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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300만원, 회사보다 낫네"…공무원 인기 시들? 8년 만에 '반전'

머니투데이 이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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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300만원, 회사보다 낫네"…공무원 인기 시들? 8년 만에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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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030 취업절벽 생존기 (下)

[편집자주] 2030 취업이 어렵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에서 별따기다. 그냥 '쉬었음' 청년은 역대 최대치다. 취업전선에 앞서 '취업동아리'부터 전쟁이다. 돈 내고 졸업을 늦추기 일쑤다. 취업하기 위한 2030의 고군분투 생존기를 들여다봤다.



"안정적인 게 최고, 9급 공무원 될래"…불황에 노량진 다시 북적인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일대에서 한 청년이 수험서 여러 권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이현수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일대에서 한 청년이 수험서 여러 권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이현수 기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기업보다는 안정적인 공무원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에서 만난 정모씨(30)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9급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 정씨는 "경기가 좋지 않아 주변에도 민간 기업 취업 대신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경기 불황으로 인한 취업 한파가 이어지며 공무원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간 기업 채용문이 좁아지는 상황에서 공무원 처우 개선도 이뤄지며 공무원이 취준생들의 주목을 받는 모양새다.

노량진에서 만난 다른 학생들도 공무원의 '안정성'을 매력적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한 김모씨(25)는 "사기업 입사를 위한 무한 스펙 경쟁이 부담됐다"며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어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준비를 시작한 경우도 있다. 올해 초 공무원 학원에 등록한 신모씨(29)는 "중소기업에 다니다가 워라밸도 안 좋고 불안정하다고 느껴 9급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며 "공무원 연봉도 더 높아진다고 해서 의욕이 생긴다"고 말했다.


◇9급 공무원 공채시험 경쟁률 9년 만에 ↑

2016~2025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선발시험 경쟁률.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2016~2025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선발시험 경쟁률.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5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선발시험의 경쟁률은 24.3대 1을 기록하며 9년 만에 반등했다. 경쟁률이 53.8대 1을 기록한 2016년도 이후 8년 연속 떨어지다가 높아졌다.

공무원 인기 회복 이유로는 장기화하는 취업난과 공무원 처우 개선이 거론된다. 정부는 공무원 급여를 인상하는 등 처우 개선에 나섰다. 올해 1월 인사처는 '2025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을 발표해 9급 초임 봉급을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기준 월 269만원 수준의 초임 보수가 2027년에는 300만원까지 인상될 예정이다.

노량진 학원가에서도 높아진 공무원직 인기를 체감할 수 있다. 노량진 대형 공무원 학원의 상담 직원 A씨는 "불황이 길어지고 대기업 채용도 줄면서 공무원 인기가 많아지는 것 같다"며 "원래 방학인 7월에 수강생이 가장 많은데 올해는 3월부터 많았다. 지난해 3월 대비 학생 수가 30~40% 늘었다"고 했다.


이어 "직장을 다니다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도 많다"며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다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공무원 학원을 찾는 추세"라고 밝혔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일대에서 청년들이 길을 걷는 모습. /사진=이현수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일대에서 청년들이 길을 걷는 모습. /사진=이현수 기자.




"양치하기" "차 마시기" 업무 보고 끝…이 회사 사원들의 하루


서울 중구에 위치한 니트생활자 사무실에서 만난 박은미 대표(왼쪽), 전성신 대표(오른쪽)./사진=이현수 기자.

서울 중구에 위치한 니트생활자 사무실에서 만난 박은미 대표(왼쪽), 전성신 대표(오른쪽)./사진=이현수 기자.


무직 청년들이 100일간 온라인 출퇴근 보고한다. 이들의 업무는 '양치 하기', '방 정리하기', '식물에 물 주기' 등이다. 비영리단체 니트생활자가 2019년부터 운영한 가상 회사 '니트컴퍼니'에선 무던한 일상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니트족'은 무직 상태임에도 일할 의지가 없거나 일할 준비를 하지 않는 청년을 뜻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고 답한 니트족 청년층은 50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니트컴퍼니는 이처럼 취업에 어려움에 겪으며 고립의 위험에 처하는 청년들의 사회적 연결망이다. 니트컴퍼니를 운영하는 니트생활자 전성신 공동대표는 "반복해서 취업에 실패하거나, 매년 계약이 만료돼 새 직장을 알아봐야하는 상황에 처하면 무기력해지기 쉽다"며 "청년들이 절망에 빠지지 않고 사람과 연결되도록 돕는 공동체가 돼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루에 1개씩 업무…'양치하기'부터 '글·그림 전시'까지 다양한 도전

지난해 5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진행된 니트컴퍼니 전시 풍경. /사진제공=니트컴퍼니.

지난해 5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진행된 니트컴퍼니 전시 풍경. /사진제공=니트컴퍼니.


니트컴퍼니 '사원'들은 100일 동안 온라인 출퇴근 보고를 하고, 자신이 정한 하루의 업무를 한다. 일상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양치하기', '방 정리하기' 등 간단한 업무부터 시작한다. 창작가를 꿈꾸는 이들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100일 간 창작한 글과 그림을 모아 전시도 진행한다.

놀이처럼 보였던 업무가 진로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매일 차 마시기' 업무를 했던 참가자는 차 카페를 열었고, 식물을 관찰하며 '식물일지'를 쓰던 참가자는 식물매개치료 대학원에 진학했다.

월 1회씩 함께 한강에 가거나 나무 심기를 하는 등 오프라인 활동도 제공된다. 박은미 니트생활자 공동대표는 "무기력하던 이들도 사람들과 만나면 정보와 활력을 얻는다"며 "무직 청년들이 혼자 하기 어려운 일들을 공동체 속에서 시도하도록 돕고자 한다"고 말했다.

◇취준생 줄고 '쉬었음 청년' 늘어…"사람과의 관계 중요"

최근 고용한파가 지속되며 니트컴퍼니 구성원 중에서도 '쉬었음 청년'이 늘고 있다. 2020~2021년에는 참가자 중 취업준비생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지만, 올해 참가자 중에는 '최근 4주간 구직 경험이 없다'고 답한 이들이 60%에 달한다.

박 대표는 "예전에는 공시생 등 취업준비생들이 많았는데 갈수록 없어진다"며 "최근 참가자 중엔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가 안 보여 지친 분들이 많다. 전보다 청년들이 더 힘들어진 게 체감된다"고 말했다.

니트컴퍼니 운영진은 이처럼 취업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청년들이 사람을 만나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과거 니트 상태를 반복해서 겪은 박 대표는 "무직 시절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만나 큰 위로를 받고 니트컴퍼니라는 새로운 시도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며 "청년들이 무직 기간에도 사람을 만나고, 서로 지지해 줄 수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 대표도 "청년들이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사람들을 만나 공동체와 연결되고, 건강한 일상관리를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성북구에서 진행된 니트컴퍼니 전시에 진열된 작품들. 니트컴퍼니 '사원'들이 스스로 요리한 음식 사진(왼쪽)과 포스터 작품(오른쪽)이 전시됐다. /사진제공=니트컴퍼니.

지난해 12월 서울 성북구에서 진행된 니트컴퍼니 전시에 진열된 작품들. 니트컴퍼니 '사원'들이 스스로 요리한 음식 사진(왼쪽)과 포스터 작품(오른쪽)이 전시됐다. /사진제공=니트컴퍼니.




'쉬었음' 뒤에 가려진 청년 우울증…"폭력 성향 이어질 수도" 경고


20대(20~29세) '쉬었음' 인구. /그래픽=이지혜 기자.

20대(20~29세) '쉬었음' 인구. /그래픽=이지혜 기자.

계속되는 취업 시장 한파에 취업 실패를 거듭한 청년들이 무력감을 넘어 우울감을 느낀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을 몰아세우기보다는 양질의 일자리 제공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16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쉬었음 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들은 현재 일을 쉬고 있는 이유로 '번아웃'(27.7%)이나 '심리적·정신적 문제'(25%)를 꼽고 있다.

특히 '쉬었음' 청년 77.2%는 쉬었음 기간을 불안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감 하락(62.5%)을 겪고 있거나 미래 대비가 미흡하다(53.9%)는 응답도 있다.

취업 실패는 20대 우울증 환자 증가에도 영향을 미쳐 지난해 20대 우울증 환자는 50만명을 넘어섰다.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7월 정신과 진료 환자 중 우울증을 겪는 20대 환자는 여성 35만2453명, 남성 18만190명으로 총 53만2643명이다.

한국고용정보원 '쉬었음' 청년 실태조사. /그래픽=이지혜 기자.

한국고용정보원 '쉬었음' 청년 실태조사. /그래픽=이지혜 기자.


전문가들은 젊은 층에 우울증 환자가 많은 것은 취업 등 사회적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타인에 대한 피해의식과 박탈감이 폭력적 성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누구도 내 문제를 신경 써주지 않고, 국가도 자신을 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국가의 법질서를 무시해도 된다는 과격한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그 생각을 끊고, 어떻게 국가와 사회가 따뜻한 보호의 손길을 내어줄 것인가에서부터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을 취업시장에 몰아세우기보다 청년들의 취업 의욕이 떨어지게 된 원인부터 살펴야 한다고 했다.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사회는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눈높이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취업을 잠시 미루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며 "구조적으로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기회를 많이 제공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현수 기자 lhs17@mt.co.kr 이지현 기자 jihyun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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