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봉(28)이 말을 잇지 못했다. 정적이 흘렀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힘들었습니다. 다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대로 축구와의 인연을 끊으면 억울할 것 같았습니다.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해서 불명예스럽게 떠난 사람으로 남을 것 아니에요. 제가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했습니다. 증명했고요.” 김재봉이 힘겹게 꺼낸 얘기다.
김재봉은 2018년 성남 FC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이후 제주 유나이티드(제주 SK의 전신), 안산 그리너스, 광주 FC를 거쳤다. 김재봉은 성남, 제주, 광주에서 K리그1 승격을 경험했다. 제주, 광주에선 K리그2 우승컵도 들어 올렸다.
“힘들었습니다. 다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대로 축구와의 인연을 끊으면 억울할 것 같았습니다.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해서 불명예스럽게 떠난 사람으로 남을 것 아니에요. 제가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했습니다. 증명했고요.” 김재봉이 힘겹게 꺼낸 얘기다.
김재봉은 2018년 성남 FC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이후 제주 유나이티드(제주 SK의 전신), 안산 그리너스, 광주 FC를 거쳤다. 김재봉은 성남, 제주, 광주에서 K리그1 승격을 경험했다. 제주, 광주에선 K리그2 우승컵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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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봉. 사진=이근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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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FC 시절 김재봉(사진 왼쪽).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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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나이티드(제주 SK의 전신) 시절 김재봉(사진 왼쪽).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특히 2022시즌 프로 감독으로 데뷔한 이정효 감독의 굳건한 신뢰를 받으며 광주의 K리그2 우승에 앞장섰다. 김재봉은 이 시즌 K리그2 29경기에 출전했다. 김재봉은 188cm 왼발잡이 센터백으로 공중볼 장악력, 스피드, 수비력에 빌드업 능력까지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복 없는 꾸준한 경기력은 김재봉의 주가를 드높였다.
2023년 8월 1일. 광주는 김재봉과의 계약 해지를 발표했다. 광주 합류 이전 ‘불법 스포츠 도박을 했다’는 게 계약 해지 사유였다.
‘MK스포츠’가 김재봉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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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봉. 사진=이근승 기자 |
Q. 포털 사이트에 김재봉을 검색하면 부정적인 기사들이 나옵니다. 특히 김재봉의 이름 앞에 ‘불법 스포츠 도박’이 따라붙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불법 스포츠 도박했습니까.
명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광주서부경찰서,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윤리센터 등을 오가며 증명한 부분이에요.
Q. 광주는 2023년 8월 1일 김재봉과의 계약을 해지합니다. 당시 광주가 계약 해지 사유로 ‘불법 스포츠 도박’을 들었습니다. 김재봉이 ‘불법 스포츠 도박 사실을 시인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야기가 좀 긴데요. 많은 분이 꼭 다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스포츠 도박은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쳐다도 안 봅니다. 단, 제가 잘못을 한 게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기였어요. 홀덤펍을 다녔습니다. 돈을 걸고 했어요. 불법이었습니다. 처음엔 큰 잘못인지 몰랐어요. 가까운 형이 홀덤펍을 차렸다고 해서 재미로 한두 번 하다 보니 습관이 되더군요.
Q. 홀덤펍이 불법은 아닙니다. 다만, 그곳에서 획득한 칩, 시드권, 포인트 등을 현금이나 현물로 바꾸면 처벌받을 수 있어요. 쉽게 말해 홀덤펍에서 현금이 오가면 불법이란 겁니다.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까.
몰랐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몰랐던 것도’ 정말 큰 잘못이더라고요. 저를 아껴주시고 응원해 주신 팬들이 계십니다. 저를 믿고 기회를 주셨던 분들이 계세요. 그 모든 분께 큰 실망감을 안겨드린 겁니다. 홀덤펍에서의 잘못은 인정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Q.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불법 스포츠 도박’ 사실을 인정했던 겁니까.
제가 홀덤펍에서 도박을 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래서 인정했던 겁니다. 그런데 제가 인정한 것에 ‘불법 스포츠 도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단 한 번도 쳐다본 적 없는 ‘불법 스포츠 도박’을 인정한 사람이 되어버린 거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어요. 내 인생을 바친 축구를 다신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두려웠습니다. 처음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정신을 부여잡았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진짜 불명예스럽게 축구계를 떠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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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FC 시절 김재봉(사진 왼쪽).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Q. 어떻게 했습니까.
제가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자 나섰죠. 저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잖아요. 그 사실을 증명하면 되는 건데 굳이 변호사가 필요하겠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땐 축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제 잘못으로 일어난 일을 스스로 정리하면서 축구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자 했죠.
Q.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한 겁니까.
증거가 될 만한 자료를 싹 정리했습니다. 모았어요. 그리고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윤리센터, 광주서부경찰서 등을 오갔습니다. 오전에 대한축구협회에 갔다가 오후에 광주서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적도 있어요. 성실히 조사에 임해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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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재봉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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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재봉 제공 |
Q. 그렇게 ‘불법 스포츠 도박’ 누명을 벗은 거군요.
광주서부경찰서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수사를 종결했어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저는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한 적이 없으니까.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윤리센터에서도 불법 스포츠 도박과 관련해선 혐의가 없음을 인정받았죠.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겁니다.
Q. ‘김재봉이 스포츠 도박을 했다’는 게 거짓이란 걸 증명했습니다. 증명은 누명을 쓴 김재봉의 몫이었잖아요. 정신적으로 대단히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무엇입니까.
프로축구 선수로서 홀덤펍에 출입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봐요. 그 시간을 몸 관리에 더 투자하거나 이미지 트레이닝 등에 쏟아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제 잘못이에요. 많이 반성했습니다. 저를 믿어준 분들에게 정말 죄송했어요. 특히 광주 이정효 감독께 정말 죄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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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FC 시절 김재봉(사진 오른쪽).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Q. 이정효 감독에게 특히 미안했던 이유가 있습니까.
성남, 제주, 광주에서 이정효 감독님의 지도를 받았어요. 성남, 제주에선 이정효 감독님이 코치로 계셨었죠. 이정효 감독님이 광주 지휘봉을 잡으시고 제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감독님은 제가 축구에 눈을 뜨게 만들어준 은인이세요. K리그2에서 우승했던 2022시즌엔 주전 수비수로 뛰었습니다. 축구에 가장 미쳤던 한 해였죠. 진짜 24시간 축구에만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광주에 오기 전 홀덤펍에서 도박을 했던 게 알려졌던 거예요. 이정효 감독께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했어요. 감독님은 제게 기회와 믿음을 주셨거든요. 이에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서 지금도 죄송한 마음입니다.
Q. 이후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을 이행하고 있는 겁니까.
때마침 군 복무를 해결해야 했거든요. 경기도 남양주시 장애인복지관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업무를 마치면 서울중랑축구단에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꼭 프로축구 선수로 복귀하고 싶거든요. 감사한 건 죄가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난 뒤 복수 구단에서 제게 관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더 열심히 해야죠.
Q. 사회복무요원 생활은 어떻습니까.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발목 수술을 했습니다. 프로에 있을 때부터 안 좋았거든요. 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 살아남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수술 시기를 놓쳤죠. 참고 어떻게든 뛰었던 거예요. 주전 경쟁에서 밀렸을 땐 혹시 모를 기회를 기다리면서 준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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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봉은 누구보다 성실히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진=이근승 기자 |
Q. 장애인복지관에서 하는 일이 낯설 것 같은데. 힘들진 않습니까.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진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합니다. 진짜 배우고 느끼는 게 많아요. 사회복무요원으로 생활하기 전엔 축구만 했습니다. 장애인에 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일하면서 확실히 알았습니다. ‘저분들은 비장애인보다 조금 불편함을 느끼시는 거지 다른 건 하나도 없다’는 걸 말이죠.
한 분 한 분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잖아요. 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나 뵙는 모든 분의 미소, 인사, 따뜻한 말 한마디가 진짜 큰 힘이 되더라고요. 지금은 여기 계신 모든 분과 가까워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의 고민 상담도 해요. 프로로 복귀하면 꼭 경기장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제가 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Q. 운동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일과 후 운동해요. 제가 힘든 시기를 겪지 않고 이 생활을 했다면, 몸 관리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일과를 마치고 운동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저는 지금 간절하잖아요. 매일 땀 흘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다시 프로에서 뛰는 꿈을 꿀 수 있어서 행복해요. 몸을 철저히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도 있고요.
Q. 힘든 시기를 이겨낼 때 힘이 되어준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아주 많죠. 제 에이전트인 인스포코리아 윤기영 사장님, 윤기철 이사님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셨어요. 처음부터 제게 “네가 잘못이 없다는 걸 입증하면 선수로 복귀할 수 있다. 네 말을 믿으니 잘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해 주셨죠.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때 그냥 놔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다 포기할 수도 있었던 거죠.
서울중랑축구단 김범수 감독님, 경남 FC 백민철 골키퍼 코치님, 경희고등학교 박재용 감독님, 서울 이랜드 이정규 수석코치님 등도 제가 축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몸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정효 감독님도 지인 결혼식에서 한 번 만났거든요. 그때 제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어요. 큰 힘이 됐죠. 저를 언제든 믿어주는 가족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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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랑축구단에서 몸을 만들고 있는 김재봉. 사진=서울중랑축구단 제공 |
Q. 소집해제가 언제입니까.
소집해제일은 8월 7일입니다. 제가 포상 휴가를 많이 받았습니다. 정기 휴가도 많이 모아뒀어요. 6월 말부턴 팀에 합류해 훈련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올여름 이적 시장에서 새 소속팀을 찾아 프로로 복귀하는 게 목표예요. 제가 서울중랑축구단에서 K4리그를 뛰고 있잖아요. K리그 스카우트, 관계자분들이 종종 와서 경기를 보십니다. 제게 몸 상태 등을 물어보기도 하고요. 아직 팀을 결정한 건 아닙니다. 지금은 몸을 잘 만들어놓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Q. 언제 축구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컸습니까.
K4리그는 인조 잔디에서 훈련하거든요. 경기도 인조 잔디에서 합니다. 그게 제일 힘들어요. 많은 분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환경이 열악합니다. 예를 들면 원정 경기는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하거든요. 그런 환경에서 몸을 만들다 보니 프로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지는 듯합니다.
Q. K4리그에서 활약 중인 몇몇 선수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정 경기는 자기 비용으로 간다고 하던데요.
보통 그렇습니다. 개인이 알아서 원정 경기가 펼쳐지는 장소로 가는 거예요. 자가용, 버스, 기차 등 개인이 선택해 알아서 가는 겁니다. 쉽지 않죠. 하지만, 감사한 마음이 더 큽니다. 계속 꿈꾸면서 운동하는 거잖아요. 가족을 비롯해 제가 힘들 때 도와주신 수많은 분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제가 꼭 프로에서 잘 뛰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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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봉. 사진=이근승 기자 |
Q. 어떤 꿈을 꾸고 있습니까.
제 축구 인생을 돌아보면 광주에 있을 때가 제일 좋았거든요. K리그2 정상에 올랐던 2022시즌 프로 데뷔 후 가장 많은 경기를 뛰었습니다. 팀 핵심으로 광주의 K리그1 승격을 이끌었죠. 이정효 감독께 축구를 다시 배우면서 큰 성장을 이뤘던 한 해였고요. 그 시기를 뛰어넘는 한 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매해 성장하면서 지금 제가 상상하는 이상의 저를 마주하고 싶어요.
광주에 있을 때 살면서 가장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광주 팬들은 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아낌없는 사랑을 보내주셨어요. 저는 그분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드렸습니다. 매 순간을 성실히 보내면서 이전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말로만 사과드리는 게 아니라 그라운드 위에서 이 사람이 얼마만큼 반성했고 절실한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Q. 김재봉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입니까.
저는 왼발잡이 센터백입니다. 볼을 투박하지 않게 차요. 수비는 물론이고 빌드업에도 자신 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간절해요. 축구와의 인연이 끊길 뻔했습니다. 모든 걸 다 잃을 뻔한 거죠. 함께 땀 흘리고,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건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기회의 소중함을 알고 그 이상을 보답해야 한다는 걸 느꼈고요.
소집해제일이 다가올수록 제 몸 상태를 물어보는 구단 관계자분들이 계십니다. 아주 감사한 일이죠. 다시 기회가 찾아오면 절대 허투루 보내지 않을 겁니다. 축구와 함께할 수 있는 순간순간에 감사합니다. 모든 걸 바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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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FC 시절 김재봉(사진 가운데).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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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FC 시절 김재봉(사진 오른쪽).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태릉(서울)=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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