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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관세전쟁서 간과한 아웃라이어, ‘메이드 인 차이나’ 아이폰 [★★글로벌]

서울흐림 / 19.0 °
中에 섣부른 관세전쟁 일으킨 트럼프
경제·전략가들 “미국이 판정패했다”

관세 인플레 대비 유가 대책 세우고
메이드 인 차이나 ‘아이폰’서 허찔려

“흑자국 中, 돈만 포기하면 되지만,
미국은 아이폰 대체 제조역량 없어”
허드슨硏 포센 소장, “美의 자살행위”


매일경제

아이폰 모델 라인업 <사진=애플>


트럼프 관세전쟁이 미국의 판정패로 기우는 모습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하는 UFC 격투기로 치면 1라운드 K.O. 패로 보입니다.

그가 상호관세를 발표한 4월 2일(미국 해방의 날) 이후 2주가 지나고 있지만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요청에 응하긴커녕 아시아 국가(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들을 돌며 지지세를 규합하고 있습니다.

시 주석이 14일 말레이시아 매체에 기고한 이 한 문장이 중국의 전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중국 경제는 지난해 5% 성장하며 세계 경제에 약 30% 기여했다.”

미국이 관세율을 어떻게 조정하든 중국은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력으로 위기를 돌파할 것이라는 자신감입니다.

짧지만 긴 2주의 시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율 계산 방식과 적용 시점을 둘러싼 허술함, 그리고 갑작스러운 상호관세 90일 유예, 반도체·전자제품 관세 유예, 그리고 145%까지 치솟은 대중국 보복관세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헛발질을 연출했습니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넘어서는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급기야 미국 국채 시장까지 흔들리며 트럼프 관세전쟁은 미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악성부채와 국가부도 위기가 당면한 불확실성임을 미 국채 수요자인 각국 중앙은행과 헤지펀드들에게 각인시켰습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흔들던 관세전쟁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한 곳으로 한정하고 다른 나라들에 대해 90일의 유예 기간을 부여한 것은 미국의 협박이 ‘레드라인’을 넘어섰음을 스스로 인정한 결과로 풀이됩니다.

경제학자들과 분석가들의 진단을 보면 현기증 나는 트럼프 관세 전쟁에서 그의 결정적 패착은 무엇보다 ‘아이폰’의 시장 위력을 간과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트럼프 1기의 경우 중국과 대치한 관세 전선이 의외로 넓지 않았습니다. 무역확장법 232조 상 국가 안보 위협을 근거로 철강·알루미늄 부문에서 관세 포문을 열면서 중국을 압박했습니다.


그런데 2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전쟁을 중국에서 세계로, 그리고 특정 품목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상품에 관세율 인상을 결정했습니다.

이로 인한 미국 내 인플레이션 동요 가능성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드릴 베이비 드릴(시추 확대)’이라는 대책을 사전에 준비했습니다. 미국 내 에너지 생산을 늘려 유가로 대표되는 인플레이션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놀랍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전 상품을 상대로 2기 관세 전쟁을 확대하면서 세계 경제의 급격한 위축 위험성을 키우며 어부지리로 유가 하락이라는 효과를 얻었습니다.


반대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는 허를 찔렸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필수재이자 미국민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상품인 아이폰입니다.

미 해군 제독 출신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최고사령관을 역임한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최근 분석글에서 “이번 관세 전쟁에서 궁극적인 지정학적 수혜자는 중국일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수입품에 100%가 넘는 관세를 부과했지만,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사실 미국 소비자들은 중국 제품이 필요하지만, 중국 소비자들은 미국산 제품을 그리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매일경제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애덤 포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 역시 최근 포린어페어즈 기고에서 미국이 관세 전쟁에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2024년 미국의 대중국 상품과 서비스 수출액은 1992억 달러, 대중국 수입액은 4625억 달러로 2633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양국 간 무역 수지를 통해 무역 전쟁에서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지를 예측하자면 적자국이 아닌 흑자국이 유리하다. 흑자국인 중국은 오로지 돈을 포기하면 된다. 그러나 적자국인 미국은 경쟁력이 없거나 자국에서 전혀 생산하지 않는 상품과 서비스를 포기해야 한다. 중국에 돈은 대체가능(fungible)하지만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미국이 생산할 수 없는 중요 물품을 공급받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이 터프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미국 경제를 중국의 자비에 맡기고 있다.”

매일경제

애덤 포센 PIIE 소장


그는 대표적인 상품 사례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국이 대체할 수 없는 대표 상품이 바로 애플의 아이폰입니다. 트럼프 관세 전쟁 후 상위 모델 가격이 300만원 이상 폭증할 것이라는 미국 소비자들의 불만과 공포가 커지고 애플 주가가 요동쳤습니다.

글로벌 정치와 지정학 분야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기드온 라크먼 역시 최근 칼럼에서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애덤 포센과 같은 논리로 미국의 확실한 패배를 규정합니다.

“트럼프와 베센트의 논리의 결함은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게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국에 약점이 아니라 레버리지의 원천이다. 미국은 자선으로 중국 제품을 구매하는 게 아니다. 미국인들은 중국에서 만든 상품을 원한다. 이 제품이 더 비싸지거나 진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면 미국인들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의 절반 이상이 아이폰이며, 그 중 80%가 중국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해방의 날은 스마트폰으로부터 미국의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매일경제

기드온 라크먼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듯 아이폰과 자동차 관련 관세에 대한 유연한 조치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자동차 관세는 지난달 미국 국가 안보 위협을 사유로 25%가 발동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관세를 일시적으로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일부 자동차 회사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조치를 고려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완성차 브랜드들이 급등한 관세에 대응해 중국산이 아닌 다른 부품 수요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스마트폰 관세에 대해서도 자신을 “유연한 사람”이라고 설명하며 “뭔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포센 소장은 심지어 트럼프 관세 전쟁의 패착을 이렇게 비유합니다.

“전쟁을 준비할 때 공격을 주저할 이유가 있고 당신이 무장하기도 전에 적을 자극하는 건 자살행위(suicidal)다. 이것이 트럼프 경제 공격가 직면한 본질적 위험이다.”

1930년 스무트 홀리 관세법 이후 역사 상 최악의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이렇듯 미국의 조기 패배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자신을 뽑아준 소비자들과 기업들을 달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 입에서 자동차, 반도체, 전자제품 등 품목별로 다양한 양보 조치가 쏟아질 분위기입니다.

일본, 호주 등과 함께 미국의 우선 타결국(top targets) 범주에 포함된 한국이 굳이 미국과 속전속결로 합의를 이룰 하등의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미국의 관세 핵펀치에서 타격감이 줄어든 중국 경제, 그리고 미국 소비자에게 대체불가 상품인 ‘메이드 인 차이나’ 아이폰이 트럼프 관세 전쟁에서 힘의 균형을 바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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