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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계엄 막아부렀는디, 이재명이를 밀어줘야제.”
비가 내리던 14일 오후, 광주 상무지구에서 만난 회사원 박정섭(59)씨에게 대선 전망을 묻자 곧바로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박씨는 “다른 후보 중에 똑부러진 사람이 있던가”라며 “이재명이가 그래도 카리스마가 있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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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5일 20대 대선 민주당 광주·전남 경선에서 이낙연 당시 후보가 47.12%를 득표해 이재명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앞선 1위를 차지했다. 연합뉴스 |
길 건너편에 위치한 김대중컨벤션센터는 2022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이재명 후보에게 일격을 안긴 장소였다. 2021년 9월 25일 이곳에서 열린 광주·전남 경선에서 이 후보는 이낙연 전 대표에게 122표로 패했다. 5연승 뒤 첫 패배였다. 하지만 3년 뒤 광주의 분위기는 달랐다. 무등시장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배선우(54)씨는 민주당 경선 전망을 묻자 “뭘 물어, 이재명이 되겄제”라며 “김두관이 경선 불참 어쩌구 해싸는데 천불이 나 화면 돌려 부렀어”라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를 기억하는 광주 시민들에게 12·3 계엄이 가져다 준 충격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광주 금남로 대인시장에서 만난 상인 문영식(60)씨는 “아직꺼정 밤마다 (불안해서) TV를 켜 놓고 잔당께”며 “자리 싸움 하다가 정권 교체를 놓치면 민주당은 참말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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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대인시장에서 분식집을 운영하시는 정점순씨. 김정재 기자 |
중앙일보가 14~15일 광주에서 만난 시민 상당수는 “이재명 후보를 밀어야제”라고 했다. 이 후보에게 도전한 김경수·김동연 후보에 대해서는 “분명히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이번에 되겄소”라고 반문했다. 대인 시장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정점순(58)씨는 “둘 다 일단 이름을 좀 더 알려야 쓴다”며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니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공무직 근로자 A씨(31)도 “민주당 초선의원이 70명이 넘는다는 디, 차라리 더 젊은 사람이 나와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최근 구(舊) 여권에서 분출하고 있는 ‘한덕수 차출론’에 대해선 경계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전북 전주 출신이다. 광주 송암동에 거주하는 60대 박국용씨는 한 대행 출마 가능성 얘기를 꺼내자 얼굴을 찌푸리며 “윤석열을 옹호하는 국민의힘과 한덕수도 다 망해부러야해”라고 역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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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5일 광주광역시 서구 기아 오토랜드를 방문, 공장 시찰을 하고 있다. 사진 총리실 제공 |
광주 남광주시장에서 두부 가게를 운영하는 김하진(40)씨는 한 대행에 대해 “헌법재판관 지명이 윤석열을 지키겠다는 선언인 걸 우린들 모르겄소”라며 “그 양반은 더 이상 호남 사람이 아니요”라고 했다. 광주 동구에서 만난 문영식(57)씨도 “한덕수가 15일 난데없이 광주를 찾은 걸 보니 쪼까 꿍꿍이가 있당께”라며 “전주 출신이라 여기 표를 쫌 먹지 않겄소. 긍께 우리가 정신 똑바로 챙겨서 민주당을 밀어야제”라고 했다.
다만 ‘이재명 일극체제’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자신을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민주당 지지자라고 소개한 택시기사 차모(68)씨는 “이재명에게만 (경선 룰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민주당도 똥고집을 좀 엥간치 부려야 한다”고 했다. 광주 대인시장 인근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황치상(78)씨도 “지난 총선 ‘비명횡사’를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며 “유승민을 배신자로 만들고 내친 국민의힘이랑 뭐가 다르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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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양동시장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고형길씨. 김정재 기자 |
일부 시민들 사이에선 “민주당이 협치도 해야 한다”고 했다. 경기 불황 등 민생 문제가 ‘내란 종식’보다 시급하다는 목소리였다. 광주의 대표 상권인 충장로에서 통닭집을 운영하다 유동인구 감소로 가게 문을 닫았다는 이모(55)씨는 “더불당도 그렇게 오기만 부리면 서민만 피해를 입는다”며 “나라를 지키고자 뭐든 하는 게 정치의 본질인데, 왜 타협을 못하느냐”고 했다.
양동시장에서 신발 가게를 운영하는 고형길(59)씨도 “정권 교체 후에도 법을 한쪽 맘대로만 바꾸면 절대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민주당도 국민의힘이랑 밥부터 좀 먹으면서 소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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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
이런 기류가 여론조사에 담긴 걸까. 지난 2022년 대선 이재명 후보에게 몰표(광주 84.8%, 전북 82.9%, 전남 86.1%)를 던졌던 호남에도, 최근엔 무당층 비율이 늘고 있다. 한국갤럽의 대선 후보 선호도 전화면접조사(8~10일)에선 이 후보 56%, 의견 유보 24%였다. 지난 대선 두 달 전 실시된 조사(2022년 1월 11~13일)에서 이 후보 지지율이 69%, 의견 유보(없음·모름·응답거절)가 8%였던 것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어스름한 저녁 무렵 조선대학교 인근 가게에서 만난 40대 서기준 씨는 “광주 시민 모두가 무조건 파랑은 아니랑께”라고 했다. “최근 조국혁신당이 담양군수 선거를 이기는 등 호남이 변화하는 모습이 분명히 있다”는 설명이었다. 광주 송정역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만난 40대 택시기사 박모씨도 “호남이 과거엔 안철수도 왕창 밀어주고 이정현도 순천에서 당선시켜준 거 보면 모르겄소”라며 “아직 50일이나 남았응께 찬찬히 지켜 보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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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광주 송정역 인근에 혼자 걸려 있는 조국혁신당의 현수막. 김정재 기자 |
광주=김정재 기자 kim.j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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