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양재동 화훼공판장
황금 같은 틈새 여유 시간. 막상 갈 곳을 몰라 허비하기 쉽지요. 편안한 휴식도 좋지만 때론 낯선 공간이 주는 활력이 필요합니다. 숨은 보석 같은 공간에서 짧지만 확실한 충만을 만끽해 보세요. |
![]() |
양재동 화훼공판장 생화 매장 영업시간은 밤 11시 반~이튿날 낮 12시, 분화 매장은 오전 7시~저녁 7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봄=꽃이다. 꽃에 무심하던 이들도 4월엔 절로 초록 세상이 궁금해진다. 꽃축제, 봄꽃, 꽃 나들이, 꽃비…. 사방이 꽃 이야기로 들썩이니 모른척할 도리가 없다. 가장 가까운 꽃밭을 찾다가 선택한 행선지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양재꽃시장). 식물계의 고전같은 공간이지만 봄을 만끽하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다 싶었다.
양재꽃시장에서 생화를 사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생화 매장 영업시간은 밤 11시 반~이튿날 낮12시, 분화(盆花) 매장은 오전 7시~오후 7시. 꽃 경매가 있는 월, 수, 금요일에 꽃이 싱싱하고, 소매 고객은 오전 10시~낮 12시에 가장 많이 몰린다. 10일 오전 10시에 찾은 양재꽃시장 주차장은 자가용, 승합차, 트럭 같은 각종 차량으로 빼곡했다. 입구의 위치 안내도부터 살핀 뒤 공판장 맨 안쪽 생화 도매시장으로 향했다.
![]() |
양재동 화훼공판장 생화 매장. 이설 기자 snow@donga.com |
공판장 생화 도매시장 건물에 들어서니 시장 특유의 활기가 가득하다. 꽃 반, 사람 반에 꽃향기가 진동하는 시장이라니, 이런 장은 매일 봐도 새로울 것 같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이 예쁜 게 다 내 것이란 느낌이 좋다”던 꽃시장 단골 지인 이야기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졌다.
공판장 1층은 생화, 2층은 자재와 부속품 가게가 모여 있다. 동선에 따라 미세하게 바뀌는 향기를 감각하며 한 가게에 다가섰다. 찬찬히 진열대를 살피니 저마다 다른 꽃송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크기, 모양, 빛깔, 향기 모두 제각각인 ‘꽃 무덤’의 압도적인 비주얼이 어떤 전시보다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 |
눈이 맑아지는 꽃 진열대. 칸막이마다 꽃 이름표를 붙여 놨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한 단(10~20송이)이 몇 송이에요?” “많이 핀 게 좋아요, 덜 핀 게 좋아요?”
‘꽃린이(꽃+어린이)’들 단골 질문이다. 플랜테리어(플랜트·식물+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꽃시장을 찾는 일반 고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감상은 쉬운데 막상 꽃을 사려니 품질과 가격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모양새도 양도 비슷한데 이 꽃은 6000원, 저 꽃은 1만3000원인데 이유를 알 수 없다. 봉오리진 꽃이 오래 둘 수 있어 좋은 게 아닐까….
“그건 꽃마다 달라요. 오늘 들어왔는데 활짝 핀 꽃도 있고 어제 꽃이라도 봉오리 그대로인 경우도 있죠. 헷갈리는 건 질문하시면 됩니다.”(꽃 가게 ‘강남’ 대표)
오래 가는 건 며칠 지나도 그대로인데, 그런 꽃들은 가격이 저렴하다. 건잎이나 시든 아이들을 솎아 내고 다시 한 다발을 만들기도 한다. 봉우리만 선호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작약 같은 경우엔 안 핀 채로 죽는 경우도 있기에 퍼짐이 있는 꽃을 골라야 한다.
![]() |
여름엔 라넌큘러스, 아네모네 같은 겨울꽃이, 겨울엔 다알리아, 리시안사스 같은 여름꽃이 비싸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꽃에도 베스트셀러가 있을까. 꽃 가게 ‘강남’ 대표는 “여름엔 푸른 계열이, 겨울엔 붉은 계열 꽃이 인기”라며 “꾸준히 잘 팔리는 꽃은 장미, 거베라, 라이안샤스, 유칼립투스, 국화 등”이라고 했다. 전형적으로 화려한 색채의 꽃이 아닌 냉이초, 블랙잭, 루스커스 같이 초록 빛깔 식물을 찾는 이도 많다. 들꽃같은 시레네, 마트리, 블루옥시, 화이트옥시의 황홀한 자태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가격도 시기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버이날이나 졸업식 같은 행사 시즌엔 가격이 많이 오른다. 계절별로도 여름엔 라넌큘러스, 아네모네 같은 겨울꽃이 비싸고 겨울엔 다알리아, 리시안사스 같은 여름 꽃이 그렇다. 꽃 종류는 봄에 가장 다양하지만 온도가 높아져 유지 기간이 짧은 편이다. 꽃 가게 ‘진주’ 임종단 대표는 “다음 주가 (기독교) 부활절이고 이번 주는 고난 주간”이라며 “어제와 오늘은 교회 행사용인 흰색 꽃이나 장식 꽃이 많이 팔렸다”고 했다.
![]() |
양재동화훼공판장 분화 매장 화분 꽃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생화 매장에서 나와 화분에 심은 식물을 판매하는 분화 매장로 향했다. 가동, 나동으로 나뉜 분화 매장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연다. 비닐하우스처럼 생긴 가동에 들어서니 커다란 식물원에 온 듯하다. 통로를 중심으로 양 옆에 식물 가게가 즐비하다.
바질트리, 선인장, 레몬나무, 토마토나무, 다육이…. 집에서 부담없이 키울 만한 작은 화분들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선글라스를 낀 선인장이나 무당벌레 인형을 둔 화분은 ‘식집사(식물+집사, 식물을 키우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를 꿈꾸는 아이들 선물로도 좋을 것 같다.
“집에 화분이 20개 정도 있어요. 식물을 키우면서 돌봄의 즐거움에 눈을 떴죠. 식물들이 생동하고 성장하는 봄엔 꼭 양재동을 방문합니다.”(60대 조모 씨)
수년 전부터 플랜테리어 열풍으로 젊은 고객들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카페에서 볼 법한 식물들을 주로 판매하는 가게는 평일임에도 손님 서너 명이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양재천에 나들이를 가기 전 꽃시장에 들렀다는 20대 4명은 꽃 사진을 찍고 이름을 검색하면서 분주히 움직였다.
양재동꽃시장을 다녀오는 길, 무심코 지나치던 동네 벚나무와 개나리나무에 새삼 눈길이 간다. 꽃꽂이 4년 경력의 김두희 씨(40대)는 꽃시장의 매력을 “다양한 종류의 꽃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이라며 “시기별 꽃을 공부하다 보면 식물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과 세상이 보인다”고 했다.
![]() |
플랜테리어에 제격인 식물들을 판매하는 분화 온실 매장. 이설 기자 snow@donga.com |
이설 기자 snow@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댓글 블라인드 기능으로 악성댓글을 가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