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졸업 안 해" 대학생들 돈 내가며 미루는 이유…취업문 더 좁아졌다

서울 / 11.8 °
[기획]2030 취업절벽 생존기 (上)

[편집자주] 2030 취업이 어렵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에서 별따기다. 그냥 '쉬었음' 청년은 역대 최대치다. 취업전선에 앞서 '취업동아리'부터 전쟁이다. 돈 내고 졸업을 늦추기 일쑤다. 취업하기 위한 2030의 고군분투 생존기를 들여다봤다.



"소속 없는게 두려워요"…졸업 미루고 취업동아리 줄서는 청년들


애드피아 신입회원 선발 과정 중 하나인 수습활동 과제 전형을 치르는 지원자들 모습. /사진=독자제공.

애드피아 신입회원 선발 과정 중 하나인 수습활동 과제 전형을 치르는 지원자들 모습. /사진=독자제공.


청년 취업절벽이 더욱 극심해지면서 취업에 유리한 대학 동아리 가입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대기업 못지않은 신입회원 선발 과정을 거치고, 관련 분야 자격증 취득도 필요하다. 취업될 때까지 대학 졸업을 미루는 청년도 늘어나고 있다. 취업하지 못하면서 '소속'이 없어진다는 두려움도 크다.

1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20대 실업자수는 27만9000명으로 전년보다 3만1000명 증가했다. 실업률은 7.5%로 2023년 3월이후 가장 높다. 취업준비자는 실업자보다 더 많은 68만6000명으로 전년보다 2만7000명(4.1%) 증가했다. 취업준비자는 취업을 위해 학원이나 기관에 통학하는 사람과 통학하지 않지만 취업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상당수가 20대로 추정된다.

20대 취업이 하늘에 별따기이다보니 대학에선 취업에 유리한 동아리 인기도 치솟고 있다. 최대 규모의 투자 동아리인 전국대학생투자동아리연합회(UIC)와 '4대 광고 동아리'로 꼽히는 에드피아는 취업에 유리하다고 소문난 대표적인 곳이다. 회원 상당수가 관련 직종에 근무하고 있어 현직 선배에게 취업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다. 실제로 면접 전 동아리 선배의 팁을 얻어 취업에 성공한 후배가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기업에 따라 관련 동아리 회원을 우대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있다.

올해 처음으로 개인 자격 회원을 뽑은 UIC에는 선발 인원의 2배가 넘는 인원이 서류전형에 나섰다. 대부분 지원자가 재무설계사, 투자자산운용사 등 자격증과 각종 대외 활동을 내세웠다. 애드피아의 신입 회원 선발 과정은 대기업을 방불케 한다. 면접과 경쟁 PT 등의 과정을 거친다. 경쟁률은 2대1에서 3대1 사이를 오간다. 선발 과정에서 돋보이기 위해 에드피아로 4행시를 준비한 지원자, 팀별 발표에서 가수 이영지의 성대모사를 한 지원자 등 다양하다.


심지어 취업 한파에 학생들이 인기 취업동아리로 몰리다 보니 대학과 대기업처럼 동아리·학회가 서열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생 커뮤니티에서는 동아리·학회를 순위대로 나열한 게시글도 쉽게 볼 수 있다.

학사 학위 취득 유예생 수. /그래픽=김지영 기자.

학사 학위 취득 유예생 수. /그래픽=김지영 기자.

좁은 취업문에 졸업을 유예하는 학생이 늘었다. 학부생 1~2년간 동아리·학회 활동을 마치고도 조금이라도 더 직무 경험을 쌓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대학의 학사 학위 취득 유예생은 1만7937명이었다. 2021년 1만9356명에서 2023년 1만5282명으로 줄었다가 1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 2655명 늘었다.

취업 준비시간을 확보하려고 일부러 돈을 더 내가며 초과학기를 등록하기도 한다. 고려대학교를 수료한 김모씨(24)는 지난 학기를 초과학기로 다니며 학점을 다 채우고도 졸업을 하지 않았다. 그는 "취업할 때 졸업 상태보다 수료가 더 유리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주변 동기들도 대부분 졸업 대신 수료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취업하지 않거나 대학원 진학도 하지 않아 '소속'이 사라지는 걸 두려워 졸업을 미루는 학생도 있다. 한국외대에서 졸업을 유예한 신모씨(28)는 "대학을 마치고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황이 무섭다"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졸업유예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신입 공고에 '경력 필수'?…좁아진 취업문에 청년들 "그냥 쉬었음"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시내 한 대학교 채용게시판에 관련 공고가 게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시내 한 대학교 채용게시판에 관련 공고가 게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공개 채용 대신 수시 채용으로 채용 방식을 전환하고 있다. 경력자에게 유리한 채용 전형 속에서 비경력자가 설 자리가 줄어든다. 한국은행은 비경력자가 취업에 실패할수록 구직을 아예 포기하는 청년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 중 삼성그룹이 유일하게 신입사원 대규모 공채 제도를 유지 중이다. 현대차는 2019년, LG는 2020년, SK는 2022년에 신입사원 정기 공채를 폐지했다.

대기업이 신입사원 채용을 멈췄을 뿐만 아니라 신입사원 채용에 경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SK그룹 계열사 SK바이오텍은 화학공정 개발 연구원 신입사원 공고에 '관련 경력 1년 미만'을 필수 요건으로 내걸었다.

포스코는 아예 '경력기반 신입사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올해 모집 공고를 냈다. 5년 미만 제조업 생산직 근무경력을 요구한다. 공고에는 "경력을 보유한 지원자를 대상으로 인턴 체험 과정 없이 입사할 수 있는 채용 전형을 별도로 신설해 시행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삼성도, 4대 은행도 '좁아지는 취업문'

4대 은행 채용 규모.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4대 은행 채용 규모.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대규모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은행 공채 취업 문도 좁아졌다. 4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의 연간 채용 인원은 2023년 1880명에서 지난해 1320명으로 약 30% 감소했다.

KB국민은행은 올해 상반기 110명을 뽑는다고 했고 신한은행은 지난해보다 적은 90명을 뽑는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190명, 150명을 선발한다는 계획이다.

그나마 공채를 실시하는 삼성도 채용 규모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올해 공채를 진행한 삼성 계열사는 16곳으로 지난해보다 3곳 줄었다. 삼성전자에서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사업부는 신입 채용을 하지 않는다. 채용 직무도 지난해 17개에서 올해 9개로 줄었다.

◇"취업 실패 반복 경험한 청년, 니트족 될 수도"

매출액 500대 기업 채용 방향 및 채용 방식. /그래픽=김다나 디자인기자.

매출액 500대 기업 채용 방향 및 채용 방식. /그래픽=김다나 디자인기자.


기업의 경력직 선호 현상은 뚜렷해지는 추세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표한 BOK이슈노트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 보고서에서 "신입직 비중은 2009년 82.7%에서 2021년 62.4%까지 떨어졌지만 같은 기간 경력직 비중은 17.3%에서 37.6%로 늘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고용노동부가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0.8%가 '경력직 채용을 확대할 것'이라고 답했다. '신입직을 뽑겠다'는 응답은 25.7%에 불과했다. 채용 방식도 수시가 81.6%, 공채는 14%에 그쳤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경력직 채용의 증가로 청년들의 취업 기회가 제약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구직을 포기하는 청년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고용률이 더욱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졸업 후 취업 실패를 반복적으로 경험한 청년들은 '니트족'(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는 무직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박진호 기자 zzino@mt.co.kr 이현수 기자 lhs17@mt.co.kr 오석진 기자 5stone@mt.co.kr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