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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서 온 1m짜리 해골 100개가 서울에 쌓였다...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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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서 온 1m짜리 해골 100개가 서울에 쌓였다...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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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전
해골 100개 ‘매스’ 등 24점 소개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지하 전시장에 설치된 론 뮤익의 '매스'. 뉴시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지하 전시장에 설치된 론 뮤익의 '매스'. 뉴시스


각각 높이 1.2m에 달하는 거대한 두개골 100개가 천장(높이 14m)까지 첩첩이 쌓였다. 일부는 균형을 잃고 쏟아지듯 바닥에 떨어져 있다. 이를 마주한 인간은 깊은 지하 묘지에 파묻힌 느낌이다.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호주 출신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67)이 프랑스 파리의 지하 묘지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작품 '매스(2016~2017)'다.

올해 상반기 가장 기대되는 전시로 꼽히는 '론 뮤익'전이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지난 11일 개막했다. 프랑스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과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아시아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첫 개인전이다. 전시장에는 '매스' 등 작가의 시기별 주요 작품 10점이 등장했다. 조각 외 스튜디오 사진, 다큐멘터리 필름 등 14점도 함께 나왔다.

인체조각 거장의 아시아 첫 개인전

고티에 드블롱드가 만든 영화 '치킨_맨'에서 등장한 론 뮤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고티에 드블롱드가 만든 영화 '치킨_맨'에서 등장한 론 뮤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58년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나 1986년부터 영국에서 활동해 온 뮤익은 극사실적인 표현기법으로 유명한 조각가다. 실낱같은 머리카락, 피부에 비친 실핏줄, 팔에 난 솜털까지 실제보다 더 사실적인 묘사와 초현실적인 크기의 작품으로 현대미술계의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했다.

영화 특수 분장일을 했던 뮤익은 1997년 영국 왕립예술아카데미에서 열린 '센세이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표현한 '죽음 아빠'를 출품해 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작가로 30년간 활동하며 극사실주의 작품 48점을 손수 제작했다. 작품 수가 많지 않지만 대부분 작품이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한자리에서 감상할 기회가 없었다. 뮤익의 아시아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6개국 기관과 소장자의 동의를 얻어 어렵게 성사됐다. '매스'는 100개의 대형 두개골을 배로 운송하는 데 두 달이 걸렸고, 설치에는 2주가 걸렸다.

크거나 작은 모형, 그 기묘함

론 뮤익이 자신의 얼굴을 본딴 자소상 '마스크Ⅱ'(2002). 뉴스1

론 뮤익이 자신의 얼굴을 본딴 자소상 '마스크Ⅱ'(2002). 뉴스1


전시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마스크Ⅱ'(2002)로 시작한다. 눈을 감고 옆으로 누운 남자의 얼굴은 작가가 잠든 자신의 얼굴을 4배 크기로 확대한 작품이다. 조금 벌린 입에서 숨이 새어나올 것처럼 사실적인 남자의 얼굴은 얇은 재질로 만들어진 껍데기다. 뒤로 돌아가보면 텅 비어 있어 제목 그대로 '가면'임을 알게 된다. 2021년 리움 미술관 재개관전 '일간, 일곱 개의 질문'에 소개됐었다.

이불을 덮은 채 침대에 누워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여인을 묘사한 작품 '침대에서'(2005)도 가로 6.5m에 이르는 거대한 스케일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누워있지만 잠을 자려는 것인지, 잠에서 막 깨어난 것인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인물상은 압도적인 크기 때문에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한 관람객이 론 뮤익의 조각 '침대에서'를 보고 있다. 뉴스1

한 관람객이 론 뮤익의 조각 '침대에서'를 보고 있다. 뉴스1


이 밖에 십대 연인이 밀착해 서 있는 모습을 조각한 '젊은 연인'(2013)이나 암탉과 중년의 남성이 마주하여 팽팽한 공기를 만들어내는 '치킨 / 맨'(2019), 나체로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든 여인'(2009), 아기띠로 안은 아기를 외투 속에 숨긴 채 봉지를 든 여인을 묘사한 '쇼핑하는 여인'(2013) 등은 실물보다 작은 크기로 기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에 자신이 처해있다는 느낌을 관객에게 주기 위한 장치다.

초현실적인 뮤익의 조각들은 인간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반문한다. 공동 전시 기획자인 키아라 아그라디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 큐레이터는 "뮤익의 조각들은 대답을 준다기보다 질문을 던진다"며 "관람객에 따라 다른 느낌과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7월 13일까지.
실제 인물 크기보다 축소된 조각 '나뭇가지를 든 여인'. 뉴스1

실제 인물 크기보다 축소된 조각 '나뭇가지를 든 여인'. 뉴스1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