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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소녀상 '일단 존치'… 철거 주장 조목조목 반박한 독일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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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구청, 지난해 "소녀상 철거" 명령했지만...
법원 "근거 불충분"... '올해 9월까지 존치' 결정
판결문엔 "일본 눈치 탓, 예술 자유 침범 안돼"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상징 조형물인 '평화의 소녀상'. 조형물 설치 권한을 쥔 미테구청은 지난해 해당 소녀상에 대해 철거 명령을 내렸지만, 독일행정법원은 지난 14일 '올해 9월 28일까지 설치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상징 조형물인 '평화의 소녀상'. 조형물 설치 권한을 쥔 미테구청은 지난해 해당 소녀상에 대해 철거 명령을 내렸지만, 독일행정법원은 지난 14일 '올해 9월 28일까지 설치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상징 조형물 '평화의 소녀상'(베를린 소녀상)이 철거 위기를 일단 넘겼다. 소녀상 설치 권한을 쥔 미테구청(구청)이 내린 철거 명령을 검토한 독일 베를린 행정법원(법원)이 "올해 9월 28일까지 설치할 수 있다"고 지난 14일(현지시간) 판결했기 때문이다. 특히 법원이 '일본 정부가 소녀상을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예술적 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는 점에서 소녀상 문제에 있어 줄곧 무대응으로 일관해온 한국에 갖는 함의도 적지 않다.

'철거 명령' 소녀상에... 법원 '추가 존치'


베를린 소녀상은 2020년 9월 28일 미테구 브레머길과 비르켄길 교차로에 설치됐다. 유럽 내 공공부지에 처음 설치된 소녀상이라는 상징성을 지니고서다. 그러나 설치 이래 늘 운명이 위태로웠다. 일본군 만행을 알리는 조형물이 불편한 일본이 독일을 상대로 전방위적 로비를 벌였기 때문이다. 일본 압력을 받은 구청은 설치 허가를 취소하고, 소녀상을 설치한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코협)가 다시 가처분 신청을 하며 오락가락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지난해 9월 구청은 코협 앞으로 "2024년 10월 31일까지 철거하라"는 명령장을 발송했다. 코협이 즉각 가처분 신청을 내며 법적 분쟁이 시작됐고, 지난 14일에서야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베를린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베를린 행정법원의 평화의 소녀상 임시 존치 판결 요지. 베를린시 홈페이지 캡처

베를린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베를린 행정법원의 평화의 소녀상 임시 존치 판결 요지. 베를린시 홈페이지 캡처


판결문 보면... "예술적 자유 > 일본의 거부감"


베를린 소녀상을 올해 9월 28일까지 설치하도록 하며 1심 재판부가 든 근거는 일단 ①'예술적 자유가 충분히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청은 철거 명령을 내리면서 △공공부지에 예술 작품을 영구 설치하려면 별도의 공모 절차를 따라야 하지만 코협은 이를 따르지 않았고 △이런 상황에서 소녀상 설치 기한을 추가로 늘리거나 영구 설치를 결정하는 건 다른 예술 작품이 공공부지에 설치될 기회를 빼앗는 것이며 △유사 사례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소녀상 철거를 통해 예술적 자유를 침해할 만큼 중요한 공익이 무엇인지 불분명하고 △공모 절차 등 구청이 언급한 규칙이 역내 다른 조형물에 일관되게 적용되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판결문에는 "현재 다른 예술가들이 소녀상이 설치된 장소에 작품을 전시하고 싶어 하거나, 영구 설치를 전제로 한 조형물의 입찰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도 명확하지 않다"고 적시됐다.


한국에 더 의미가 있는 부분은 ②'소녀상이 독일과 일본 간 외교 관계를 직접 훼손하지 않는 한, 일본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만으로 예술적 자유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재판부가 판단했다는 점이다.

구청은 △'2015년 12월 28일 한일 간 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게 독일 공식 입장이라면서 △한일 갈등을 주제로 한 소녀상을 계속 설치하는 건 독일의 외교적 이해 관계에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했다. △소녀상이 일본군 만행을 알리는 것을 넘어 보편적 여성 인권을 상징한다는 코협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이를 굳이 미테구에 설치할 이유는 없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소녀상이 외교적 마찰을 일으켰다거나 독·일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점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일본의 불만 표명은 조형물 설치가 승인되었던 당시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본의 불만 표명이 철거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판결문에는 "일본 대사가 미테구청장에게 수없이 전화를 건 것은 조형물에 대한 일본의 관심을 증명할 뿐, 외교에 대한 부정적 결과를 증명하지는 못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판결 환영한 시민단체 "중요한 중간 성과"


코협은 법원 판결을 환영했다. 소녀상 영구 존치 디딤돌로 해석한 것이다. 코협은 "이번 판결은 중요한 중간 성과"라며 "향후 법적·정치적 대응 방안에 대해 조속히 논의하고 단호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코협은 소송 과정에서 소녀상 위치 변경에 열린 자세라는 입장을 밝혔다. 향후 소녀상이 옮겨질 처지에 놓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려워 보인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