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직후 폐허 된 한국 입국해
가난한 이들 곁에서 평생 사목 활동
은퇴 후 의성서 지내다 쓰러져 선종
14일 안동 목성동성당서 장례미사
프랑스 출신으로 한국의 농촌에서 71년간 선교사로 헌신하며 초대 천주교안동교구장을 지낸 두봉 레나도 주교의 장례미사가 14일 천주교안동교구 주교좌 목성동성당에서 엄수됐다.
권혁주 주교의 주례로 진행된 장례미사에서는 두봉 주교가 선종 1년 전에 녹음한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이어진 고별식 뒤 두봉 주교는 경북 예천군 지보면 농은수련원 성직자 묘원에 영면했다. 지난 7일 뇌경색으로 쓰러져 안동병원으로 이송된 두봉 주교는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10일 선종했다.
권 주교는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가난하게 사시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조건 없이 베푸셨다"며 "믿는 사람에게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하느님 나라와 복음을 있는 그대로, 진리와 가치 자체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하셨다"고 회고했다.
가난한 이들 곁에서 평생 사목 활동
은퇴 후 의성서 지내다 쓰러져 선종
14일 안동 목성동성당서 장례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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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경북 안동시 목성동주교좌성당에서 프랑스 출신 두봉 레나도 주교의 장례미사가 열리고 있다. 많은 성도가 눈물을 흘리며 두봉 주교의 선종을 추모했다. 안동=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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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 한국에 온 지가 70년이에요. 70년 동안 그래도 사랑하고 행복했다. 내가 참 복을 많이 받았다."
지난해 4월 10일 녹음한 두봉 주교 육성
프랑스 출신으로 한국의 농촌에서 71년간 선교사로 헌신하며 초대 천주교안동교구장을 지낸 두봉 레나도 주교의 장례미사가 14일 천주교안동교구 주교좌 목성동성당에서 엄수됐다.
권혁주 주교의 주례로 진행된 장례미사에서는 두봉 주교가 선종 1년 전에 녹음한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이어진 고별식 뒤 두봉 주교는 경북 예천군 지보면 농은수련원 성직자 묘원에 영면했다. 지난 7일 뇌경색으로 쓰러져 안동병원으로 이송된 두봉 주교는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10일 선종했다.
권 주교는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가난하게 사시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조건 없이 베푸셨다"며 "믿는 사람에게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하느님 나라와 복음을 있는 그대로, 진리와 가치 자체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하셨다"고 회고했다.
주한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두봉 주교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셨으며 주교님과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 그리고 안동교구 전체에 진심 어린 애도와 위로를 전하신다"고 말했다.
이날 장례미사에는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염수정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등 한국천주교 주요 인사와 가톨릭농민회 관계자, 천주교 신자와 지역 주민, 정치권 인사들이 참석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철우 경북지사,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예비후보, 박성만 경북도의회 의장, 권기창 안동시장 등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는 지난 8일 두봉 주교 빈소를 찾았다.
두봉 주교는 1929년 9월 2일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르네 뒤퐁(Rene Dupont). 1953년 사제 서품을 받고 이듬해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 입국했다. 이때 이름을 한국식인 두봉으로 바꿨다.
1955년 천주교대전교구 대흥동성당 보좌신부를 시작으로 충청권에서 활동하다 1969년 천주교안동교구 초대교구장으로 부임했다. 유신정권 말기인 1978년 지역농협의 불량씨감자 공급에 항의하는 농민과 성직자 등을 탄압한 '안동교구가톨릭농민회사건'으로 추방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1990년에는 안동교구장을 떠나 경기 고양시에서 14년간 지내다 2004년 안동교구에서 마련해 준 경북 의성군 봉양면으로 거처를 옮겼다. 2019년 한국 특별국적을 받았다.
정광진 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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