 대사에 경험 녹여
윤여정은 18일(현지 시각) 북미에서 개봉한 할리우드 출연작 ‘결혼 피로연’ 홍보를 위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소개하면서 성소수자 부모임을 커밍아웃했다. 그는 “큰아들이 2000년에 (나에게) 커밍아웃을 했다”며 “뉴욕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을 때 뉴욕으로 온 가족이 가서 아들 결혼식을 열어줬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한국은 매우 보수적인 국가다.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또는 자기 부모 앞에서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내 큰아들이 동성애자여서 나는 아들과의 사이에서 겪은 경험을 이 영화에서 공유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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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이 할리우드 신작 ‘결혼 피로연’ 개봉을 앞두고 이뤄진 ‘피플’ 등 국외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큰아들이 동성애자라고 밝혔다. 피플 누리집 갈무리 |
그의 말처럼 한국의 성소수자 10명 가운데 8명가량은 부모에게 커밍아웃하지 않는다(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이미 학교 등에서 차별·편견에 노출돼 상처받는 과정에서 가족이 알게 되면 마음 아파하며 자신을 부끄러워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품게 되기 때문이다.
2014년 꾸려진 ‘성소수자부모모임’ 창립 멤버이자 운영위원인 지인(활동명) 활동가는 “성소수자 자녀에게 부모는 가장 큰 위로가 될 수 있고 또 가장 큰 고통일 수도 있기에,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는 가족이나 주변에 커밍아웃하고 싶어하는 당사자들을 위한 커밍아웃 워크샵 등 여러 프로그램을 해왔다”고 했다. 그는 윤여정의 성소수자 부모 커밍아웃에 대해 “유명인의 커밍아웃은 (성소수자 당사자·가족 등에) 큰 힘”이라고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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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커밍아웃 이후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서 활동하게 된 나비와 비비안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
‘아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주변에 말해도 될까요?’는 많은 성소수자 부모가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이 2023년 펴낸 책 ‘웰컴 투 레인보우’는 이런 질문에 대해 “누군가에게 자녀의 성정체성을 얘기하고자 할 때는 당사자인 자녀와 먼저 상의해달라”고 답했다. 자녀의 성별정체성, 성적 지향은 프라이버시에 해당하기에, 이를 침해하지 말고 자녀의 의향을 미리 살피라는 뜻이다.
성소수자 당사자는 물론 가족의 커밍아웃도 차별과 편견에 맞서는 사회운동이 되기도 한다. 지인 활동가는 “최근 동성애자 딸을 둔 어머니가 딸의 결혼식 청첩장을 돌리다가 한 지인으로부터 ‘이런 걸 왜 대놓고(공개적으로) 하느냐’는 얘길 듣고서 ‘굳이 감출 이유가 있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면서 “저도 아들과 상의해서 제 주변 사람들에게 성소수자 부모라는 커밍아웃을 하는데, 수없이 하다 보니 가끔 성소수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차별적인 말을 들어도 상처를 덜 받게 됐다”고 했다. “부모라도 앞장서서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저는 성소수자 부모로서 오늘도 세상에 커밍아웃을 합니다.”(지인 활동가)
국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의식 수준은 당사자·가족·지지자 등의 노력으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국제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에서 동성애가 사회에서 수용되는 정도를 국가별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19년 기준 한국은 44%로, 미국(72%)·영국(86%)·캐나다(85%)·일본(68%) 등에 견주면 낮지만 2002년(25%)에 비해선 많이 증가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하는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도 ‘성소수자를 나의 이웃, 직장 동료, 친구 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2013년 37.9%에서 2024년 53.3%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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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펴낸 책 ‘커밍아웃 스토리’(왼쪽)과 ‘웰컴 투 레인보우’ 표지 이미지. 성소수자부모모임 제공 |
윤여정은 1993년 영화 ‘결혼 피로연’을 리메이크한 작품에서 동성애자인 한국계 남자 주인공의 할머니 역할을 맡았다. 그는 외국 언론 인터뷰에서 영화의 주제와 관련해 “내게는 매우 개인적인 주제여서 감독과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며 “이 영화에서 내가 손자에게 말하는 대사 ‘(네가 누구이든) 너는 내 손자야’라는 말은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의 영화 속 대사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 후 듣고 싶은 말’로 꼽은 말들과 닮았다. “네가 어떤 사람이든 소중한 사람이야” “내게 말해줘서 고맙다” “넌 잘못한 게 없어. 사회의 편견이 잘못된 거야” “세상엔 다양한 성정체성이 있어.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 “사랑하는 감정은 소중한 거야”(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과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이 공동 제작한 가이드북 ‘학교에서 무지개길 찾기’ 중에서) 지인 활동가는 “자식이 성소수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어떠한 부모인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며 “저를 성장시켜준 아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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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 CJ ENM 제공 |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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