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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이 불바다, 대폭발까지” 끔찍한 이 병균 때문이라니…백신도 있는데, 왜?

헤럴드경제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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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이하드4’ 스틸컷과 탄저균. [네이버 영화, 헤럴드DB]

영화 ‘다이하드4’ 스틸컷과 탄저균. [네이버 영화, 헤럴드DB]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탄저균 경보에요” “전부 다 나가!”

영화 ‘다이하드4’에서는 FBI 본부에 탄저균 유출 경보가 울려 전원 대피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곧 워싱턴 전역에 위치한 공공기관에 탄저균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직원들이 황급히 대피하면서 패닉 상태에 빠진다.

현대전을 그리는 영화와 소설에서 탄저 테러는 자주 등장한다. 실제 미국은 이 공포를 직접 겪었다. 2001년 일부 테러리스트들이 ‘백색가루’를 넣은 우편물을 미국 전역에 보냈고, 이 사건으로 22명이 탄저균에 감염됐고 5명이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미군은 현재도 탄저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있다. 주한미군도 마찬가지다.

현미경으로 본 탄저균. [헤럴드DB]

현미경으로 본 탄저균. [헤럴드DB]



탄저는 소화기, 위장, 호흡기 등으로 감염된다. 사람의 경우 감염된 동물과의 직접 접촉하거나 오염된 육류를 섭취하는 방식으로 감염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가스와 같은 ‘비대칭 전력’이 등장하면서, 탄저균은 생물학무기로 연구됐다.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 대량살상무기로 활발하게 연구했다. 핵무기에 비해 제조 비용이 싸고, 희귀 물질이나 복잡한 기술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기침 등으로 전염이 없고, 장기간 생존이 가능해 공기 중 살포가 쉬우며, 치명률이 97%에 달해 특정 인물을 암살하는 데 활용하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직접 살포하는 테러 물질로 개발됐다. 우리나라는 1급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특히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경우 탄저 등 ‘생화학무기’에 대한 방어 태세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은 탄저병, 보툴리누스 중독증, 콜레라 등 병원체 13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탄저균과 천연두 바이러스를 생화학 무기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탄저백신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국가는 미국과 영국 등 극소수다.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테러에 대비해 비축하는 만큼 전략물자의 성격이 강해, 원하는 만큼 갖춰놓을 수도 없다. 우리나라 역시 우방국으로부터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다.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 부산기지에서 ‘2025 자유의 방패’ 연습의 하나로 화생방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 부산기지에서 ‘2025 자유의 방패’ 연습의 하나로 화생방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



이에 우리 정부는 1997년 자체적인 탄저백신 개발에 착수했다. 질병관리청은 탄저백신 후보물질 발굴을 시작했고 GC녹십자와 백신 공정개발과 임상시험을 수행해 왔다.

개발에 착수한 지 28년 만인 2025년 4월, 마침내 탄저백신 국산화에 성공했다. 질병관리청과 GC녹십자가 공동으로 개발한 탄저백신(성분명 배리트락스주)이 지난 8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약품 품목허가를 취득했다. 국산 신약 39호의 주인공이다.


배리트락스주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한 탄저백신을 의약품으로 상용화한 세계 최초의 사례다. 탄저균의 방어항원(PA) 단백질을 주성분으로 해 기존 상용화된 백신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개선한 안전한 백신이다.

‘탄저백신 보유국’이 되기까지 28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는 임상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탄저균은 사람에게 감염될 경우 치명률이 매우 높아, 다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3상 시험이 불가능하다.

질병청은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료제품의 개발 촉진 및 긴급 공급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백신 효과를 입증할 수 있는 동물규칙(Animal rule)을 적용해 임상3상 시험 대신 동물실험을 수행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연합]

대륙간탄도미사일. [연합]



특히 생화학전에 대비할 수 있는 ‘국가 안보 수호’의 의미가 크다. 생물테러가 발생했을 때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물량을 상시 비축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강한 국방력을 상징한다.

질병청 관계자는 “탄저백신을 보유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생물테러를 감행하려는 세력을 무력화할 수 있어 국가 안보 수호의 의미가 중요하다”라며 “세계 최초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통해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낮추고 안전성을 확보한 탄저백신을 우리가 생산할 수 있고 보유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북한은 생화학무기를 상당한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안보의 측면에서도 무척 중요하다”라며 “탄저백신은 감염병 대응이라는 보건의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 [헤럴드경제 DB]

질병관리청. [헤럴드경제 DB]



정부는 올해 탄저백신 생산화에 착수해 비축량을 획기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국가별 탄저백신 비축량은 보안 사항이라 외부로 공개되지 않는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다만 2017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대기권 재진입시 발생하는 고온에서 탄저균이 사멸하지 않도록 내열장비 실험을 시작했다고 알려지면서 북한의 생화학무기에 대한 우리 군의 대비태세가 수면 위에 떠올랐다. 이에 당시 청와대는 우리 군은 탄저백신 110인분, 질병관리본부(현 질병청)는 1000명분을 보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수치가 현재까지 유일하게 공개된 비축분이다.

사실상 탄저균 테러에 대해 무방비 상태였던 우리나라는 이제 ‘자체 탄저백신 보유국’이 됐다. 미군처럼 우리 군인력 대다수가 탄저백신 접종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군 비축량은 국방부가, 초동 대응 대원과 국민을 위한 비축량은 질병청이 관리한다.

질병청 관계자는 “생물테러의약품은 감염병 관리법에 따라 절차를 거쳐 수량을 정하게 된다”라며 “질병청은 탄저균에 노출된 우리 국민을 위한 백신을 적극적으로 비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GC녹십자 본사 전경. [GC녹십자 제공]

GC녹십자 본사 전경. [GC녹십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