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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매킬로이(오른쪽)가 마스터스 파3 콘테스트에서 딸 포피(가운데)의 퍼트가 성공하자 두팔을 번쩍 들고 기뻐하고 있다. [EPA] |
[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를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잘 짜놓은 한편의 드라마같았다. 그야말로 매킬로이의, 매킬로이에 의한, 매킬로이를 위한 마스터스였다.
매킬로이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 마스터스에서 정상에 오르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
매킬로이는 14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제89회 마스터스 최종라운드에서 저스틴 로즈(잉글랜드)를 연장전에서 꺾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매킬로이는 PGA 투어 4대 메이저를 모두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골퍼는 매킬로이가 6번째다. 타이거 우즈(미국·2000년)에 이어 무려 25년 만의 대기록이다.
메인 게임이 시작되기 전부터 행운의 전조가 나타났다. 기분좋은 사인을 쏘아 올린 건 매킬로이의 네살 딸 포피였다.
마스터스 사전 이벤트인 파3 콘테스트 마지막 9번홀. 아빠와 함께 참가한 포피는 고사리같은 손으로 퍼트를 툭 건드렸다. 공은 내리막 경사를 타고 슬금슬금 구르더니 6m 거리 홀컵에 쏙 들어갔다. ‘설마’ 하며 지켜보던 마스터스 패트런이 환호성을 내질렀고 아빠는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딸을 안고 기뻐했다. 올시즌 그 어느 해보다 마스터스 우승에 공을 들인 매킬로이로서는 전율이 감도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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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킬로이가 마스터스 1라운드 15번홀 세컨드샷이 물에 빠지자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AP] |
그러나 1라운드는 매킬로이의 참을성을 또한번 시험하는 무대였다. 14번홀(파4)까지 보기 없이 버디만 4개를 잡으며 선두권으로 올라선 매킬로이는 그러나 15번홀(파5)과 17번홀(파4)에서 순식간에 더블보기 2개를 적어내며 무너졌다. 상기된 표정으로 경기를 마친 그는 인터뷰 없이 코스를 떠났다.
마스터스 최다 우승자(6회) 잭 니클라우스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매킬로이와 점심 식사를 했다고 공개하며 “완벽한 매킬로이에게 부족한 단 하나는 절제력(discipline)”이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는데, 그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듯 했다. 그도 이를 의식한듯 올해만큼은 “충동적이지 않고, 절제된 플레이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또한번 마스터스 악연이 고개를 들었다.
매킬로이는 달라졌다. 하루만에 지옥에서 천당으로 돌아왔다. 승부처와 위기 때마다 인내하며 2,3라운드 연속 데일리 베스트를 적어냈다. 2라운드를 공동 3위로 마친 뒤에는 “정말 정말 많이 참으려고 노력했다. 인내심이 보상받은 느낌이다. 흐름을 잘 바꾼 내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특히 단독선두로 올라선 3라운드는 매킬로이의 저력을 보여준 무대였다. 1번부터 6번홀까지 초반 6개홀을 모두 ‘3타’로 홀아웃하는 마스터스 최초의 진기록을 세운 매킬로이는 첫날 더블보기를 작성한 15번홀에서 짜릿한 이글을 뽑아냈다. 6번 아이언으로 공략한 세컨드샷을 홀 1.8m에 붙인 뒤 이글 퍼트를 홀컵에 떨어뜨렸다. 패트런의 함성 속에 마스터스 대관식이 멀지 않아 보였다.
마스터스 최종일. 2타 차 단독선두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했지만, 이날은 또 새로운 롤러코스터에 올라타야 했다.
1번홀(파4)부터 더블보기로 주춤하더니 경기 시작 30분 만에 같은 챔피언조의 브라이슨 디섐보(미국)에게 공동선두를 허용했다. 이후 버디를 낚으며 간신히 선두를 유지하던 매킬로이는 13번홀(파5)에서 세번째 샷을 물에 빠뜨리며 이번 대회 4번째 더블보기를 적어냈다. 이어진 14번홀(파4)에서도 타수를 잃었다.
이날만 6타를 줄인 로즈에 공동선두를 허용한 매킬로이는 17번홀(파4) 버디로 1타 차 단독선두로 올라섰다. 타수만 지키면 우승. 하지만 18번홀 세컨드샷을 벙커에 빠뜨린 뒤 1.5m 파 퍼트를 놓쳐 연장전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18번홀에서 펼쳐진 연장전 첫 홀. 매킬로이 굳은 얼굴에서 다시한번 마스터스 악몽이 어른거리는 듯 했다.
하지만 매킬로이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니클라우스의 조언대로 절제력과 인내심을 장착한 듯 했다. 4라운드 18번홀과 똑같은 125야드을 남겨놓고 친 세컨드샷을 홀 1m에 바짝 붙여 놓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설지 모르는 마스터스 우승 문턱이다. 매킬로이는 이번엔 퍼트를 실수하지 않았고 두팔을 치켜들어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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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킬로이가 마스터스 우승을 확정한 후 18번홀 그린에 엎드려 눈물을 쏟는 모습 [로이터] |
매킬로이는 그린에 무릎꿇고 엎드려 한참을 흐느꼈다. 마스터스 갤러리인 패트런도 그의 가족과 지인도, 수많은 골프팬들도 그의 오랜 도전과 성취에 경의를 표했다. PGA 투어는 공식 SNS에 “그가 해냈다”(He did it.)며 매킬로이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축하했다.
매킬로이는 “정말 내게도 (우승하는) 그 순간이 올까 하는 의문으로 출발했다. 지금 이렇게 ‘마스터스 챔피언’으로 불릴 수 있어서 너무나 영광이고 감격스럽고 자랑스럽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과 아쉬움을 보상해주는 순간이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마스터스 시작부터 끝까지 드라마였지만, 사실은 아니다. 위대한 서사의 시작은 매킬로이가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한 2014년부터였다.
매킬로이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올시즌 2승으로 최고의 경기력을 보유한 상황에서도 자만하지 않았다. 주위의 기대와 소음을 차단하고 마스터스 우승을 향해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그 결과 10년을 넘게 이어온 매킬로이의 도전 드라마는 비로소 성공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그에게 단 하나 부족했던 인내마저 갖추면서 ‘매킬로이 전성시대’ 2막이 새롭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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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킬로이가 전년도 챔피언 스코티 셰플러가 입혀준 그린재킷을 입고 행복해 하고 있다. [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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