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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도 마진도 무너졌다…정유업계 트럼프 한마디에 '벌벌'

비즈워치 [비즈니스워치 강민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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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發 관세 직격탄…유가·정제마진 '이중고'
글로벌 수요 하향…캐나다 반사이익도 물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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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비즈워치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격화하면서 국내 정유업계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최근 상호관세 발표 이후 국제유가가 추락, 4년만 최저 수준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제마진도 하락세다. 정책적 불확실성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에 정유업계 실적을 가르는 두 축이 흔들린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정부가 캐나다산 원유에 대한 상호관세를 면제하면서 반사이익을 노리던 기대감마저 식었다.

'저유가=이익' 공식 무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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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년간 국제유가 흐름./그래픽=비즈워치


유가와 정제마진이 동반 부진을 보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페트로넷)에 따르면, 올 4월 두바이유 평균 가격은 배럴당 68.41달러로 전년 동기(89.17달러) 대비 23.3% 하락했다. 같은 기간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각각 24.9%, 24.7% 주저앉았다.

올해 들어 3대 유종의 월별 평균 가격은 지속 하락세다. 두바이유는 지난해 12월 배럴당 73.23달러에서 올해 1월 80.41달러로 한 달간 7달러 이상 치솟았지만, 이후 △2월 77.92달러 △3월 72.49달러 △4월 68.41달러 등으로 떨어졌다.

지난 8일(현지시각)엔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던 5월 인도분 WTI 선물 가격이 전 거래일보다 1.34달러(2.2%) 하락한 배럴당 59.10달러에 마감하기도 했다. WTI 선물 가격이 배럴당 60달러선 밑으로 떨어진 건 지난 2021년 4월 이후 4년 만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가 '보복 관세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 원인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 분위기가 '원유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로 확산된 것이 주효했다. 실제 국제유가는 지난 2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한 이후 4거래일 연속 급락했다.

설상가상 주요 산유국 연대체인 오펙플러스가 "내달부터 증산하겠다"고 발표, 유가 하락에 기름을 부었다. 수요가 위축되는 반면 공급은 늘어나니 약세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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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마진 추이./그래픽=비즈워치


정유업계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도 6달러대로 미끄러졌다. 한 달여 만 2달러 이상 빠지면서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웃돌고 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지난주 싱가폴 복합 정제마진은 6.8달러로 파악됐다. 전주 대비 0.7달러 소폭 올랐지만, 전월과 비교했을 땐 내림세다.

정제마진은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을 제했을 때 정유사들이 실질적으로 갖게 되는 순익이다. 업계는 정제마진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수요 없는 저유가는 '독'

'제품 가격-원유 가격=정제마진'이라는 수식 하에 일반적으로 국제유가 하락은 정제마진이 개선되는 유리한 환경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하로 급락하거나 장기화할 경우 정유사 실적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적지 않다.


△재고 평가손실 발생 △수출 채산성 악화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유가가 하락하면 정유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재고 자산의 가치가 하락한다. 대개 정유사들은 이송 기간 등을 고려해 2~3개월 전 물량을 미리 계약한다. 문제는 유가 상승 시기에 원유를 사들이고, 이송되는 동안 유가가 하락할 때다. 회계상 저가법 평가가 적용돼 재고를 손실로 반영해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정제마진 급락 가능성'이다. 유가 하락은 일시적으로 정제마진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지만, 경기 둔화 등 유가 하락의 본질적 원인이 영향을 미치면 정제마진까지 동반 하락할 수 있다. 이 경우 수익성에 치명적이다.

통상 업계 내에서 원유 가격은 '매매가', 제품 가격은 '전세가'와 유사하다고 설명된다. 집값이 상승할 것이란 기대감만으로 매매가격이 오르고, 실제 찾는 사람이 있어야만 오르는 전세가격과 각 특성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결국 근본적인 정제마진 개선을 위해선 수요 회복이 급선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유가가 떨어지면 낮은 유가로 인해 수요가 증가하고 마진도 오르는 패턴을 보여왔는데, 경기 침체가 더 빠른 속도로 오면서 마진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관건은 수요 회복인데 트럼프 말 한마디 한마디에 변동이 심할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이어 "4월 둘째 주 조금 오르긴 했지만 이는 같은 기간 유가 급락으로 인해 마진이 상대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트럼프 정부의 불확실성이 워낙 커서 예측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EIA도 비관…캐나다 기대 접고 '혹한기'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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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전망./그래픽=비즈워치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도 관세가 유가에 막대한 부담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11일 EIA는 보고서를 통해 올해와 내년 글로벌 석유 수요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최근 무역 정책 변화와 경제 불확실성 증가를 반영한 결과다.

이에 기반해 국제유가 전망치도 낮춰잡았다. EIA는 브렌트유 평균 가격을 올해 68달러, 내년 61달러로 내다봤다. 한 달 전 발표한 보고서에서 각각 6달러, 7달러 하락한 수치다.

'캐나다 반사이익' 기대감도 꺾였다. 미국과 캐나다 간 관세 대립이 격화될 경우 캐나다가 원유를 제3국에 수출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산을 비롯 원유 품목별 상호관세를 면제하면서 이마저도 틀어졌다.

캐나다 원유는 국내서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보다 20%가량 저렴해 이를 활용하면 원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란 업계의 기대가 컸었다.

이러한 복합위기에 SK이노베이션·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GS칼텍스 등 국내 정유사들의 하반기 실적도 불투명하다. 국내 정유업계의 정유 부문 영업이익률은 △2022년 6.4% △2023년 1.4% △2024년 –0.1% 등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박주선 대한석유협회 회장은 "전 세계가 관세 전쟁에 돌입하는 상황에서 국내 정유산업은 혹한기를 맞을 것"이라며 "정부의 정책적 배려 없이는 지속가능항공유(SAF) 등 미래 산업 투자가 지연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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