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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기록한 ‘4월혁명연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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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기록한 ‘4월혁명연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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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는 혁명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혁명을 주도한 이들이 한동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특이한 혁명이었다.



김달중(사진 왼쪽)은 연세대 기독학생회의 회장이었고, 안병준은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연세대에 입학한 늦깎이 학생이었다. 1960년 4월19일에 두 사람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역사적 사건이 될 것”임을 알아차렸다. 김달중과 안병준은 ‘4월혁명연구반’을 결성했다. 처음 두 사람은 한미재단의 지원을 받았는데, 얼마 후 재단이 지원을 중단했다. 두 사람은 연세대학교 대학원의 도움을 받아 자료 수집을 계속할 수 있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혁명의 기록을 모으던 두 사람은 곧 전국을 다니며 2·28 대구 시위와 3·15 마산 시위의 자료를 수집했다. 계엄 포고문, 시위대의 펼침막, 신문 기사와 현장 사진을 모았을 뿐 아니라, 혁명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 수백명을 직접 만나 생생한 증언을 기록했다. “훗날 귀중한 1차 사료가 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혁명에 참가한 사람이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김달중과 안병준은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확보한 자료를 오랫동안 공개하지 않고 두 사람 스스로도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엄격한 원칙을 세웠다.



이때 미국대사관에서 이 자료를 탐냈다. 미국 참사관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보다 미국에 두는 것이 안전하다”며 자료를 미국으로 빼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김달중과 안병준은 “역사적 자료를 외국에 넘길 수 없다”며 끝내 거절했다.



이렇게 모은 자료가 2688점이다. 두 사람은 이 자료를 봉인하여 도서관 희귀자료실에 보관하였다. 이 귀한 기록은 군사 독재 시절에 잠들어 있다가, 민주화 이후에 빛을 보게 되었다.



김달중과 안병준은 1961년에 함께 학부를 졸업했다. 각각 미국에 유학하고 돌아와 나란히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근무했다. “김달중 교수와 함께 전국을 다니며 자료를 수집하던 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다.” 안병준 교수의 회고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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