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요즘 과거에 비해 아이들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어려운 한자 표현 등을 모르는 걸 넘어서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보호시설에서 머무는 보호 대상 아동들입니다.
신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자립준비청년 : 가발 고정하는 건데, 꼬리빗으로 머리 빗은 다음에…]
혼자 사는 스무살 청년의 8평짜리 집에는 미용실 헤어롤 수십 개가 있습니다.
헤어 디자이너 자격증을 따기 위해 혼자 수없이 연습했습니다.
그런데 실기가 아니라 필기 시험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자립준비청년 : 주변에서도 다 실기는 재능이 있다고 하는데 필기 부분에서 계속 그렇게 떨어지니까 자신감도 떨어지고…]
자라는 내내 문자를 읽고, 쓰고, 이해하는 게 유독 어려웠습니다.
여러 아이가 생활하는 시설에선 이런 어려움을 눈치채고 도움받을 형편이 안 됐습니다.
[자립준비청년 : 유행어나 이런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 공부 잘 하는 애들이랑 대화하면 수준 높은 단어를 사용해서…부끄러워지기도 해서…]
이 청년만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 NGO 단체가 최근 보육원과 같은 양육시설 5곳 아동 75명을 조사했더니 절반이 난독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머지 아동 가운데 절반도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립을 앞둔 시점, 천직이라 생각한 헤어디자이너 길은 쉽지 않습니다.
먹고 살 일은 막막합니다.
[김중훈/다양한학습자를위한 공동대표 (전 초교 교사) : 취업을 해서 자격시험을 볼 때, 고용 계약서나 그런 것을 파악하고 업무 매뉴얼 같은 걸 보게 됩니다. 문해력이 어려우면 파악을 못 합니다.]
[임수진/희망친구 기아대책팀장 : (기관) 퇴소 이후 이 친구들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이 있는데, 결국 근본적인 원인이 문해력의 결핍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해마다 1,000여 명의 아이들이 시설을 나옵니다.
의식주 지원도 중요하지만, 문해력 결핍 해소를 돕는 게 진짜 자립을 위한 길이란 목소리가 나옵니다.
[앵커]
이런 아이들은 제때 교육을 받으면 문해력으로 겪는 어려움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보호시설에서 아이들이 달라질 수 있도록 직접 돕고 있는 봉사자를 신진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예순넷 퇴직 교장선생님은 매주 두 번 보육원에 갑니다.
읽고 쓰기 어려워하는 어린이들을 가르칩니다.
앳된 발음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자음부터 하나하나 배웁니다.
[이거 뭐지? {브!} 우와, 나는 잊어버린 줄 알았어. {쁘! 프! 므!} 자, 오. 안 잊었어. {안 잊었어?}]
태어나자마자 베이비박스에 담겼거나, 학대로 부모와 분리된 아이들입니다.
[최종호/은퇴 교장 : 문해 환경이 낮은 아이들은 보통 가정보다 좀 더 열악한 가정,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환경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홀로서기까지 남은 시간은 10년.
절실한 마음으로 문해력을 '심어준다'고 했습니다.
[최종호/은퇴 교장 : 세상을 향해 아주 중요한 도구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농부가 농사를 지으려면 농기구가 필요하듯이…]
어릴 적 생긴 읽기 능력 격차는 한 교실 안에서 5년까지 벌어지지만, 빨리 개입할수록 큰 변화를 보인다 했습니다.
[최종호/은퇴 교장 : 표정도 많이 좋아지고, 교우관계도 달라지고 많이 변했다고…]
또 다른 보호 기관 아이들을 만나봤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찍 눈치챈 어른들 덕분에 꾸준히 수업 받은 아이들, 지옥 같았던 학교 생활부터 달라졌다 했습니다.
[A양/보호대상아동 (중학생) : 옛날에는 선생님이 물어보면 '몰라요'라고만 했는데 지금은 많이 찾아보고, 책으로 찾아보고…칭찬받으면 그냥 기분이 좋아요.]
공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속마음을 표현할 줄 알게 되어 좋다고 했습니다.
[B군/보호대상아동 (초교생) : 사람과 소통할 수 있고, 편지를 쓸 수 있고요. {누구한테 쓰고 싶어요?} (보호시설) 엄마요. 키워주셔서 고맙다고.]
이 아이들에게 '문해력' 교육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최소 조건입니다.
[영상취재 김재식 박대권 / VJ 김재훈 / 영상편집 김영선 / 영상디자인 최석헌]
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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