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시 서산한우목장
초록의 언덕이 봉긋봉긋 솟아 있다. 언덕 사이로 나무 한 그루, 바위 한 점 없이 드넓게 이어진 들판은 유럽 고지대의 초원을 연상시킨다. 좁은 면적에 산이 많은 한국의 지형에서 좀체 찾기 어려운 풍경. 초원을 품은 것처럼 길가에 늘어선 소나무와 벚나무가 이곳이 우리의 땅임을 조용히 말해준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배가 넘는 10㎢ 초원 구릉이 이어지는 이곳은 충남 서산시 상왕·일락산 자락의 '서산한우목장'. 정식 명칭은 전국 대부분 한우의 ‘아버지’인 씨수소가 길러지는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다. 씨수소 100여 마리 등 한우 약 3,000마리가 살고 있다.
2010년 구제역 파동 이후 검역상의 이유로 일반인 출입이 전면 제한된 후 14년 만인 지난해 12월 대중에 개방됐다. 푸른 초원을 맘껏 감상할 수 있어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며 입소문을 탄 목장은 개방 4개월 만에 서산의 '핫플'로 떠올랐다.
편집자주
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 |
충남 서산시 서산한우목장에 언덕이 봉긋하게 솟아올라 있다. |
초록의 언덕이 봉긋봉긋 솟아 있다. 언덕 사이로 나무 한 그루, 바위 한 점 없이 드넓게 이어진 들판은 유럽 고지대의 초원을 연상시킨다. 좁은 면적에 산이 많은 한국의 지형에서 좀체 찾기 어려운 풍경. 초원을 품은 것처럼 길가에 늘어선 소나무와 벚나무가 이곳이 우리의 땅임을 조용히 말해준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배가 넘는 10㎢ 초원 구릉이 이어지는 이곳은 충남 서산시 상왕·일락산 자락의 '서산한우목장'. 정식 명칭은 전국 대부분 한우의 ‘아버지’인 씨수소가 길러지는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다. 씨수소 100여 마리 등 한우 약 3,000마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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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서산한우목장 웰빙산책로에서 바라본 주위 언덕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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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서산한우목장 위로 밝은 태양이 빛나고 있다. |
2010년 구제역 파동 이후 검역상의 이유로 일반인 출입이 전면 제한된 후 14년 만인 지난해 12월 대중에 개방됐다. 푸른 초원을 맘껏 감상할 수 있어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며 입소문을 탄 목장은 개방 4개월 만에 서산의 '핫플'로 떠올랐다.
푸른 언덕 봉긋 솟은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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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한우목장 웰빙산책로 아래로 펼쳐진 초원과 벚꽃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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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서산한우목장 내 웰빙산책로에서 바라본 건너편 언덕 위에 정자가 보인다. |
이곳을 처음 발견한 이는 김종필(1926~2018) 전 국무총리다. 김 전 총리는 1969년 야산을 개간해 ‘삼화목장’을 설립했다. 당시 스위스의 방목형 목장을 벤치마킹해 ‘한국형 방목목장’을 목표로 삼았다. '한국의 알프스'라는 별칭도 여기서 유래했다. 설립 11년 후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삼화목장은 김 전 총리의 부정 축재 재산 목록에 포함돼 국고로 환수됐다. 목장은 1982년 축협 서산목장으로 재출범한 뒤 2017년 지금의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로 바뀌었다.
방목형 목장하면 으레 떠올리는 백두대간 산간지역과 달리 목장은 접근성이 좋다. 인근에는 해미읍성, 개심사, 유기방가옥 등 유명 관광지도 많다. 서해안고속도로와 인접해 도로에서도 눈에 띈다. 지난해 12월 목장이 개방되기 전까지는 도로에서 차창 너머로 감상하는 방법이 유일했다.
개방은 했지만 '웰빙산책로'를 제외한 구역은 접근이 제한된다. 개방된 시간에는 별다른 발권 없이 자유롭게 산책로를 오갈 수 있다. 초입에서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지만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언덕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민다. 푸른 언덕 물결은 울창한 숲으로 이어진다. 언덕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맞은편 언덕의 정자와 벚꽃길이 펼쳐진다. 통행이 제한된 길이지만 언덕 위에서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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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서산한우목장 웰빙산책로 옆에 벚꽃이 피어 있다. |
산책로 정상에 오르면 목장 일대를 전망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완만한 언덕을 쓰다듬듯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부드러운 초록 풍경에 노곤함이 절로 풀어진다. 운이 좋으면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귀한 소떼 풍경도 볼 수 있다.
내려가는 길은 벚꽃길이다. 언덕을 오르다 멀리서 보기만 했던 벚꽃길을 걷지 못한 아쉬움을 이곳에서 달랠 수 있다. 벚꽃이 흩날리는 길 사이에서 초원의 푸르름을 한 번 더 눈에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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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용현리 마을 뒤로 구릉지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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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용현리에서 바라본 서산한우목장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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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용현리 야산에 곧게 뻗은 소나무 군락이 있다. |
목장의 산책로는 2.1km에 불과하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남기고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이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아쉬움이 남은 이들은 주위 마을길을 구석구석 다니며 목장의 주변을 둘러봐도 좋다. 목장 내부를 샅샅이 볼 수는 없지만 외부에서 보는 목가적인 풍경만으로도 편안해진다.
서해안고속도로 동쪽의 농촌마을 용현리와 태봉리는 사방이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다. 특히 전망대에서 보이는 언덕의 반대편까지 길이 이어져 산책로와는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대부분 넓지 않은 1차선 도로라 차도와 보도를 겸한다. 여행객 발길은 뜸하고 지역 주민들이 다니는 길이지만 특별한 농촌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용현리 방면으로 가면 상왕산 기슭에 곧게 자란 소나무 숲에 시선을 뺏길 수 있다. 김 전 총리의 별장 호수로 조성됐던 ‘용비지(용현저수지)’도 지역 주민과 사진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던 벚꽃 명소였지만 현재는 접근이 불가하다.
고택 둘러싼 노란 수선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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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유기방가옥의 수선화 언덕이 제철을 맞아 노랗게 물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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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방가옥 뒷산의 수선화가 만개했다. |
서산에 유명한 언덕은 또 있다. 서산한우목장에서 북쪽으로 8km 떨어진 운산면의 '수선화 언덕'. 수선화가 피어오른 언덕은 충남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서산유기방가옥'을 둘러싸고 있다. 서산유기방가옥은 1919년 일제강점기 당시 지어진 고택으로 안채, 행랑채, 사랑채, 마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고택보다 수선화 언덕이 유명하다. 수선화 언덕은 야트막한 야산을 배경으로 남향으로 자리한 고택을 북풍으로부터 지키듯 완전히 감싸안고 있다. 수선화가 피는 매년 3, 4월이면 찬란한 노란빛이 고택 주변에 넘쳐난다. 가옥 입구 오른편으로 수선화 언덕을 크게 돌 수 있는 산책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옥을 중심으로 동쪽과 북쪽은 초록의 소나무와 노란 수선화가 어우러지고, 서쪽과 중앙에는 수선화의 독무대가 펼쳐진다. 소나무 숲 사이로 비치는 햇볕이 노란 수선화 잎에 내려앉아 봄기운을 뿌린다. 숲의 그늘이 짙은 곳에서는 수선화가 마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황홀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산책로 북쪽은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흙길도 닦여 있다. 발을 씻을 수 있는 수도는 산책로를 완전히 벗어나서 언덕 아래까지 가야 있다. 어디를 가든 꽃에 파묻혀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는 여행객을 볼 수 있다. 언덕 곳곳 길이 세세하게 나 있어 다행히 인원은 분산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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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방가옥 안채 창을 통해 장독과 수선화가 액자처럼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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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방가옥 수선화 언덕에 노란 수선화가 가득 피어 있다. |
고택에서도 수선화를 만끽할 수 있다. 안채 내부에서 뒤뜰 방면으로 뚫린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압권이다. 흙빛의 장독 사이로 노란 꽃이 머리를 내민다. 이 창을 액자 삼아 사진을 남기기 위한 이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사랑채의 창에 액자처럼 담긴 수선화도 장관이다. 고택 입구에서는 수선화와 수선화 구근 등을 판매한다.
수선화 관광 명소로 각광받으면서 고택 매표소 앞에 지역 주민들이 기른 농산물을 판매하는 농부시장도 열린다. 비닐하우스 한 동 남짓한 면적의 시장에서 지역 특산물인 생강, 달래 등을 푸짐하게 판다.
겹벚꽃의 성지 '개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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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해미읍성. 한국일보 자료사진 |
서산에 들렀다면 빼놓지 말아야 할 전통 관광 명소도 있다. 서산한우목장에서 남쪽으로 6km가량 떨어진 곳에 해미읍성(사적 제116호)이 있다. 해미읍성은 세종 3년에 완공된, 600년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과 함께 조선시대의 읍성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
정문을 지나 읍성 내부에 들어서면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개방된 유적지로 관광객은 물론 지역 주민의 공원으로서도 기능한다. 과거의 문화유산이 현재의 지역 공동체에 자연스레 녹아든 모습이다. 읍성 중앙을 지키는 관아를 중심으로 성 곳곳에 당시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과 포토존이 설치돼 있다.
해미읍성은 어두운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1,000여 명의 천주교인이 고문 및 처형당했다. 읍성 내에 있는 300년 수령의 회환나무는 당시 교인들을 철사줄로 매달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바티칸 교황청이 지정한 순교 성지 중 한 곳으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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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 연합뉴스 |
벚꽃보다 한 뜸 늦게 피는 겹벚꽃과 청벚꽃이 아름다운 서산시 운산면의 개심사도 가볼 만하다. 서산한우목장과 불과 4km 거리에 있다. 백제 654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하여 고려 때인 1350년에 처능대사에 의해 중수됐다. 조선 때 산불로 소실됐다가 1484년 다시 중건된 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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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글·사진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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