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노장인 김경문 한화 감독의 어투가 조심스러웠다. 지난 3월 27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한화는 개막 마무리였지만 시즌 초반 페이스가 좋지 않았던 주현상을 1군 엔트리에서 말소했다. 이미 보직 교체 통보는 한 뒤였다. 마음과 구위를 모두 회복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 어렵고 중요한 보직을 이어 받아야 했다. 김 감독은 김서현(21)의 이름을 꺼냈다. 예상은 했지만, 또 복잡한 문제였다.
김 감독은 당시 “(주현상이) 작년에 잘 막고, 잘 던졌지만 항상 마무리는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작년 끝날 때쯤 했었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마무리로 김서현을 구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그때는 서현이가 조금 낯선 것 같았고, 마무리라는 자리가 쉽지 않다. 7회에 올라가서 던지는 것과 9회에 나가서 자기가 끝내야 한다는 것은 부담감의 차이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크게 보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약간의 위험부담은 있는 결정이었다. 성공하면 대박이었다. 현재와 미래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반대로 실패하면 시즌이 날아갈 수도 있는 도박이었다. 팀 불펜이 혼란스러워지고, 김서현까지 망가질 수 있었다. 김서현은 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구속과 구위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제구가 완벽한 선수는 아니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마무리에게 볼넷은 치명적이다. 게다가 경험도 많다고 할 수는 없었다. 지난해까지 1군 등판은 57경기, 세이브는 딱 한 번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김서현의 구위와 성장을 믿었다. 잘 되면 팀의 10년 불펜 구상을 제대로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김서현은 한화의 도박을 완벽한 성공으로 이끌고 있다. 주어진 세이브 기회를 모두 살리며 한화의 도약을 이끌었다. 올해 구원왕 경쟁에도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구위야 예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올해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트랙맨 기준 최고 시속 160㎞ 이상을 찍어 본 적이 있는 선수다. 150㎞대 중반의 공은 쉽게 던진다. 그것도 공 끝의 움직임이 좋은 150㎞대 중반의 공이다. 김서현은 이날도 최고 157.4㎞의 빠른 공을 던지며 싱싱한 어깨를 자랑한다. 여기에 엄청난 움직임을 자랑하는 슬라이더 결정구가 있다. 1이닝 정도는 두 가지 구종만으로도 거뜬한 모습을 보여준다.
구위는 누구도 걱정하지 않았다. 배짱도 확인했다. 문제는 제구였다. 볼넷이 너무 많았다. 실제 김서현은 신인 시즌이었던 2023년 9이닝당 볼넷 개수가 9.27개에 이르렀다. 낙제였다. 지난해도 활약은 좋았지만 이 수치가 7.51개로 역시 매우 높은 편이었다. 볼넷으로 주자를 주고, 구위로 틀어막는 아슬아슬한 경기가 적지 않았다.
중간에서 나오면 주자가 있을 때 주현상이나 다른 선배들이 구원해 막아줄 수 있고, 실제 그런 경기가 적지 않았다. 김서현은 지난해에도 총 주자 15명을 후속 투수에게 물려줬다. 이중 9명은 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뒤가 없는, 도와줄 사람이 없는 마무리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런데 김서현은 올해 이 약점도 지워가고 있다. 탈삼진 비율은 떨어졌지만, 볼넷 비율이 더 드라마틱하게 떨어졌다. 올해 9이닝당 볼넷 개수는 2.53개로 수준급이다. 볼넷 개수만 놓고 보면 완전히 다른 투수다.
이 과감한 결단을 한 김경문 한화 감독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김 감독은 아직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면서도 “지금 굉장히 잘해주고 있다”고 박수를 보냈다. 물론 앞으로 실점도 할 것이고, 블론세이브도 할 것이고, 부진한 시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고비를 모두 이겨내고 풀타임 마무리로 자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한화의 미래가 밝아진다. 리그를 호령하는 20대 초반의 클로저는 분명 타 팀과 차별성이 있다. 수년간 마무리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팀이 된다면, 3월 말의 그 선택은 구단 역사에 남을 결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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