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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뮤비 등장’ 인기 동물인데… 카피바라, 아르헨 부촌서 생존투쟁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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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년 전부터 급증... 일상생활 피해" 민원 급증
'불임 백신' 시범 접종 시작... 개체수 줄이기 착수
"지역 개발로 카피바라 서식지 파괴 탓" 지적도
2021년 8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노르델타 지역에서 카피바라 가족이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한 여성이 촬영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FP 연합뉴스

2021년 8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노르델타 지역에서 카피바라 가족이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한 여성이 촬영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FP 연합뉴스


지난달 공개된 걸그룹 블랙핑크 소속 제니의 솔로 1집('루비') 타이틀곡 '라이크 제니(like JENNIE)' 뮤직비디오는 한 마리 동물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귀여운 외모 덕에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젊은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설치류 '카피바라'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한 부촌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생존 투쟁'을 하고 있는 신세다. 왜일까.

1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아르헨티나 라나시온 등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자 동네로 꼽히는 노르델타에서 카피바라는 한마디로 '외부 침입자'다. 워낙 자주 출몰하는 탓에 주민들의 일상생활에까지 지장을 줄 정도다. 급기야 이 지역에선 카피바라 개체수 조절을 위한 '불임 백신' 시범 접종 활동까지 시작됐다.

"개와 싸우고 교통사고 유발... 외부 침입꾼"

지난달 공개된 한국 가수 제니의 신곡 '라이크 제니(like JENNIE) '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카피바라. 유튜브 캡처

지난달 공개된 한국 가수 제니의 신곡 '라이크 제니(like JENNIE) '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카피바라. 유튜브 캡처


현지에서 ‘카르핀초’라고도 불리는 카피바라는 남미에 주로 서식한다. 성체 기준 몸길이 1m 이상·몸무게 60㎏ 이상일 정도로 몸집이 크지만, 귀여움을 갖춘 것은 물론 온순하고 친화력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형을 본뜬 인형과 액세서리 등 캐릭터 제품들이 각국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노르델타 지역에선 정반대 상황이다. 외부 출입이 제한되는 주택단지(Gated Community·게이티드 커뮤니티)인 탓에 카피바라는 그저 '바깥에서 들어온 말썽꾼'이다.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개와 싸우거나 교통사고를 유발했다는 민원이 5, 6년 전부터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개체수 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그 무렵이다.

최근 들어선 현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카피바라 무리'의 사진·영상도 잇따라 게시되고 있다. 덩치 큰 카피바라가 줄지어 길을 건너고, 집 마당까지 들어와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배구 코트 근처 모래밭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인공 석호에서 물놀이하는 카피바라 가족의 SNS에 올랐다. NYT는 "약 4만5,000명이 거주하는 노르델타에 1,000마리가량의 카피바라가 있는데, 이는 2년 전에 비해 거의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라고 전했다.

"대체 서식지 마련해야" 목소리도

2021년 8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촌 노르델타 입구에서 환경보호 활동가들이 카피바라 보호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P 연합뉴스

2021년 8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촌 노르델타 입구에서 환경보호 활동가들이 카피바라 보호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P 연합뉴스


결국 노르델타의 부동산 개발 업체가 구체적 대응에 나섰다. 원래 외부인 출입 제한 등 주택단지 관리 업무를 맡아 온 이 업체는 '카피바라 민원' 해결을 위해 지방정부 승인을 받아 수의사를 고용한 뒤, 시범적으로 불임용 백신 주사를 놓고 있다. 인위적으로 '카피바라 개체수 줄이기'에 착수한 것이다.


다만 현지에서는 '인간이 자초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르델타 개발로 카피바라 서식지가 파괴됐고, 이 때문에 카피바라 무리가 사람들의 주거 지역으로까지 오게 됐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파라나강 습지 위에 지어진 노르델타를 두고 환경운동가들은 2000년 건설 당시부터 거세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피바라의 '무단 침입'이라기보다는 '생존 투쟁'에 가깝다는 얘기다.

주민들 의견은 분분하다. 해당 지역에서는 '카피바라는 도시에서 살게 된 야생동물일 뿐'이라는 견해와, '대체 서식지 마련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