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대통령 염장이’에게
염습 방법을 배우다
‘대통령 염장이’에게
염습 방법을 배우다
장례는 전통적으로 ‘사내 몫’으로 여겨졌다. 입관·운구 등 주요 절차를 맡는 것은 남성. 그러니 장례를 주관하는 장의사 역시 초창기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최근 장례 지도사를 희망하는 20~30대 여성이 늘고 있다. 어려움은 없을까. 죽음을 다룬 영화 ‘숨’의 주인공이자 역대 대통령 6명의 장례를 치러 ‘대통령 염장이’ 소리를 듣는 유재철(65) 대한민국장례문화원(대장원) 대표에게 지난 11일 염습(殮襲)을 배웠다. 염(殮)은 ‘묶는다’, 습(襲)은 ‘목욕시키고 갈아입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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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토리최근 유재철 대표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영화 '숨'이 개봉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
◇가지런히 몸을 모신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대장원 사무실. 모르는 용어투성이였다. “수시(收屍)부터 하겠다.” 가만히 서 있으니 유 대표가 다시 말했다. “머리와 팔다리를 가지런히 바로잡는 작업부터 하겠다.” 그는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의 장례를 치른 베테랑 염장이.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법정 스님 등의 마지막 길도 그가 닦았다.
실습대에는 성인 키와 길이가 엇비슷한 나무 판자(‘칠성판’)가 놓여 있었다. 이 위에 망자를 모신 뒤 한지를 접어 만든 ‘지(紙)매’로 신체를 묶어 고정하는 작업이 수시다. 통상 임종을 확인한 직후, 신체가 뒤틀리는 것을 막기 위해 몸이 굳기 전인 3시간 이내로 하는 것이 일반적. “중풍 등으로 세상을 떠나면 손목 등이 꼬여 있는 경우도 있어요. 곱게 펴 드린 뒤 고정합니다.” 팔꿈치·무릎 위 등 관절 바로 위를 묶는 것이 원칙. “애먼 곳을 묶으면 뼈마디가 굽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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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염장이'라 불리는 유재철 대장원 대표에게 염습 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수의를 입힐 때 매듭이 풀리지 않도록 지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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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몸을 묶어 고정하는 수시 작업에서 매듭은 한 번에 당겨 풀 수 있도록 묶어야 한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
“한번 묶어 보라”는 말에 무심코 두 번 엮어 ‘옭매듭’을 지었다. 그가 ‘지금까지 뭘 본 건지’ 하는 눈빛으로 내가 묶은 매듭을 푼다. 염을 할 때 제거해야 하기에 매듭은 풀기 쉽도록 한 번만, 이후 반시계 방향으로 틀어 돌려 고정한다. 이 작업 이후 약 24시간 동안 안치실로 모신다. 잘못 묶어 풀었다, 묶었다 하는 것도 망자를 번거롭게 하는 일이다. 마네킹을 앞에 두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르신 위로 건네는 건 무례”
“장례의 꽃이라고 하지요.” 염습 이야기다. 안치실에서 나온 망자는 목욕을 하고 수의를 입는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유족이 고인과 마주하는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 유 대표가 “옷을 다 입히기 전까지 고인의 몸이 유족에게 보이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례 지도사가 최소 2인 1조로 움직이는 이유다. 한 명은 천을 들어 몸을 가리고, 다른 한 명이 고인을 씻기고 함께 수의를 입힌다.
염장이의 실력은 여기서 드러난다. 핵심은 ‘간결함’에 있다. 전문가일수록 군더더기 없이 고인의 몸을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작업한다. “예의이자 배려”라고 했다. 장례 지도사 13년 차 이진선 수석 연구원은 “산 사람이 마네킹 역할을 하다 보면 능숙할수록 몸이 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며 “망자도 그럴 것이라는 마음으로 모시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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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습 과정에서 몸을 닦을 땐 몸이 유족에게 보이지 않도록 천으로 가리고 진행하는 것이 원칙.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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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이 실력의 핵심은 '간결함'에 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
‘마지막 목욕’ 작업을 돕기로 했다. 솜을 알코올에 적셔 몸을 닦는다. 어깨에서 시작해 같은 자리에 한 번, 두 번 정성스레. 기저귀 역할인 솜 덧댄 천과 앞가슴 가리개를 올려 묶고 속장갑과 속버선으로 손과 발을 감싼다. “버선 달라”는 말에 망자의 가슴팍으로 건넸는데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이 연구원이 “고인 위로 주는 건 무례”라며 “옛날 같았으면 손등을 한 대 맞았다”고 했다. 발 쪽으로 에둘러 건네는 것이 원칙.
기억해야 할 예의와 예법이 많았다. 바지를 입힐 때는 반드시 사폭 넓은 쪽이 오른쪽 다리로 가도록 한다. 유 대표는 2~3번 손을 움직여 묶는 고름도 한 번 만에 쓱 쥐어 매었다. 과정을 간소화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 매듭에서 정갈함이 풍겼다. 괜히 대통령 염장이가 아니었다.
◇고인과 유족에 대한 배려
질문 하나가 튀어나왔다. “대표님을 염장이로 모시려면 많이 비싼가요?” 대통령 염장이라니,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예상과 달리 삼일장을 치르는 일반 장례 비용은 270만~390만원. 유 대표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문의할 때 많이 망설이더라”고 했다. 이런 수식어가 붙고 난 뒤 일반인 장례가 최근엔 뜸하다고 했다. 그는 1994년 조계사 앞에서 불교 장의사(연화회)로 일을 시작했다. 스님 다비식 역시 전문.
상의는 저고리, 두루마기, 도포 순으로 겹쳐 준비한다. 겉옷 안에 내복을 미리 넣어 움직임 한 번으로 어린아이에게 옷을 여러 벌 입히는 것과 같은 방법을 쓴다. 배운 대로 나의 팔 한쪽을 소매 안으로 우선 넣은 뒤, 또 다른 손을 ‘두 이(二)' 자 모양으로 교차하듯 반대쪽으로 넣어 고인의 팔을 잡아당겼다. 두세 번 삐걱거렸다. 망자였다면 경을 칠 일이다. 염할 때의 금기는 대부분 고인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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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대표의 사무실 안에는 염습 실습을 할 수 있는 도구가 준비돼 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
얼굴을 알코올 솜으로 닦으며 마지막 작업을 한다. 볼이 패이거나 흉이 진 곳은 솜을 넣어 매만지거나 화장으로 가린다. 향물 등으로 머리를 감긴다. 생전 잠든 모습과 같은 평온한 표정을 만드는 것이 고인의 마지막 얼굴을 기억할 유족에 대한 배려. 유족이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 얼굴 싸개와 수의용 모자를 씌운다.
보내드릴 준비가 끝났다. “마네킹 아닌 실제 고인은 많이 다르겠지요”라 묻자 “맞다. 사실 남녀 불문 망자와 만나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장 실습을 나가 고인의 몸을 마주한 뒤 “못 하겠다”며 뛰쳐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그래도 최근엔 장례 과정이 분업화해 상담·의전 같은 분야만 따로 맡을 수 있다.
◇가장 평온한 이별을 위해
장례 지도사를 희망하는 20~30대가 늘어가는 이유로 현장에서는 “불황이 없는 데다 전문 분야로 인정받는 추세”를 꼽았다. 과거 ‘험한 일’이라며 기피하기도 했으나 합리성과 실리를 추구하는 요즘 세대의 특성상 취업률 등을 고려한다는 것.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례 지도사 국가 자격증 취득자는 2020년 1602명에서 지난해 2967명으로 4년 만에 85.2%나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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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염장이'는 매듭 하나에서도 정갈함이 묻어났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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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과의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안면포와 수의용 모자를 씌운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
이정선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죽음을 입 밖에 내기도 불편해했다면 최근엔 ‘웰다잉’에 대한 관심으로 일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장례 지도사가 꿈인 대학생 황태영(25)씨는 “외할머니의 장례를 잘 치러 준 장례 지도사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그 따듯한 기억을 누군가에게 되돌려주겠다는 소명 의식을 갖고 배워 나가고 있다”고 했다.
특히 젊은 여성 비율이 높다. 올해 을지대 장례지도학과에 입학한 정원 40명 중 33명이 여성. 한 장례 지도사 교육원 강사는 “고인을 모시거나 관을 옮기기 위해 힘이 필요하긴 하지만 유족을 섬세하게 위로하고 손이 빠르다는 점에선 여성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통상 여성은 여성이, 남성은 남성이 염습한다는 점에서 수요가 늘 있다.
이상한 일이었다. 수의를 입힐수록 마네킹이 사람 형태를 갖추며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죽음을 다루는 일이란 살아 있는 이의 마음을 다루는 일이기도 했다. 이들의 손끝에서 누군가는 가장 평온한 이별을 맞는다. 유 대표는 영화 ‘파묘’의 배우 유해진의 실제 모델이었다. 다들 자기는 안 죽을 것처럼 살지만 죽음을 공부해야 삶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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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미 기자가 수의를 입힌 마네킹을 바라보고 있다. 유재철 대표는 장례 절차를 배우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작년 봄부터 매월 셋째주 토요일 오후 2~5시에 무료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친구가 무료로 알려준 장례 일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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