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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 난동’ 기록한 감독이 폭도?…박찬욱 등 “검찰 기소,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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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석 감독이 지난 1월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 사태 당일 부서진 건물 외벽을 찍은 모습. 정윤석 감독 촬영


“제가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검찰이 유죄를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2·3 내란사태를 기록해오던 정윤석 다큐멘터리 감독이 16일 서부지법 사태 가담자 63명의 재판이 진행되는 법정의 피고인석에 서서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비판했다.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취재 목적이 명백한데도 무분별하게 재판에 넘겨졌다는 의미다. 박찬욱 감독 등 영화인과 시민 수천 명도 “단언컨대 정윤석 감독은 그날 폭도를 찍은 자이지, 폭도가 아니”라며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



이날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김우현) 심리로 열린 공판기일에서 정 감독 쪽은 검찰의 기소가 애초부터 무리했다는 주장을 펴며 공소취소를 요청했다. 형사소송법은 1심 판결 선고 전까지 검사가 공소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 감독은 지난 1월19일 새벽 5시10분께 카메라를 들고 서부지법 난동 사태가 벌어지던 법원 현장을 3분 남짓 취재하다가 붙잡혔다. 경찰은 정 감독을 다른 가담자 62명과 묶어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단 한 번의 조사도 없이 정 감독을 기소했다.



정 감독 쪽 변호인은 “공소사실이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명백히 반박되고 법리적으로도 범죄 성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무리한 기소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정 감독이 다른 피고인과 “공동으로” 법원에 침입했다는 공소사실 자체가 황당한 내용이라는 취지다. 정 감독은 “(검찰이 사건을)정확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그들과 같은 폭도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 감독 쪽은 다른 62명의 피고인과 재판을 분리해줄 것도 요청했다. 수사기관이 63명을 한 번에 묶어 공소를 제기하는 바람에 정 감독 개인정보가 다른 가담자들에게 넘겨졌고 ‘프락치’로 몰리며 위협받는 상황을 고려해달라는 취지다.



이날 재판부엔 영화인과 시민들 수천 명이 무분별한 검찰 기소를 비판하는 탄원서도 제출했다. 박찬욱, 김성수, 이명세, 장항준 감독 등 영화인과 시민 2781명, 단체 51곳은 탄원서에서 “이번 기소가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예술가를 범죄자로 낙인 찍는 위험한 전례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며 “아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예술가를 처벌한다면, 앞으로 누가 재난의 자리로, 사회적 기록의 가치를 지닌 현장으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했다. 사단법인 부산국제영화제도 그간 정 감독이 영화제에 출품한 작품과 국제 영화제 수상 작품들을 언급하며 “(정 감독은) 반헌법적인 초유의 폭력 사태를 유발한 극우세력의 일원일 수가 없다”고 탄원했다.



검찰은 정 감독 쪽과 영화계 반발에도 공소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검찰 쪽은 이날 법정에서 “변호인 주장은 독자적 주장에 불과하고 공소취소 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정 감독 쪽 변호인 박수진 변호사는 한겨레에 “수사단계부터 직업이나 촬영 목적 등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입증했는데도 검찰은 기소했다. 그러고서 무죄를 입증하라니 말이 안 된다”며 “검찰 스스로가 기소권을 엄밀하게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공소취소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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