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심은 정도 차이일뿐 본능… 타인 인정으로 내 가치 확인해
명성 집착하면 불안-분노 커져… 쇼펜하우어 “어리석은 망상”
인정 욕구는 생존 전략 되기도… 니체 “우린 인정받으려 일해”
명성 집착하면 불안-분노 커져… 쇼펜하우어 “어리석은 망상”
인정 욕구는 생존 전략 되기도… 니체 “우린 인정받으려 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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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허영심에 대해 “직접적으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어리석음”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니체는 허영심을 인간의 속내를 감춰주는 ‘영혼의 피부’라며 긍정적 역할도 강조했다. 위쪽 사진은 오스트리아 화가 요한 미하엘 로트마이어가 그린 ‘신앙의 우화―신앙으로 정복된 악마와 허영심’(1714년), 아래 사진은 영국 화가 토머스 롤런드슨의 그림 ‘허영심을 바라보는 죽음’(1800년경).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
《허영심의 두 얼굴
박수갈채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누구나 어느 정도는 허영심을 갖고 있다. 인간이라면 능력이든 외모든 작품이든 세상의 주목을 받아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이 명성과 명예를 좋아하는 것은 자존심과 허영심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자존심과 허영을 숨기고 있을 뿐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다.”(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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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
문제는 아무나 출세하거나 유명해질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인생의 성공 여부는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느냐에 따라 정해질 때가 많다. 아무리 열심히 살았더라도 그 성과를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가치 없는 것처럼 된다. 허영심이 강할수록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크기 마련인데, 원하는 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절망감에 빠진다. 명성과 명예를 얻어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지 못하면 불안해하고, 자신의 노력에 비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분노하게 된다. 세상이 불공정하다는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타인의 평가에 가치를 두면서 명성과 명예를 얻으려다가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는 일이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 허영심은 ‘어리석은 망상’이다. 허영심은 남과 비교해 더 돋보이려는 마음이기 때문에 상대적이다. “허영심은 부나 지위, 세력이나 권력으로 타인을 능가해 존경받으려는 마음이거나 같은 속물 중에서 걸출한 사람과 교제해 그런 자의 후광을 즐기려는 마음이다.”(쇼펜하우어)
타인으로부터 더 많은 존경을 받는 것이 삶의 목표라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망상인지 알아야 한다. 우선 타인의 속마음을 알기 어렵고 모든 사람의 지지와 후원을 받기는 더 어렵다. 쇼펜하우어는 “직접적으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허영’이라고 불렀다. 허영이란 “탐욕과 마찬가지로 수단 때문에 목적을 망각하는 것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나의 생각이 우선이며 타인의 생각은 부차적, 이차적인 것인데 남이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 때문에 타인의 좋은 평판을 받으려고 애쓰는 것은 미친 짓이다.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맞춰져 있다. 자존심과 허영의 바탕에도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반면, 니체는 허영심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장점을 함께 말하고 있다. 허영심이 가득한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탁월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탁월하다고 느끼기’를 원하는 점에서 자기기만적이다.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남과 자신을 속인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지지받고, 옳다고 확인받고 싶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강요하게 되는데, 결국 ‘다른 사람의 판단력을 자신의 판단력보다 더 신뢰’한다. 허영심이 큰 사람일수록 질투, 비판, 평판, 칭찬에 민감해 타인의 잘못된 권위를 맹목적으로 따르게 된다. 정작 자신의 진짜 장점을 스스로 모르게 된다.
허영심은 유용한 점도 있다. “뼈, 살, 내장과 혈관은 피부에 둘러싸여 있어, 그것이 인간의 모습을 참고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 듯이, 영혼의 활동과 정열은 허영심에 덮여 있다: 허영심은 영혼의 피부이다.”(니체) 아름다운 피부가 없다면 장기와 뼈가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이듯, 허영심이 없다면 인간의 추악한 내면이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허영심은 인간의 속을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인간의 정신은 허영심이라는 새로운 물건으로 채워져 고객을 끌어들이는 ‘백화점’과 같다. 인간의 정신을 겉으로나마 풍요롭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허영심의 역할이다.
무엇이든 인정받는 만큼 자신의 가치가 있다고 우리는 느낀다.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자신의 만족 자체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니체) 성공과 승진, 명예 등의 보상은 행위를 이끄는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허영심은 인간 사회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 허영심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신뢰를 증대시켜 자신이 살아가는 데 유용한 생존 전략이 된다.
타인에게 실제보다 더 강하게, 탁월하게 인정받으려는 노력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나친 허영심은 경계해야 한다. 허영심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본질)가 아니라 타인의 생각으로 ‘간주되는 것’(평가)을 지향하도록 몰아간다. 이 때문에 허영심은 타인의 마음에 쌓는 모래성과 같다. 남들이 만들어 주는 명성과 이에 따른 존경은 말에만 그치고 거짓인 경우가 많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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