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은 한국 정부에 전투병 파병을 요청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전투병 대신 평화유지와 재건 활동을 돕는 부대를 파병하기로 했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을 맹렬히 비판했다.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을 해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옳지 않으니 당연히 한국군을 파병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인권을 존중하는 독립기구로서 응당 할 일을 했다.
# 하지만 지금의 인권위는 정반대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쓴소리를 하기는커녕 그의 인권 보호에만 몰두하고 있다. 인권위는 왜 이렇게 된 걸까. 권력자와 충견들 국가인권의의 몰락 하편에서 답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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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권력자의 하수인과 개혁론 3편: 국가인권위의 몰락 上(더스쿠프 644호)'에서 윤석열 정부에서 일그러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민낯을 꼬집었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다수 국민의 인권이 침해당했는데, 국민의 인권은 외면한 채 윤 전 대통령과 내란죄로 재판을 받는 장성급 군인들의 인권 옹호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는 저버린 채 최고권력자의 인권만 보호하려 했다는 거다.
이를 근거로 우린 인권위가 최고 권력자의 맹목적 옹호자로 전락한 덴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경태 성공회대(사회학) 교수(한국인권학회장)는 "인권위는 명목상 독립기구지만, 애초에 권력자가 인권위를 맘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면서 "이번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이 우려는 현실이 됐고, 가장 심각한 형태로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그럼 이제 '권력자의 충견들 3편: 국가인권위의 몰락 下' 편에서 그 구조적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질문을 던져 보자. 12ㆍ3 내란 사태 국면에서 국가인권위는 왜 최고권력자의 인권 보호에 나섰을까. 또한 최고권력자를 위한 인권 보호 외침을 소수의 목소리쯤으로 넘겨도 괜찮은 걸까. 이 질문의 답을 하기 위해선 인권위가 걸어온 길을 다시금 밟아야 한다.
■ 독립기구 인권위의 한계 = 국가인권위는 김대중(DJ) 정부 시절인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근거해 설립했다. 설립 논의는 유엔이 국제인권법을 실현할 인권기구의 설치를 권장한 1946년부터 이어졌지만, 공론화하진 못했다.
그러던 1997년, 대선에 출마한 김대중 대통령이 '인권법 제정과 국민인권위원회 설립'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관련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인권을 보호하는 중립적인 정부조직인 만큼 법적 성격을 둘러싼 논쟁은 거칠었다.
특히 법무부가 몽니를 부렸다. 1998년 3월 법무부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인권을 유린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히면서 '법무부 내 인권위원회'를 밀어붙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검찰의 인권 침해가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는 그렇게 '법적 독립성'을 확보했지만, 실질적으론 최고권력자의 영향을 받았다. 실례實例를 들어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인권위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을 진행하면서 광우병 유발 가능성이 있는 위험부위까지 수입하려 하자 대규모 촛불집회가 이어졌는데, 강경 진압을 선택한 정부를 인권위가 강도 높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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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국가인권위 자체를 대폭 축소했다. 정부조직을 개편해 국가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려고 했지만, 시민사회의 반대에 부닥치자 조직 규모에 메스를 댔다. 이를 이유로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가 한국 인권위의 등급을 보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사실 여기엔 그럴 수밖에 없는 법적 한계가 숨어 있다. 국가인권위의 구성에 대통령의 입김이 공식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인권위 위원은 국회 선출 4명(상임위원 2명 포함), 대통령 지명 4명(상임위원 1명 포함), 대법원장 지명 3명까지 총 11명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여당과 합심해서 인권위 위원의 과반을 앉힐 수 있으니 인권위의 활동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구조다. 더구나 위원장은 위원 중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 점을 악용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현병철 위원장을 임명해 인권위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2009년 1월 '용산참사(용산 철거민을 경찰이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가 발생했을 때 인권위 내부에선 용산참사 담당 재판부에 의견을 제출하자는 요구가 있었다. 위원 대부분이 찬성했지만, 현 위원장은 "독재라도 해도 어쩔 수 없다"면서 폐회를 선언해 버렸다.
검사 임명 가능하게 만든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는 한술 더 떴다. 국가인권위의 방향성을 맘대로 결정하기 위해 법을 바꿔버렸다. 기존의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인권위 위원은 "인권문제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 조항에 '판사ㆍ검사 또는 변호사의 직職에 10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사람도 위원이 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시민단체들이 "엉터리 법 개정"이라면서 "인권위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될 것"이라 우려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 우려는 윤석열 정부에서 현실이 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에서 한석훈(검사) 위원을, 윤석열 정부에서 이충상(판사) 위원(2025년 2월 사표 수리)을 임명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집권 후 김종민(종교인) 위원과 김용원(검사) 상임위원, 이한별(탈북민) 위원, 안창호(검사) 인권위원장을 차례로 임명했다.
2023년 12월 임명된 조희대 대법원장은 강정혜(변호사)ㆍ김용직(판사)ㆍ소라미(변호사) 위원을 순차적으로 임명했다. 남규선(인권운동가)ㆍ원민경(변호사) 위원은 야당에서 임명했다. 11명 중 8명이 법조인이고, 나머지 3명은 윤 전 대통령처럼 검사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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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화한 우려 = 여당과 윤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들 6명(안창호ㆍ김용원ㆍ이충상ㆍ한석훈ㆍ김종민ㆍ이한별)에 대법원장이 임명한 강정혜 위원까지 더한 7명은 12ㆍ3 내란 사태 이후 사회적 약자가 아닌 최고권력자를 비호하는 역설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맡은 헌법재판소장, 내란과 직권남용 혐의를 수사하는 수사기관장 등에 '윤석열과 내란 혐의 피의자들의 방어권을 보장하도록 권고(불구속수사 등)'하는 내용의 인권 보호 안건을 상정(1월)하고 의결(2월)했다.
[※참고: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인권위의 모든 의결은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이뤄진다. 위원장 포함 11명 중 대통령과 여당이 6명을 임명할 수 있으니 서로 사이가 나쁘지만 않다면 사실상 대통령이 인권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심지어 김용원 상임위원은 인권위 위원으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발언들을 쏟아내 논란을 빚었다. 올해 인권위가 대통령을 옹호하는 내용의 안건을 상정한 탓에 시민들이 항의성 방문을 하자, 그들을 '좌파 폭도'로 몰았다.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앞두고선 "대통령이 파면되면 헌재를 두들겨 부숴 흔적도 남김없이 없애버려야 한다"는 말까지 입에 담았다. 지난 3월 인권위 전원위에는 김 상임위원의 막말을 막기 위해 '폭언 재발방지 안건'이 올라왔지만, 앞서 언급한 위원 구성의 한계 때문에 기각됐다.
인권과 무관한 위원 수두룩
그럼에도 김 상임위원이 직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심신쇠약으로 업무를 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면 위원의 신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위원의 결격사유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경우,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정당의 당원인 경우, 선거 후보자인 경우로 한정돼 있다. 독립기구로서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들이 악용될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그렇다면 인권위 내부에서도 이런 행태를 옳다고 여기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보자. 인권위는 지난 12일 인권위가 '내란죄로 구속 중인 군인들의 보석 허가와 불구속재판'을 촉구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위의 공식 입장이 맞는가"란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인권위 위원들은 보란듯이 윤 대통령과 내란 피의자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있지만, 인권위 직원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방증이다. 시스템의 한계로 위원회의 전횡을 막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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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실상부한 독립성 확보 절실 = 이 때문에 인권위의 실질적 독립성을 보장해줄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위원의 임명권이나 자격요건(결격사유 강화 포함) 개정, 대통령령이 아닌 인권위 자체 규칙을 통한 인권위 운영, 예산편성의 자율권 부여 등이 필요하다는 거다.
인권위 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시스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박경태 교수는 "어느 하나만 해결한다고 인권위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면서 이렇게 조언했다. "DJ 정부에서도 인권위의 독립성을 확보하진 못했다. 정권마다 그만한 이유를 갖고 있을 거다. 제도만 갖춘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인권위가 명실상부한 독립기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열린 자세로 고민해야 한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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