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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도 다른 사회 구성원처럼 일반질환 겪는 점 이해해야”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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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나현 강동성심병원 엘지비티큐플러스(LGBTQ+)센터 교수.

황나현 강동성심병원 엘지비티큐플러스(LGBTQ+)센터 교수.


성소수자는 어떻게 신체건강을 관리해야 할까? 의료·건강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우리는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인권단체 등을 제외하면 성소수자에 대한 의료·건강정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정신건강과 성건강이 아닌 일반적인 신체건강에 대한 정보는 사실상 전무하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성소수자 각각이 어떤 질병에 더 취약한지, 이를 어떻게 예방하고 조기 진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침 역시 부족하다.





작가 ‘이반지하'가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 ‘부치의 자궁’은 이러한 현실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 책은 남성적인 성별 표현을 지닌 레즈비언이 중년기에 겪는 건강 문제를 통해, 성소수자가 의료 시스템에서 마주하는 현실을 조명한다. 여성성이 강조되는 산부인과 진료를 평생 기피한 주인공이 자궁 질환을 방치한 끝에 결국 자궁절제술을 받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의료 현장에서 성소수자들이 겪는 낯섦과 배제를 유쾌하지만 날카롭게 그려낸다.



성별확정수술을 집도 중인 황나현 교수.

성별확정수술을 집도 중인 황나현 교수.


건강한겨레는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 유일의 대학병원급 성소수자 전문 클리닉인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를 찾았다. 인터뷰를 진행한 황나현 교수(성형외과 전문의)는 “국내 성소수자 인구와 의료 현황에 대한 정확한 집계 노력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성소수자 의료가 국가 정책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에서 국내 첫 ‘성소수자 건강검진센터'를 조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 강동성심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황 교수는 같은 센터의 김결희 교수와 함께 국내에서 성별확정수술과 성소수자 친화 의료를 위해 꾸준히 실천해온 ‘앨라이 닥터’(Ally Doctor)로 활동 중이다.



미국 뉴욕시에 있는 마운트시나이병원의 젠더 수술 대가들과 만난 황나현 교수(가운데).

미국 뉴욕시에 있는 마운트시나이병원의 젠더 수술 대가들과 만난 황나현 교수(가운데).


“우리는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해 잘 모른다”





황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성소수자의 건강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만큼의 국가 통계나 의료 데이터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3년 성소수자 규모를 파악해야 한다고 정부에 권고했지만, 정부 관계부처 모두가 불수용했다. 성별확정진료를 포함한 대부분의 성소수자 관련 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HIRA)의 통계에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2023년 기준으로 심평원에 따르면 지난 6년간 1만1184명이 ‘성주체성 장애’ 진단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으나, 이는 전체 인구의 1~1.5%가 트랜스젠더라는 국제 통계에 비춰볼 때 턱없이 낮은 수치다.





황 교수는 “정책에서 배제된 구조적 차별이 병원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며, “트랜스젠더 환자들은 자비로 치료받더라도 진료 접수 단계에서부터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고, 성소수자 환자들은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숨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 명패 모습. 명패엔 ‘이곳에선 누구나 환영받는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 명패 모습. 명패엔 ‘이곳에선 누구나 환영받는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황 교수가 활동하고 있는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KALM, Korean Association for LGBTQ Medicine)는 성소수자의 건강 증진을 목표로 설립된 단체로, 교육·연구·정책제언·연대활동 등을 통해 성소수자 친화적인 의료 환경을 조성하고, 관련 분야의 인식 개선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성소수자의료연구회는 ‘한국 트랜스젠더·성별 다양성이 있는 사람 코호트 구축 및 추적관찰 연구’(KITE)를 시작해 성소수자 건강 관련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있으며,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내 최초의 ‘LGBTQ+ 건강검진센터’ 설립을 추진하며, 성소수자가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의료 환경 조성을 위한 기반을 하나씩 마련해가고 있다.





황 교수는 “성소수자 의료 활성화를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과제가 많다”고 하면서도, “결국 의료엔 데이터가 가장 중요하기에 성소수자 맞춤 건강검진 정책과 의료기관 가이드라인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분들 역시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질환을 겪는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다만 각자의 삶의 방식이나 정체성에 따라 고려돼야 할 건강상의 요소가 추가로 존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 교수가 설명한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이성과의 성 접촉이 없는 레즈비언이라도 자궁경부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인유두종바이러스(HPV) 예방접종과 관련 암 정기검진이 필요하다.



△게이 또한 HPV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 유방절제수술을 받은 트랜스 남성이라도 유방 일부가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유방암 정기검사가 필요하다.



△ 자궁·난소를 유지하고 있는 트랜스 남성은 자궁경부암 등 정기검진이 요구된다.



△ 트랜스 여성은 전립샘이 대부분 남아 있기 때문에 전립샘암 정기검진 대상이다.







성소수자 의료는 ‘세심함'…환자 맞춤형 의료 선도해 모두를 위한 의료 기반 마련해야







성소수자 건강검진센터는 단순히 건물을 짓고 검진기기를 새로 들여오는 작업이 아니다. 눈에 보이게는 모두(성중립)의 화장실과 별도 탈의실,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 개편, 작게는 문진표를 새로 만들고 진료 접수·수납 등의 단계에서 환자를 호명하고 안내하는 행정적인 기술까지 포함한다. 결국, 병원 체계 전반을 바꾸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원하는 이름과 성별로 불러주는 일,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는 일, 입원 중 혐오나 차별을 겪지 않도록 배려하는 세심함이 환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성소수자들이 병원에서 경험하는 전 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이 필요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의료진은 물론 행정 인력까지 병원 구성원 전체의 노력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러한 의료체계는 성소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국내 의료시스템에서 환자 중심, 환자 맞춤형 정밀의료를 완성해 ‘모두의 병원’을 실현하는 중요한 받침돌이 될 것이란 게 황 교수의 견해다. 국내 의료 수준의 발전은 물론 모든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체계는 성소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환자 중심 정밀의료의 기반이 된다. 황 교수는 “트랜스젠더 인권이 곧 인권(Human Rights)이라는 말처럼, 의료에서도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상황과 건강 상태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라며, “성별이나 신체 기관의 유무를 기준으로 환자를 구분하기보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맞춤형 진료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정밀의료”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차별금지법과 관련 교육이 의료 영역에서도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황 교수는 “병원 안에서도 성소수자 환자가 충분히 보호받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모두를 위한 법’인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며, “아직 이 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료 현장에서도 조심스럽고 제한적인 접근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차별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교육 역시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혐오는 종종 무지에서 비롯되며, 이는 곧 ‘경험해본 적 없는 존재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교육 과정을 통해 어릴 때부터 다양한 가족 형태와 성정체성을 접하고, 일상 속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다면 혐오와 차별은 점차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이어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교육받는다고 해서 누군가가 성소수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며,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불필요한 우려를 불러일으킬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최지현 기자 jhchoi@hani.co.kr 사진 강동성심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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