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사설]‘안정적 관리자’ 소임 잊고 ‘불안의 축’이 된 韓 대행

속보
"미일, 워싱턴서 2차 관세협상 시작…협의 본격화" <교도통신>
동아일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차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에서 안경을 벗고 있다. 뉴시스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헌재 재판관 후보자 지명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것을 계기로 한 대행의 대선 출마 여부를 둘러싼 ‘안개 행보’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 대행은 17일에도 헌재 결정에 직접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도 ‘모호한 침묵’을 유지했다. 이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대체 뭘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한 대행의 그간 모습에서 대선까지 채 50일도 남지 않은 정부 교체기에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대행은 탄핵 기각 뒤 복귀 일성으로 “이제 좌우는 없다” “헌법과 법률에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공언과는 반대로 윤석열 전 대통령 측근 인사를 대통령 몫 헌재 재판관으로 지명하는 ‘권한 밖’ 인사권 행사로 거센 논란을 자초했다. 대선출마론,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론 등이 번지고 있는데도 열흘 가까이 가타부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애매한 화법과 선택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면서 ‘15일은 광주, 16일은 울산’ 식으로 이목을 끄는 행보를 하다 보니 “대선 주자 일정 같다”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한 대행의 행보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당장 발등의 불인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 주로 다가온 관세 협상은 경제·통상 구조는 물론이고 국가안보 틀까지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정파와 이념을 뛰어넘는 국민적 신뢰의 뒷받침 없이는 해내기 어려운 국가적 과제다. 자칫 과도기 정부의 한계를 외면한 채 협상을 서둘다간 국익에 큰 손상이 올 수도 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한 대행 자신이 대선출마설에 휩싸여 있으면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게 돼 협상에 필요한 내부적 단합에 금이 갈 수도 있다.

어제 한 여론조사에서 한 대행의 대선 출마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응답이 66%나 나온 것도 이런 국내 안팎의 위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 대행은 더 이상의 정치적 모호함은 가뜩이나 혼란한 정국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만약 대선 출마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속히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그게 아니라면 공정한 선거 관리자, 국정의 안정적 운영자로서 본연의 책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정 안정의 중심축이 돼도 모자랄 터에 ‘불안과 혼란의 눈’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