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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17’.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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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 언론학 박사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은 단순한 에스에프(SF) 영화가 아니다. 얼음 행성 ‘니플하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 공간에 우리 사회의 가장 첨예한 문제들을 옮겨놓았다. 마치 거울을 들이대듯, 봉준호는 외계 환경이라는 낯선 캔버스 위에 인류의 보편적 고민을 그려낸다.
‘미키17’의 주인공 미키는 죽을 때마다 새 몸으로 복제된다. 위험한 임무에 계속 투입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모품처럼 취급받는 노동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번도 죽어보지 않은 사람은 행운아”라는 영화 속 대사는 현대 사회의 노동 착취 구조를 꼬집는다.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하는 미키가 자신의 복제체인 ‘멀티플’과 마주하는 장면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동일한 인간이 하나 이상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은 자본주의가 개인의 정체성마저 통제하는 방식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이다. 이 멀티플 설정은 끊임없이 재생해야만 하는 노동자의 숙명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키17’에서 인간들은 지구의 환경을 파괴한 후 새로운 행성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 있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인간들이 ‘크리퍼’라 부르는 행성의 원주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통해 우리의 식민 역사와 현재 진행 중인 환경 위기를 동시에 비판한다. 이것은 봉준호가 ‘옥자’(2017)에서 다루었던 환경 윤리 문제를 우주적 규모로, ‘기생충’(2019)에서 다룬 계급 문제를 종족 간 관계로 확장한 셈이다.
특히 ‘마마 크리퍼’와 ‘베이비 크리퍼’ 설정은 원주민을 단순히 정복하고 배제해야 할 대상이 아닌, 소통하고 공존해야 할 존재로 그린다. 과학자 ‘도로시’가 개발한 크리퍼 통역기는 다른 존재와의 소통 가능성을 모색하는 인류의 희망을 상징한다. 이는 현재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 문제와 문화 갈등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시각을 반영한다.
워너브러더스가 투자한 약 1억1500만달러(1500억원)의 제작비와 여러 할리우드 일급 배우들의 참여는 봉준호 감독의 트랜스내셔널(초국가적) 영화적 위상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그가 이 거대한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전하는 보편적 메시지다. 구주팔황(온 세상, 전 세계를 아우른다)의 정신으로 봉준호는 한국적 시각에서 출발해 국경을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세계 시민의 문제를 다룬다. ‘미키17’에서 그의 재능은 우주를 배경으로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감각적으로 포착해낸다.
‘미키17’은 결국 우주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은 에스에프라는 장르를 빌려 노동 착취, 환경 파괴, 식민주의, 소통의 부재라는 현실 문제를 날카롭게 조명한다. 그것은 멀리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시선, 먼 미래에서 현재를 성찰하는 시선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외계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어떻게 이토록 익숙할까”라는 의문을 공통으로 갖는다. 답은 명확하다. 봉준호가 우주로 데려간 것은 결국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키17’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현대 사회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우주에서 돌아본 지구의 모습은 결국 우리가 직면한 위기와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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