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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민주당 전 대통령 3인, 불문율 깨고 트럼프 공개 비판

동아일보 홍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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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뉴시스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등 세 명의 민주당 소속 전직 미국 대통령들이 이달 들어 공개석상에서 현직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릴레이’로 비판했다. 미국 정치권에선 대통령을 먼저 지낸 인사가 후임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다. 이에 따라 전직 대통령들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개 비판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일(현지 시간)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에서 폭탄 테러 발생 30년 추모행사에 참석해 “최근 나라가 더 양극화했다”며 “모두가 누구의 분노가 가장 중요하고 타당한지를 논쟁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로 168명이 사망했을 당시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었다.

그는 이어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억누르려는 노력에 우리의 삶이 좌우된다면 (미국 건국 이래) 250년간 더 나은 나라를 향해온 여정을 위험에 빠트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시달리는 연방정부 공무원들의 노고를 위로한 뒤 “가끔은 자기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게 본인에게도 좋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전임 대통령 3인방’의 연쇄 비판을 개시한 인물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다. 그는 3일 뉴욕 해밀턴 칼리지 강연에서 “이렇게 공개 연설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들과 사법기관 등을 위협하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어 “지금 침묵하고 있는 정당들이 저나 제 전임자들이 그런 행동을 했다면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그건 옳지 않다’라고 말하는 평범한 시민”이라며 저항을 촉구하기도 했다.

바이든 전 대통령 역시 15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장애인 단체 행사 연설에서 “새 행정부는 취임 100일도 안 돼 엄청난 피해와 파괴를 가져왔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특히 “그들(트럼프 행정부)은 미 사회보장국(SSA)에 도끼질을 하고 있다”라며 “사회보장 제도는 단지 하나의 정부 프로그램이 아니라 신성한 약속”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거명하며 직접 겨냥해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세 명이 내놓은 메시지는 모두 뚜렷하게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1월 트럼프 취임 이후 공개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은 전직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 조지 W. 부시뿐이지만 그 역시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는 ‘원활한 권력 이양’을 위해 현직 대통령을 존중하는 것이 관례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새 대통령이 취임한 뒤 100일은 새 행정부의 안착을 위해 언론과 의회도 비판을 자제하는 ‘허니문’ 기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채 100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세 전임자들이 연달아 비판에 나선 것은 전례 없이 드문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과 트럼프 대통령의 감정적인 악연도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보다 4살 많은 바이든 전 대통령을 ‘슬리피(sleepy·졸린) 조’라고 부르며 조롱했고 장남 헌터 바이든의 범죄 및 마약 혐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는 케냐에서 태어난 무슬림이라는 거짓 주장을 줄기차게 반복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는 2016년 대선에서 격돌하며 막말을 쏟아낸 바 있다.

이에 맞서 지난해 대선 유세 과정에서 바이든 전 대통령은 트럼프 지지자들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불렀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친 음모론에 고함을 지르며 열광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생일이 두 달 차이로 거의 동갑인 클린턴 전 대통령은 아직도 자신이 더 젊다며 트럼프를 비꼬기도 했다. WP는 “세 전직 대통령들이 보이는 원한은 국가 지도자들로서는 흔치 않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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