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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고독사 4만명… 공동체 잃은 日사회가 마주한 재난[글로벌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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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인구감소·의료공백 맞물려
사망 이후엔 행정 책임 불분명
지자체 36%만 대응 조례 갖춰
국가의 방기가 재난 구조화 유발
고독사 사적인 문제로 축소 안돼
전문가 "새로운 복지체계 시급"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일본에서 고독사로 추정되는 사망자가 연간 4만명을 넘어섰다. 장례 없이 발견되는 사례가 속출하며 죽음 이후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가 맞물리며 일본은 '고독한 나라'가 되고 있다.

■고독사는 예외 아닌 일상

13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도쿄 미타카시에 거주하던 70대 남성 A씨는 사망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자택에서 발견됐다. 관리비 자동이체가 끊기고, 우편물이 쌓여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관리인이 신고하면서 경찰이 출동했다. 사망 당시 방에는 유서도, 연락처도 남아있지 않았다. 행정 당국은 유족을 찾지 못했고 결국 시청이 장례를 대행하고 유품 정리에 나섰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속출하고 있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는 2023년 한 해에만 고독사 추정 사례가 900건에 달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발견까지 일주일 이상 소요됐다. 지방에서는 인구감소와 의료공백이 맞물리면서 사망 사실이 수개월 동안 파악되지 못한 사례도 확인됐다.

최근에는 독거노인뿐 아니라 중장년층 고독사도 증가하고 있다.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50대 이상 단독가구 중 고독사 추정 비율은 전체의 21.4%를 차지한다. 특히 퇴직 후 사회적 연결망이 끊긴 남성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들은 "고독사는 고령화만의 문제가 아닌 중년 남성의 사회적 고립 구조와도 깊이 연관돼 있다"고 지적한다.

후생노동성은 2023년 고독사로 추정되는 무연고 사망자 수를 약 4만1000명으로 집계했다. 이는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일본 언론에선 "고독사는 예외적 죽음이 아니라 일본인의 평범한 말로"라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총무성은 65세 이상 고령 1인 가구 비율이 2023년 29.0%에서 2040년엔 36.8%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독거노인의 고립과 단절은 구조적인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행정은 죽음을 다루지 못한다

문제는 죽음 이후 행정의 작동이 사실상 중단된다는 점이다. 일본 복지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생존자를 전제로 짜여져 있어, 사망이 확인되는 순간부터 공적 개입은 사실상 멈춘다. 생전엔 요양급여나 긴급지원이 가능하지만, 사망 이후엔 담당 부서가 없고 책임 주체도 불분명하다. 장례, 유골 보관, 유품 정리는 지자체가 예산과 인력을 감당하지 못해 민간 업체에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행정의 사각지대는 지자체별 대응 편차로도 이어진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전국 1700여 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고독사 대응 조례를 제정한 곳은 약 620곳(36.5%)에 불과하다. 도쿄도, 오사카부, 아이치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조례는 확대되는 추세지만, 기준이 모호하고 예산도 부족하다. 한 도쿄도청 관계자는 "사망이 행정의 책임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많은 지자체에서는 유족이 없는 경우 장례를 치를 법적 근거조차 부족해, 고독사 발생 시 시청 직원이 즉석에서 민간 업체를 수배하거나, 복지 예비비에서 비용을 편성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골이 장기간 보관되지 못하고 파기되거나, 유품이 무단 폐기되는 문제도 끊이지 않는다.

이 같은 행정 공백은 고독사 대응 시스템을 '운에 맡기는' 구조로 만들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사회복지사나 자원봉사단체가 사실상 마지막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는 개인 헌신에 의존한 구조일 뿐 제도화돼 있지 않다. 특정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대응 수준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상황은 고독사를 사적인 문제로 축소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죽음도 민영화되는 시대


죽음 이후의 공백은 시장이 대신 메우고 있다. 유품 정리, 무연고 장례, SNS 계정 삭제 등 죽음 이후를 처리해주는 '종말 서비스' 민간 업체는 최근 5년간 2배 이상 급증했다. 관련 스타트업은 2023년 기준 1800곳 이상으로 추산된다. 장례, 유품, 납골, 반려동물 위탁까지 통합 제공하는 플랫폼도 등장했다.

이들 기업은 지방정부의 위탁을 통해 고독사 사망자의 유품을 정리하거나 장례를 대행하고 있다. 최근엔 사망 시 자동 통보가 가능한 애플리케이션 기반 서비스도 보급되고 있다. 고인의 디지털 자산을 정리해주는 서비스, 온라인 추모 공간을 제공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최근엔 앱 기반 생전 계약도 확산되고 있다. 본인이 생전에 사진, 계정, 연락망, 장례방식을 등록해두면 사망 이후 자동으로 처리가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심지어 SNS 계정 정리, 클라우드 비밀번호 삭제, 반려동물 양도 계약까지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연결의 붕괴, 새로운 복지 절실

고독사의 증가와 죽음의 사유화는 결국 일본 사회가 직면한 공동체 해체의 단면이라는 지적이다. 더 이상 지역사회나 가족이 죽음을 감당하지 않으며 국가도 그 역할을 방기하는 구조가 지속되면 고독사는 비가시적 재난으로 자리 잡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내에서도 이를 막기 위한 대응이 일부 시도되고 있다. 오사카부 도요나카시는 고령자가 생전 장례, 연락처, 유품 처리 방식을 등록하면 사망 시 행정이 실행하는 '종말케어 등록제'를 운영 중이다. 군마현 다카사키시는 고독사 가능성이 높은 고령자에게 2개월간 전담 직원을 배정해 생사 확인과 장례 동행까지 보장하는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또 시즈오카현 누마즈시는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생사 확인 시스템'을 시범 도입해 고독사를 사전에 감지하려는 실험에 나섰다. 가정에 설치된 사물인터넷(IoT) 센서가 일정 시간 이상 움직임이 없을 경우 자동으로 행정에 알림을 보내는 방식으로, 일본형 스마트복지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여전히 소수에 불과해 전국 단위의 체계적 대응은 미흡하다. 전문가들은 고독사를 '사망통계'가 아니라 '사회지표'로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k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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