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수능일인 지난해 11월16일 오전 광주의 한 고등학교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 시간을 기다리며 공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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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카르텔’ 수사를 벌여온 경찰이 시험 문항을 거래하며 수억원을 주고받은 대형학원 3곳과 교사 72명 등 100명을 검찰에 넘겼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는 17일, 현직 교사가 사교육 업체에 시험문제를 내주고 수억원을 받은 사교육 카르텔 관련자 126명을 입건해 수사한 뒤 100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선 중·고교 교사가 72명으로 가장 많았고, 유명 학원 법인은 세 군데였다. ‘메가스터디’ 소속 강사 조아무개씨를 비롯해 유명 학원 강사 등 사교육업체 관계자 20명도 포함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와 입학사정관, 교수도 범행에 가담했다.
현직 교사와 사교육업체 사이의 문항 거래 규모는 수억원대에 이르렀다. 경찰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수능 관련 문항을 만들어 사교육업체에 판매하고 48억6천만원을 받은 교사 47명을 적발했다. 이들이 거래한 수능 대비 문항은 1문제당 10만∼50만원꼴이었다. 수능 모의고사 검토위원으로 참여해서 알게 된 문제를 살짝 변형한 뒤 사교육업체에 판매하고 수억원을 받은 현직 교사도 있었다. 한 학원 강사는 공소시효인 최근 7년간 5억5천만원을 들여 문제를 사들였다.
현직 교사들이 팀을 꾸려 사교육업체에 문제를 판매한 사례도 적발됐다. 대구 수성구의 수학교사 ㄱ씨는 수능 검토위원으로 일하면서 만난 현직 교사 8명과 함께 ‘문항제작팀’을 구성하고 다수의 대학생으로 구성된 ‘문항검토팀’을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문제 2946개를 제작해 사교육업체와 강사들에게 넘기고 6억2천만원을 챙겼다.
심지어 사교육업체에 문제를 판매하고 이를 그대로 학교 내신시험에 출제한 교사도 있었다. 내신시험의 공정성을 위해 현직 교사들은 시판되는 참고서 문제를 그대로 출제하는 게 금지돼있으나, 선후관계를 바꾸며 이걸 어긴 것이다. 경찰은 사교육업체에 판매한 문제를 학교 내신시험에 똑같이 출제한 고등학교 교사 5명을 업무방해와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다만 경찰은 유출 논란이 일었던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항’과 관련해 관련자들의 금전 거래 등 유착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23번 문항 지문은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2020년 9월 출간한 저서인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에서 발췌됐는데, 한 대형 입시학원 유명 강사 ㄴ씨가 제공한 사설 모의고사 문제와 판박이라 논란이 일었다. ㄴ씨는 현직 교사 ㄷ씨로부터 이 지문을 활용한 문제를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 지문을 수능에 출제한 대학 교수 ㄹ씨는 2022년 교육방송(EBS) 교재 감수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알게 된 지문을 수능 출제에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경찰은 강사 ㄴ씨와 교수 ㄹ씨 사이의 유착관계는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이 문제를 판매한 교사 ㄷ씨는 ‘투 머치 인포메이션’ 지문을 이비에스 교재 발간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들의 계좌, 통신내역, 이메일 등을 확인했지만 연관된 부분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교수 ㄹ씨는 이비에스 교재 내용을 발간 전에 수능 출제에 활용한 혐의(업무방해, 정부출연기관법 위반)로 송치됐다.
경찰청은 “교육부 등 관계기관과도 지속 협의하여 대학입시 절차의 공정성이 보장되고 건전한 교육 질서가 확립되는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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